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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전 풍비(慶基殿豊碑)의 건립 시도와 변천
The Construction Attempts and Historical Evolution of the Gyeonggijeon Pungbi(慶基殿豊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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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전북사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전북사학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75호 (2025.11)바로가기
  • 페이지
    pp.129-156
  • 저자
    이충규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476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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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Gyeonggijeon Pungbi (慶基殿 豊碑) is a monumental stone monument made during the Gwanghaegun period to honor the achievements of King Taejo of the Joseon Dynasty. However, the construction was thwarted by the artificial rebellion even before the inscription was engraved, and it was left outside the main gate for a long time. For this reason, the Pungbi was not erected as intended, but as a white monument without letters, it was left as an 'unspoken stone' symbolizing the ups and downs of the times. The Pungbi was conceived as a monument to realize the moral cause of the legitimacy of the Joseon Dynasty and the worship of Taejo, but as it was maintained unfinished, it became an important evidence that reveals the conflict between politics and rituals. The political factors surrounding the issue of legitimacy after the artificial rebellion were decisive in the failure of the Pungbi to be built. Since then, demands for the construction of the Pungbi were raised again during the reign of King Yeongjo, but the scratch of the monument and the ambiguity of the standards for the rituals of the time served as an obstacle. During the reign of King Gojong, Hwang Gi-won suggested the construction of the Pungbi, but the existing monument was not used for the landscape sculpture and was eventually converted to Hamabi(下馬碑).
한국어
경기전 풍비(慶基殿 豊碑)는 조선 태조의 공덕을 기리고자 광해군 대에 제작된 기념비적 석물이다. 그러나 비문을 새기기도 전에 인조반정을 맞으면서 건립이 좌 절되었고, 이후에도 전문(殿門) 밖에 장기간 방치되었다. 이 때문에 풍비는 본래의 의도대로 세워지지 못한 채, 글자 없는 백비(白碑)로서 시대적 부침을 상징하는 ‘묵 언의 석물’로 남게 되었다. 풍비는 조선 왕조 정통성과 태조 숭배라는 도덕적 명분 을 구현하기 위한 기념물로 구상되었으나, 미완의 상태로 유지되면서 정치와 제례 의 충돌을 드러내는 중요한 증거물이 되었다. 풍비가 건립되지 못한 데에는 인조반 정 이후 정통성 문제를 둘러싼 정치적 요인이 결정적이었다. 이후 영조 대에 풍비 건립 요구가 재차 제기되었으나, 비신의 흠집과 당대 제례 기준의 모호성이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고종 대에도 황기원이 풍비 건립을 건의하였으나, 끝내 기존 비신은 조경단비에 사용되지 못하고 하마비로 전환되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경기전 풍비 건립 시도
Ⅲ. 대한제국기 황실의 시조 묘역 조성
Ⅳ. 맺음말
<국문초록>

〈참고문헌〉

저자

  • 이충규 [ Lee, Chung-Kyu | 전주대학교 사학과 박사과정 수료.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전북사학회 [The Jeonbuk Historical Society]
  • 설립연도
    1977
  • 분야
    인문학>역사학
  • 소개
    본 학회는 "역사학의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이바지한다"는 목표하에 도내의 역사학자들을 주축으로 1976년에 창립된 이래 30년 이상의 연륜을 이어온 정통 역사학회이다. 수차례의 학술대회를 개최하였을 뿐 아니라, 학술지 '전북사학'을 30호까지 발간하면서 지역 사학 발전의 토대를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 학회는 현재 약 240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으며, 격월로 임원회의와 월례발표회를 개최하고 있다. 매 발표회에 실제로 참여하는 인원이 항상 30명이 넘는다. 대부분의 역사관련 학회가 주로 대학교수나 강사들로 구성되어 있는 데 비해 전북사학회는 대학교수, 강사는 물론 학예사, 연구원, 중등학교 역사담당교사 등 역사와 관련된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대학에서 연구한 역사학에 관한 이론을 중등학교 교육 현장에 올바로 적용하여 이론과 실제를 하나로 만들려는 것이 향후 전북사학회의 지향점이다.

간행물

  • 간행물명
    전북사학 [JEONBUK SAHAK ; The Jeonbuk Historical Journal]
  • 간기
    연3회
  • pISSN
    1229-2001
  • 수록기간
    1977~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911 DDC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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