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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웅진기 백제유적에서 출토되는 고구려(계) 토기의 현황과 등장 배경
An Examination of the Current Status and Emergence Background of Koguryo(style) Pottery Excavated from Baekje Sites of the Hanseong–Ungjin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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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중앙문화재연구원 바로가기
  • 간행물
    중앙고고연구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49호 (2026.02)바로가기
  • 페이지
    pp.37-69
  • 저자
    이명헌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481618

원문정보

초록

영어
This study examines the status, characteristics, and background of Koguryo(style) pottery identified within Baekje territory from the Hanseong to the Ungjin periods. During the Hanseong period, Koguryo(style) Pottery was found across a relatively wide area, including northern Gyeonggi, Gangwon, and Jeollabuk-do, with the largest quantity recovered from Pungnap-toseong (風納土城), the royal capital of Hanseong-period Baekje. Most examples are presumed to have been used locally in daily life. In some cases, Baekje pottery was produced by adopting decorative elements from Koguryo Pottery, while other vessels exhibit manufacturing techniques and forms identical to Koguryo Pottery—such as clay bodies containing iron oxide—suggesting that certain pieces were introduced through interregional contact. The appearance of Koguryo(style) Pottery during the Hanseong period is interpreted as being related to King Gwanggaeto’s southern expansion. In the Ungjin period, hostile relations between the two states intensified, resulting in a very limited presence of Koguryo(style) Pottery. These finds occur mainly in the Buyeo area, as well as in regions such as Seocheon and Gochang. Pottery from Buyeo is generally considered to represent Koguryo(style) Pottery, whereas specimens from other regions—particularly Seocheon—display manufacturing techniques and forms identical to Koguryo Pottery, suggesting that actual Koguryo Pottery was introduced. The background for the appearance of Koguryo(style) Pottery in the Ungjin period can be divided into Buyeo and non-Buyeo contexts. In Buyeo, it is likely associated with Koguryo captives mobilized for the development of the Sabi capital. In contrast, pottery recovered outside Buyeo is interpreted—based on contemporaneous examples of Koguryo jar-coffins constructed in former Baekje territories south of the Hangang—as Koguryo Pottery introduced from adjacent Koguryo regions and subsequently used as jar coffins.
한국어
고구려와 백제는 4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각축을 시작하였다. 양국은 오랜 기간 적대적인 관계였지만 그 속에서도 다양한 문화교류가 이루어졌고, 본고에서는 그 사례 중 하나로 한성~웅진기 백제유적에서 확인되는 고구려(계) 토기에 주목하였다. 다만 남한지역 출토 고구려(계) 토기의 해석 및 편년 문제, 고구려 토기와 고구려계 토기 구분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관련 연구가 미진한 상황이므로, 본고에서는 고구려 토기와 고구려계 토기의 구분 시도하는 한편 그 현황 및 특징을 파악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또한 그 등장 배경을 검토하여 한성~웅진기에 확인되는 고구려(계) 토기에 대한 해석을 시도하였다. 한성기에 확인되는 고구려(계) 토기는 경기 북부와 강원도, 전라북도까지 비교적 넓은 범위에서 확인되었고, 한성기 백제의 왕성인 풍납토성에서 가장 많은 수의 고구려(계) 토기가 확인되었다. 대부분 주거지와 수혈에서 재지계 토기와 함께 출토되어 현지인이 실생활에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재지계 토기에 중호문·파상문·점열문·암문 등과 같은 고구려 토기 문양 요소를 차용하여 제작하는 양상이 확인되었고, 한편으로는 고구려 토기 태토에서 확인되는 산화철 성분이 확인되는 등 제작기법과 형태가 고구려 토기와 동일한 토기들도 확인되고 있다. 한성기 고구려(계) 토기의 등장 배경에 대해서는 모든 토기가 해당되지는 않겠지만 대체로 광개토왕의 남진과 관련 있는 것으로 추정하였다. 한성기 고구려(계) 토기는 대체로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전엽 이후로 편년되는데 이 시기가 광개토왕의 남진기와 겹치며, 출토 지역도 광개토왕의 남진 경로와 일치한다고 판단하였다. 결과적으로 광개토왕의 한성 공격이 백제 내 크고 작은 영향력을 끼쳤고, 그 여파로 한성기에 고구려(계) 토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웅진기에는 양국의 적대적인 관계가 심화되어 고구려(계) 토기의 수가 매우 적게 확인되며, 부여지역과 그 외 지역인 서천·고창 등에서 출토되었다. 부여에서 출토된 토기는 대체로 고구려계 토기로 추정되는 반면 그 외 지역, 특히 서천지역에서 출토된 토기들은 제작기법과 형태가 고구려 토기와 동일하여 고구려 도공이 제작한 토기가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웅진기 고구려(계) 토기의 등장 배경에 대해서는 부여 출토 고구려(계) 토기의 경우 당시 사비도성 개발을 위해 투입된 고구려 포로와 관련 있을 가능성을 언급하였다. 반면 부여 이외의 지역에서 출토된 토기는 옹관으로 사용되는 양상이 확인되었는데, 동시기 한강 이남의 舊백제 지역에서 조성된 고구려 옹관의 사례를 볼 때 당시 인접했던 고구려 지역에서 유입된 토기를 옹관으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목차

국문요약
I. 머리말
II. 한성~웅진기 고구려(계) 토기의 현황
III. 한성~웅진기 고구려(계) 토기의 특징
IV. 한성~웅진기 고구려(계) 토기의 등장 배경 검토
V.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고구려 백제 고구려 토기 고구려계 토기 Koguryo Baekje Koguryo Pottery Koguryo-style Pottery

저자

  • 이명헌 [ Lee, Myeong-Heon | 충북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박사과정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중앙문화재연구원 [Central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 설립연도
    2000
  • 분야
    인문학>역사학
  • 소개
    문화재의 보호, 관리, 조사, 발굴 및 그 활용과 전국 매장문화재 발굴조사 전담법인기관과의 유기적인 협력체제 유지를 통하여 민족 문화의 보존ㆍ보급ㆍ선양ㆍ전승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1970년대부터 국토개발사업이 본격화 되면서 현대생활의 편리성을 추구하는 각종 대규모 토목공사가 계획ㆍ진행되고 있으며, 이러한 대규모의 토목공사는 땅의 형질변경을 수반함으로 인해 문화유적의 훼손과 파괴를 초래한다. 1990년대 초까지의 매장문화재 조사는 국립박물관, 문화재연구소, 대학박물관 등에서 주도하여 왔으나 매년 증가하는 문화재조사 수요를 감당하기 힘든 실정으로 사업시행의 지연과 문화재관련 학술자료획득의 양면에서 막대한 차질을 빚게 됨에 따라 매장문화재 전담법인기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상시 문화재조사 체제를 유지하며, 문화재조사와 관련하여 사업시행자의 손실을 최소화하고, 긴급발굴에 따른 졸속 발굴 등을 예방하여 철저한 학술자료 획득 및 전문인력의 양성을 통한 전반적 발굴수준의 향상을 위하여 중앙문화재연구원이 설립되었다.

간행물

  • 간행물명
    중앙고고연구 [Journal of Central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 간기
    연3회
  • pISSN
    2233-6230
  • 수록기간
    2005~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911 DDC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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