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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 이후 전북의 일본 불교 포교와 역할
The role of Japanese Buddhist missionary work in North Jeolla Province after the opening of the 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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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전북사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전북사학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76호 (2026.03)바로가기
  • 페이지
    pp.235-256
  • 저자
    임혜영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48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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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This paper tried to confirm the role of religion or religious people in Japanese colonial rule through the process of opening Japanese Buddhism in North Jeolla Province after the opening of the port and the activities of Sokuzo Ohashi in Iri. After the opening of the port, the Japanese government tried to use religion for the colonization of Joseon. The Japanese government decided to use Buddhism, which has long been familiar to Koreans. The Japanese Buddhist community had no choice but to cooperate with the Meiji government to resolve the uncomfortable relationship. Therefore, missionary offices were established around the opening of the port, and gradually expanded to areas with many Japanese migrants. In Jeollabuk-do, missionary offices were established in Gunsan immediately after the opening of Gunsan, and after the construction of the Honam Line Railway, Japanese Buddhism was introduced along with the increase in the number of Japanese immigrants. Ohashi first visited the mission in 1912 when the Honam Line railway construction was in full swing. Iri decided to set up a missionary center immediately because he thought that there was a high potential for future development. For him, missionary work included conforming to the national policy of the annexation of Korea and Japan. After the outbreak of the war, he became a thorough assistant to the war. His position shows that. However, Japan lost the war, and he had to make ends meet in Iri. He finally returned to Japan after purifying and exhausting all the Buddha statues as the head of the British temple, just as he first arrived in Iri as a monk.
한국어
본 고는 개항 이후 전북의 일본 불교 개설 과정과 이리에 일련종 포교소를 개설하고 1945년까지 주지를 역임한 오하시 소쿠조(大橋卽淨)의 활동을 통해 일제의 식민통치에 있어서 종교 또는 종교인의 역할을 확인하려고 하였다. 개항 이후 일본 정부는 조선의 식민지화에 종교를 이용하려고 하였다. 일본의 대표적인 종교는 신도이지만 조선인에게 낯설고 거부감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 조선인에게 친숙한 불교가 채택되었다. 일본 불교계는 메이지정부와 불편한 관계를 해소하기 위해서 협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개항장을 중심으로 포교소를 설치하였고 점차 일본인 이주자가 많은 지역으로 확대되었다. 전북에서는 군산 개항 직후 군산에 대곡파 동본원사를 필두로 포교소가 설치되었고 지역 유력자들은 사원 건립 과정에서 기부로 참여하였다. 이리에는 호남선 철도 건설 이후 일본인 이주자의 증가와 함께 일본 불교가 들어왔다. 오하시는 호남선 철도공사가 한창이던 1912년 포교지를 물색하기 위해 처음으로 방문하였다. 이리는 사통팔달의 분기점이면서 호남평야의 농산물 집하역으로 장래 발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여 바로 포교소를 설치하기로 결정하였다. 또한 일본어 습득을 원하는 조선인 청년에게 강습하기 위해 일본어 강습회를 개설하였다. 그에게 있어 포교는 한일합방의 국책에 순응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무진회사 대표로서 지역 금융에 기여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전쟁 발발 이후 그는 철저하게 전쟁의 조력자가 되었다. 그가 맡은 직책이었던 군대환영위원, 익산군 시국대책실행위원장, 도키와이정 근로보국대장, 전라북도 군사원호지부장, 도키와이정 총동원연맹 이사장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은 전쟁에 패했고 그는 이리에서의 생활을 정리해야만 했다. 그는 처음 승려로서 이리에 도착했던 것처럼 마지막으로 영국사 주지로서 모든 불체를 정화 소진하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전북의 일본 불교 포교
Ⅲ. 오하시의 활동과 역할
Ⅳ. 맺음말
<국문초록>

<참고문헌>

키워드

일본 불교 군산 이리 오하시 소쿠죠 Japanese Buddhism Gunsan Iri Sokuzo Ohashi

저자

  • 임혜영 [ Lim, Hae-Young | 군산대학교 역사학과 강사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전북사학회 [The Jeonbuk Historical Society]
  • 설립연도
    1977
  • 분야
    인문학>역사학
  • 소개
    본 학회는 "역사학의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이바지한다"는 목표하에 도내의 역사학자들을 주축으로 1976년에 창립된 이래 30년 이상의 연륜을 이어온 정통 역사학회이다. 수차례의 학술대회를 개최하였을 뿐 아니라, 학술지 '전북사학'을 30호까지 발간하면서 지역 사학 발전의 토대를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 학회는 현재 약 240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으며, 격월로 임원회의와 월례발표회를 개최하고 있다. 매 발표회에 실제로 참여하는 인원이 항상 30명이 넘는다. 대부분의 역사관련 학회가 주로 대학교수나 강사들로 구성되어 있는 데 비해 전북사학회는 대학교수, 강사는 물론 학예사, 연구원, 중등학교 역사담당교사 등 역사와 관련된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대학에서 연구한 역사학에 관한 이론을 중등학교 교육 현장에 올바로 적용하여 이론과 실제를 하나로 만들려는 것이 향후 전북사학회의 지향점이다.

간행물

  • 간행물명
    전북사학 [JEONBUK SAHAK ; The Jeonbuk Historical Journal]
  • 간기
    연3회
  • pISSN
    1229-2001
  • 수록기간
    1977~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911 DDC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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