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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현종(唐玄宗)의 촉(蜀) 체류 시기 신라가 파견한 사절 재고(再考)
A Reconsideration of the Envoy(s) Dispatched from Silla When Emperor Xuanzong of the Tang Dynasty(唐玄宗) Was Remaining in Shu(蜀) Re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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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바로가기
  • 간행물
    태동고전연구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55집 (2025.12)바로가기
  • 페이지
    pp.9-43
  • 저자
    윤태양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483899

원문정보

초록

영어
Samguksagi(三國史記) recorded that Silla had dispatched an envoy to the Tang dynasty in February of the 15th year of King Gyeongdeok(景德王)’s reign(756), after the outbreak of the An Lushan(安祿山) Rebellion on November 9th of 755. The envoy was recorded as “went upstream on the Yangtze River to reach Chengdu[泝 江至成都],” where Emperor Xuanzong(玄宗) was staying. However, Xuanzong fled to the Shu(蜀) region on June 13, 756, and left Chengdu for Chang’an(長安) on October 23, 757. Therefore, the time indicated by Samguksagi must be revised. Previous studies adjusted the time when the envoy had arrived at Xuanzong to between late 756 and early 757. However, the chronological table section(年表) in Samguksagi shows us that Silla did not adopt the era name Zhide(至德), used from July 756 to February 758, and continued to use the former era name Tianbao(天寶) instead. This is corroborated by ‘The Inscription on the Stone Pagoda of Galhangsa Temple in Gimcheon’(金泉 葛項寺 石塔記). If the envoy had indeed visited Xuanzong between late 756 and early 757, Silla would likely have recognized and adopted the new era name Zhide. Therefore, I suggest adjusting the time when the envoy stayed in Chinese territory from late 757 to early 758. Furthermore, the record specifies that King Gyeongdeok “heard that Xuanzong was staying in the Shu region[王聞玄宗在蜀]” before sending the envoy, implying that Silla had received prior information about the emperor’s flight. Considering the background and probable timing for Yan Zhenqing(顏眞卿) to write ‘Memorial to Celebrate the Former Emperor on the New Emperor’s Enthronement(皇帝卽位賀上皇表),’ it can be inferred that Silla obtained this information between late September and late October 756, possibly through an envoy originally dispatched to attend the New Year’s greetings ceremony(賀正) of the Tang dynasty.
한국어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는 755년 11월 9일 안녹산(安祿山)의 반란이 발발한 이후, 756 년 2월 신라에서 사절을 파견했다고 하였다. 이 사절은 “강(江)을 거슬러 성도(成都)에 이르러 [泝江至成都]” 당 현종(唐玄宗)에게 도착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현종은 756년 6월 13일 촉으 로 파천하였다가 757년 10월 23일 성도를 떠나 장안으로 돌아가는 길에 올랐으므로, 이 기사 에서 지목한 시기를 그대로 따를 수는 없다. 이에 대해 기존에는 이 사절이 756년 2월이 아닌 756년 하반기~757년 초 사이의 시점에 파견된 것으로 조정하여 보았다. 그렇지만 『삼국사기』 연표(年表)에서는 신라가 756년 7 월~758년 2월 사용된 당 숙종(唐肅宗)의 지덕(至德) 연호를 쓰지 않고 천보(天寶) 연호를 계속 해서 사용하였다고 하며, 이는 「김천 갈항사 석탑기(金泉葛項寺石塔記)」에 의해 재확인된다. 756년 하반기~757년 초 신라 사절이 왕래하였다면 당의 연호가 지덕으로 바뀌었음을 확인하였을 것이므로, 지덕 연호가 신라에서는 쓰이지 않은 이유를 다시 살필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 다. 따라서 여타의 사료와 충돌하지 않도록, 이 기사를 757년 하반기~758년 초의 일로 옮겨보 는 안을 제시하였다. 한편, 이때의 신라에서 “왕은 현종이 촉에 있음을 듣고[王聞玄宗在蜀]” 사절을 보내었다고 한다. 그 점에서 하북(河北)⋅산동(山東) 방면의 군세를 이끌던 안진경(顔眞卿)의 「황제즉위하 상황표(皇帝卽位賀上皇表)」의 작성 배경과 추정 시점을 고려하여, 대략 756년 10월 초부터 756년 11월 초 사이의 시점에 이듬해의 하정(賀正)을 목적으로 당에 다다른 신라 사절이 있었을 것으로 추론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신라에서 촉(蜀)으로 사절을 파견한 시기에 대한 재고찰
3. 현종(玄宗)의 촉(蜀) 체류에 대한 정보의 취득 경위와 시기에 대한 추론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저자

  • 윤태양 [ YUN Taeyang | 국립해양유산연구소 기간제 근로자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THE TAEDONG CENTER FOR EASTERN CLASSICS]
  • 설립연도
    1963
  • 분야
    인문학>한국어와문학
  • 소개
    연구소는 한국 및 동양의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하여 한문연수를 통한 연구인력 양성과 연구사업수행을 목적으로 한다. 연구소는 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교육사업으로 한문연수과정을 개설하여 연구인력을 양성하고 고전문헌의 조사연구정리 학술지간행 고전번역출판 학술발표회개최 국내외연구기관과의 교류사업을 추진한다.

간행물

  • 간행물명
    태동고전연구 [泰東古典硏究]
  • 간기
    반년간
  • pISSN
    1225-9152
  • 수록기간
    1984~2025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810 DDC 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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