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paper analyzes temple information recorded in geographical records (jiriji, geographical gazetteers) to examine the history of Mireukam Temple (Seongbulsa) in Goheung. The study serves a dual purpose: reconstructing the temple’s history and establishing a research methodology for studying Buddhist temples through geographical records. Based on the analysis of these records and extant artifacts, Mireukam appears to have been active from the Goryeo Dynasty through the 18th century, before falling into ruin in the 19th century. This case study highlights three critical points to consider when using geographical records for temple research: First, nationwide gazetteers generally recorded only the major representative temples of each district. Second, local district gazetteers (eupji) typically included most temples located within that specific administrative area. Third, gazetteers compiled around the 19th century began to include most small-scale hermitages (amja). Therefore, researchers must carefully account for the fact that temple data in Joseon-era gazetteers varies significantly depending on the specific publication period, the scope of the record, and the editorial guidelines used at the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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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高興 成佛寺의 전신인 興陽縣 飛鳳山 彌勒庵의 지리지 수록 양상을분석하여 그 의미 해석을 논의해 보았다. 이는 고흥 미륵암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것이면서, 지리지에 수록된 사찰 정보를 분석하여 사찰 역사를 연구하는 타당한 방법에 대해논의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고흥 미륵암은 18세기 중엽의 지리지에서 그 기록이 유일하게 확인되지만, 현전 유물과 함께 지리지를 분석해 보면, 고려시대 이래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운영되다가 19세기에 이르러 망폐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처럼 지리지는 군읍단위로 사찰 정보를 종합적으로 수록한 문헌이기 때문에, 각 지역, 시기별로 수많은 전통사찰의 정보를 파악할 수 있으며, 지리지가 그 사찰이나 사지에 대한 정보를 전하는 유일한 문헌 기록인 경우도 상당히 많다. 이에 조선시대 지리지를 전통 사찰 연구에 충실히활용하되, 고흥 미륵암의 사례를 통해 볼 때에도 다음과 같은 점에 대해서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 첫째, 전국 지리지에는 대체로 각 군읍별로 대표적인 주요 사찰이 수록되었다. 이는전국 지리지에 수록되지는 않았지만 당시에 운영된 중소형 규모의 사찰과 소형 사찰인암자가 다수 있었음을 의미한다. 특히 조선전기에 편찬된 『輿地勝覽』, 17세기에 편찬된『東國輿地志』에 수록되지 않은 중소형 사찰과 암자의 수는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둘째, 각 군읍별 읍지에는 대체로 그 군읍에 소재한 사찰이 대부분 또는 상당수 수록되었다. 이에 이러한 군읍별 읍지는 그 읍지가 편찬된 시기에 그 군읍에 소재한 사찰을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연구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셋째, 19세기에 편찬된 上送 邑誌에는 소형 사찰인 암자까지도 대부분 또는 상당수 수록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이러한 양상이 나타난 것은 19세기 전후의 이른바 ‘寺廢僧殘’ 현상이 지리지 편찬에도 반영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에 지리지에 수록된 사찰 정보는 각 지리지별, 각 시기별로 그 편찬 방식, 사찰 수록 지침 등에 차이가 있었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하여 연구할필요가 있다. 이는 지리지에 그 지역의 모든 사찰이 수록된 것을 전제하는 연구 방법, 서로 다른 지리지에 수록된 사찰의 수를 단순 비교하는 연구 방법 등은 타당하지 않음을 의미하므로, 이러한 기존의 연구 방법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한국 전통 사찰 역사 연구와 지리지 Ⅲ. 고흥 지역 사찰의 지리지 수록 양상 Ⅳ. 비봉산 미륵암의 지리지 수록과 그 해석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