Feng Shui Jiri is an idea that has been passed down from ancient society in order to do the best of filial piety for the ancestors and the prosperity and wealth of the descendants from ancient times. Doseon Guksa of Unified Silla accepted and expanded it, and there were many Confucian monks from Tang Dynasty during the Goryeo Dynasty. After returning to Korea, he introduced the theory of feng shui and spread it widely. In the Joseon Dynasty, a scientific feng shui, 《Hosun-sin's Jirishinbeop》was introduced and had a great influence on the capital's Feng shui. After that, various Feng shui books came into Korea. As this Feng shui ideology flourished in the late Joseon Dynasty, it influenced even Hong Gyeong-rae's Rebellion and Jeon Bong-jun's Donghak Revolution. In addition, as the prophecies such as 《Jeong Gam-Rok》and 《Gyeok-Am Yu-Rok》 spread across the country, the public sentiment began to be ferocious.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e Pyeongan-do region experienced severe regional discrimination and tax extortion in the hiring of bureaucrats, which shook the people's hearts. At that time, Hong Kyung-rae caused a revolt in a situation that combined the principles of Um Yang and five elements and Feng shui geography. After that, Jeon Bong-jun's uprising started a revolution in harmony with his comrades (Son Hwa-jung, Kim Gae-nam) who had deep knowledge of Um Yang and Five Elements and Feng Shui to resist the greed of Gobu County governor Jo Byung-gap (趙秉甲). However, with their execution, the value of Feng Shui and prophecy was lost. However, this learned a lesson from those who believe in the future generations's DoCham the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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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리는 예로부터 조상에게 안장지효(安葬之孝)를 다하고 자손의 번창과 부귀를 기하고자 고대사회로부터 전래되어온 사상이다. 통일신라의 도선 국사가 받아들여 확대하였고, 고려시대에 유학이 많아 귀국하면서 풍수를 도입하여 널리 확산되게 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과학적인 풍수라 할 수 있는 호순신의《지리신법》이 도입되어 도읍풍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그 후 다양한 풍수 서적이 국내로 들어왔다. 이러한 풍수사상이 조선말에 번창하면서 홍경래의 난(亂)과 전봉준의 동학혁명까지 영향을 끼쳤다. 뿐만 아니라,《정감록》,《격암유록》등 예언서가 전국에 확산되면서 민심이 흉흉하기 시작했다. 조선 후기 평안도 지방은 관료 등용의 지역차별과 세금수탈이 심하여 국민들의 민심이 동요될 때 음양오행, 풍수지리와 관련 깊은 지식을 겸비한 상황에서 홍경래가 난(亂)을 일으켰고, 그 후 전봉준의 봉기는 고부 군수 조병갑(趙秉甲)의 탐학(貪虐)에 저항하기 위해 음양오행과 풍수 지식이 깊은 동지인 손화중, 김개남과 뜻을 같이하여 혁명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들의 사형으로 풍수나 예언설의 가치가 살아졌지만, 후세의 도참(圖讖)을 신봉(信奉)하는 자에게 혹세무민(惑世誣民)의 교훈을 얻었다.
목차
<요약> Ⅰ. 서론 Ⅱ. 한국풍수의 초기 형성 배경 1. 도선 국사의 풍수사상 2. 일행 선사의 풍수 개념 3. 무학대사 풍수 핵심사상 4. 조선시대의 잡풍수(雜風水)와 예언서(豫言書) Ⅲ. 홍경래와 전봉준은 풍수전문가였는가? 1. 홍경래의 풍수사상 2. 전봉준의 풍수사상 Ⅳ.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현대 사회는 급격한 글로벌화, 디지털 혁명, 기후변화 등 복잡한 글로벌 문제들이 상호작용하는 시대에 접어들었습니다. 이에 따라 글로벌사회융합학회는 다양한 학문 분야의 융합적 접근을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학문적·실천적 기여를 목표로 설립되었습니다. 본 학회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며,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중점 사업을 추진합니다.
첫째, 다양한 학교 및 대학원생의 참여를 확대하고, 교육 전문가와 정부 및 사회 각계 기관과 협력하여 교육 및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혁신적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장을 마련합니다.
둘째, 복잡해진 사회 문제와 재난·안전 문제를 미래지향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학회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학문적 위상을 제고합니다.
셋째, 글로벌 사회의 이슈에 발맞춰 한국 사회의 연구 성과를 국제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학술지를 발간하여, 국제적 교류를 촉진하고 학회의 글로벌 위상을 강화합니다.
본 학회는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융합적 사고와 협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사회적 발전을 추구하고, 학문의 벽을 허물고 융복합적 학문의 다양성을 통해 학문적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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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사회융합연구 [Journal of Global Society of Converg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