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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둥회의를 통해 본 전후 일본의 아시아 인식 ― 1955년 ‘일본의 아시아 복귀’ 속 간극과 현실 ―
Postwar Japan’s Perception of Asia Through the Eyes of the Bandung Conference ─ The Gaps and Reality of “Japan’s Comeback to Asia” in 19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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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바로가기
  • 간행물
    일본학연구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77집 (2026.01)바로가기
  • 페이지
    pp.99-125
  • 저자
    윤정환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478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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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The Bandung Conference was the starting point of the emergence of the Third World during the Cold War in the 1950s and was a very important watershed event in Japan’s post-war history. Japan officially returned to being a ‘member of Asia’ with this meeting as an opportunity. However, despite being hailed as the starting point of Japan’s first “attempt at autonomous diplomacy” in the post-war era, the country was forced to maintain only an ‘ambiguous’ stance during the proceedings. This meant that Japan, even after the war, faced the crossroads of being either a “member of the West” or a “member of Asia,” a decision that has become a defining characteristic of Japanese diplomacy. On the other hand, Uehara Senroku(上原專祿) a critical postwar intellectual, strongly insisted on being aware of and reflecting on the cold reaction of the Japanese government and society as a whole to the Bandung Conference at the time. He analyzed that Japanese society is missing the Bandung Conference’s “opportunity to think about independence and peace in the true sense” because of Japan’s lack of “lack of life experience” and the general ignorance of scholars and intellectuals of “lack of intellectual preparation.” It can also be said that Japanese society has not been able to overcome this to this day.
한국어
반둥회의는 1950년대 냉전시기 제3세계 등장의 시발점으로 세계사적으로 중요할 뿐만 아니라, 일본의 전후사적 관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분수령이 된 사건이었다. 일본은 이 회의를 계기로 공식적으로 ‘아시아의 일원’으로 복귀하였지만, 전후 최초의 “자주적 외교의 시도”의 출발점이라는 평가에 걸맞지 않게 회의기간 동안 ‘애매모호’한 입장만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일본이 전후에도 ‘서구의 일원’인지 ‘아시아의 일원’인지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고, 그 결과는 ‘일본 외교의 이중성’이라는 특수성으로 표출되었다. 반면에 비판적 전후지식인 우에하라 센로쿠(上原專祿)는 당시 일본 정부와 사회 전체가 반둥회의에 대해 보여준 냉담한 반응에 대해, 자각과 반성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는 일본 사회가 반둥회의라는 “진정한 의미에서 독립과 평화를 생각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치고 있으며, 그 이유는 일본의 “생활체험의 부족”이라는 국민적 결여와 “지적 준비부족”이라는 학자・지식인 일반의 무자각에 따른 결과라고 분석했다. 또한 일본 사회는 현재까지도 이를 극복하지 못한 상태로 오늘날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본어
バンドン会議は、1950年代の冷戦期における第三世界の登場の始発点として世界史的に重要であるばかりでなく、日本の戦後史的観点からも非常に重要な分水嶺となった事件であった。日本はこの会議を契機に、公式に「アジアの一員」として復帰した。しかし、戦後初の「自主的外交の試み」の出発点という評価にふさわしくなく、会議期間中「曖昧」な立場だけを取るしかなかった。これは日本が戦後も「西欧の一員」なのか「アジアの一員」なのかを選択しなければならない岐路に立たされており、その結果は「日本外交の二重性」という特殊性として表現された。一方、批判的な戦後知識人の上原專祿は当時の日本政府と社会全体がバンドン会議に対して示した冷淡な反応に対し、自覚と反省を強く主張した。彼は日本社会がバンドン会議という「真の意味で独立と平和を考えることができた機会」を逃しており、その理由は日本の「生活体験の不足」という国民的欠如、そして「知的準備不足」という学者・知識人一般の無自覚の結果だと分析した。また、日本社会は現在に至るまで、これを克服できない状態で今日に至ったと見ることができるだろう

목차

<要旨>
I. 머리말
II. 반둥회의 개최와 일본 정부의 참여 입장
III. 일본의 '아시아 복귀'에 대한 반응
IV. 맺음말
【参考文献】
<要旨>

키워드

반둥회의 제3세계,비동맹평화운동 우에하라 센로쿠(上原專祿) 미야기 다이조(宮城大藏) 일본의 아시아 복귀 Bandung Conference The Third World,Non-Aligned Movement Uehara Senroku Miyagi Daizo Japan’s Comeback to Asia

저자

  • 윤정환 [ YOON, JEONG HWAN | 한남대학교 탈메이지교양・융합대학 강사, 일본근현대사 전공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단국대학교 동아시아인문융복합연구소(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Institute for Convergent Humanities in East Asia (ICHEA)]
  • 설립연도
    1995
  • 분야
    인문학>일본어와문학
  • 소개
    일본연구소는 일본의 언어, 문학, 역사, 정치, 경제 등 인문, 사회과학의 제 분야에 관한 종합적인 연구를 통해 한국에서의 일본연구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간행물

  • 간행물명
    일본학연구 [The Journal of Japanese Studies]
  • 간기
    연3회
  • pISSN
    1598-737X
  • eISSN
    2465-8448
  • 수록기간
    1997~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730 DDC 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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