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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적 행정 질서의 수립과 타협, 1789-1792 : 오트가론느 도를 통해 본 파리-지방 관계
Negotiating Revolutionary Administration, 1789–1792 : Paris–Local Relations in the Département of Haute-Garon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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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전북사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전북사학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76호 (2026.03)바로가기
  • 페이지
    pp.109-134
  • 저자
    김대보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48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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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This article examines the formation of new administrative institutions during the early French Revolution, a transitional period marked by the replacement of the Ancien Régime. Using the département of Haute-Garonne as a case study, it explores how revolutionary reforms were implemented at the local level and how relations between Paris and the provinces were negotiated. Rather than strictly enforcing regulations issued by central authorities, elected local administrators operated within the tension between revolutionary legal principles and local social realities. While committed to the ideal of a unified and indivisible France, they sought pragmatic compromises by exploiting ambiguities within the new legal framework. In this process, institutional and fiscal legacies of the Ancien Régime continued to shape local governance. The experience of Haute-Garonne, where administrators obtained numerous exemptions from the Ministry of the Interior, illustrates the limits of viewing the Revolution through a simple opposition between centralization and decentralization. This study argues that revolutionary administration emerged through experimentation, negotiation, and sustained communication, and that provincial authorities functioned as active agents in shaping the new administrative order.
한국어
프랑스혁명 초기는 신체제가 구체제를 대체하는 과도기였다.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난관이 있었고, 파리와 지방은 각자가 직면한 현실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했을까? 이 글은 오트가론느 도를 사례로 삼아 프랑스혁명 초기의 새로운 행정제도 수립 과정의 일면을 다루려는 시도이다. 구체제와 달라진 지방 사회의 현실 속에서, 선출직 지방 행정가들은 파리의 상급기관이 보내는 수많은 규정을 반드시 엄격하게 집행해야 했을까? 법의 엄격한 적용과 지방 주민들의 요구 사이에서 지방 행정가들은 법이 규정한 원칙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많은 규정들 사이의 빈틈을 찾아 일정한 타협점을 찾으려 했다. 지방주의로 인해 분열되지 않은 ‘하나의 프랑스’를 만들어야 한다는 원칙이 세워졌지만, 각 지방이 처한 현실 앞에서 구체제가 남김 지방의 유산은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오트가론느 도는 이러한 예외적인 상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로서, 행정조직 및 재정문제에서 내무부 장관으로부터 많은 유보 조항들을 얻어낸 곳이었다. 결국, 중앙집중화 또는 지방분권화라는 거대담론 속의 이분법적인 논리는 각 지방의 특별한 상황 및 역사 속 행위자들의 구체적인 활동을 이해하기에 부족하다. 새로운 제도가 사회에 안착하기까지 시행착오, 현실적 타협, 행위자들 사이의 의사소통이 끊임없이 이루어졌고, 그 결과 지방은 파리가 이끄는 혁명적 흐름에 무기력하게 끌려가지 않았고, 거스를 수 없는 흐름 속에서도 일정한 타협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려는 역동성을 가진 존재였다.

목차

I. 머리말
II. 구체제에서 신체제로: 과도기, 1789-1791
III. 새로운 지방행정의 시작: 1790-1792
IV. 맺음말
<국문초록>

<참고문헌>

키워드

프랑스혁명 오트가론느 파리-지방 관계 행정적 타협 French Revolution Haute-Garonne Paris-Local Relation Administrative Negociation

저자

  • 김대보 [ Kim, Dae-Bo |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전북사학회 [The Jeonbuk Historical Society]
  • 설립연도
    1977
  • 분야
    인문학>역사학
  • 소개
    본 학회는 "역사학의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이바지한다"는 목표하에 도내의 역사학자들을 주축으로 1976년에 창립된 이래 30년 이상의 연륜을 이어온 정통 역사학회이다. 수차례의 학술대회를 개최하였을 뿐 아니라, 학술지 '전북사학'을 30호까지 발간하면서 지역 사학 발전의 토대를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 학회는 현재 약 240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으며, 격월로 임원회의와 월례발표회를 개최하고 있다. 매 발표회에 실제로 참여하는 인원이 항상 30명이 넘는다. 대부분의 역사관련 학회가 주로 대학교수나 강사들로 구성되어 있는 데 비해 전북사학회는 대학교수, 강사는 물론 학예사, 연구원, 중등학교 역사담당교사 등 역사와 관련된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대학에서 연구한 역사학에 관한 이론을 중등학교 교육 현장에 올바로 적용하여 이론과 실제를 하나로 만들려는 것이 향후 전북사학회의 지향점이다.

간행물

  • 간행물명
    전북사학 [JEONBUK SAHAK ; The Jeonbuk Historical Journal]
  • 간기
    연3회
  • pISSN
    1229-2001
  • 수록기간
    1977~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911 DDC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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