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is paper, I tried to examine the facts about the printing of 50 volumes of the Tripitaka Koreana in the 4th year of King Sejo (1458). This is a basic study to interpret the historical meaning of this large-scale national publishing business. The summary is as follows.
First, the printing of the 50 volumes of the Tripitaka Koreana was carried out systematically from June of the 3rd year of King Sejo (1457) to September of the 4th year of King Sejo. Looking at the list of people, government offices, and temples who participated in the printing of the Tripitaka, this project was carried out through cooperation between the general bureaucratic system and the Seungjeong system. Second, this project was carried out during the period when King Sejo demoted and killed King Danjong. From this perspective, it should be interpreted as an act of the king’s rule rather than simply based on personal faith. Third, the 50 volumes of the Tripitaka Koreana were enshrined in 41 temples, which were famous large temples at the time. As the reason for their enshrinement in these temples is currently not clearly understood, it seems necessary to study them in consideration of the operation of the Seungjeong system at the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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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조선실록」의 관련 기사, 「탑인절목」의 8개 항목 요약 내용, 「인성대장경발」, 「인성대장경경찬소」(가칭) 등을 통해 세조 4년(1458) 고려대장경 전체의 50건 인출과 안치에 관한 구체적인 사실을 충실히 검토해 보고자 하였다. 이는 이 국가적인 대규모 출판 사업의 역사적 의미를 다각도로 해석해 가기 위한 기초적인 연구로, 검토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대장경 50건의 인출은 세조 3년(1457) 6월 20일에 이미 계획되었고, 이해 6월부터 이듬해 세조 4년 2월에 이르기까지 인출을 위한 물자, 인력 등이 준비되었다. 세조 4년 2월에 대장경 50건의 인출을 시작하여 4월에 일차 완료하였고, 교정, 장정, 발문 찬술 등을 거쳐 7월에 제책을 완료하였다. 8월 10일 해인사에서 대장경 50건 인성 경찬회가 설행되었고, 9월에 전국 41개 사찰과 예조에 대장경을 안치하면서 사업이 완료되었다. 대장경 인출에 참여한 고위 승직자의 명단, 대장경 안치 사찰과 관서의 목록, 대장경 인성 경찬회의 설행 등을 통해 볼 때, 이 사업은 일반 관인과 승직자, 일반 관료 체제와 승정 체제 간의 협력을 통해 수행되었다.
둘째, 세조는 태조, 태종, 세종대의 전례에 따라 대장경을 인출한 것이지만, 전례 없는 대규모 사업을 추진하였다. 의경세자가 세조 3년 7월에 발병하여 9월에 사망하였으므로, 대장경 50건 인출은 의경세자의 발병, 사망과는 무관하게 계획되었다. 그런데 대장경 50건 인출이 계획, 준비되던 세조 3년 6월 21일에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되었고 10월에 죽임을 당했다. 더불어 「인성대장경발」, 「인성대장경경찬소」 등의 내용을 통해 볼 때, 세조 4년의 대장경 50건 인출과 안치는 단순히 세조의 개인적 신앙의 발로가 아니라 국왕의 적극적 통치 행위로 해석되어야 할 듯하다.
셋째, 세조 4년 대장경 안치 41개 사찰은 기본적으로 명산대찰이었으며, 모두 승정 체제에 소속된 지정 사찰인 것은 아니었다. 41개 사찰 중에는 국가 지정 사찰이 5개였고, 지정 사찰은 아니지만 「경상도속찬지리지」에 종 소속이 기재된 사찰이 7개였으며, 「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되지 않은 사찰이 7개였다. 현재로서는 이 사찰들에 대장경 50건을 안치한 구체적인 이유가 명확히 파악되지는 않는다. 이는 15세기 국가 승정 체제의 운영, 지정 사찰과 일반 사찰의 운영 방식과 상호관계, 승정 체제 소속 고위 승직자의 활동과 영향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해석되어야 할 연구 과제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