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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문

브뤼기에르 주교의 조선 선교 여정과 선종, 유해 이장
Bishop Bruguière's missionary journey to Joseon, death, and the move of the rema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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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수원교회사연구소 바로가기
  • 간행물
    교회사학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27호 (2025.09)바로가기
  • 페이지
    pp.5-44
  • 저자
    차기진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474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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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This paper is a study on the missionary journey and the move of the remains after death, which are necessary for understanding the life of Bishop Barthélemy Bruguière(蘇 Bartholomew), the first Vicar Apostolic of Joseon(Korea), and which must be confirmed in the process of promoting his beatification. The missionary journey of Bishop Bruguière is divided into three categories. The first is the journey from Penang, Malaysia, to the Bishop's house of Shanxi(山西), China(August 1832-October 1833), the second is the period of pastoral work while staying at the Bishop's house of Shanxi(October 1833-September 1834), and the third is the journey across the Tatar(韃靼) region and the staying in the Xiwanzi(西灣子) village(currently 河北省 張家口市 崇禮區)(September 1834-October 1835). During that time, the places where Bishop Bruguière's has stayed for more than a month were Macao's representative office of ‘the Sacra Congregatio de Propaganda Fide’(布敎聖省), Bishop Carpena Díaz's house of Fujian(福建) Province(currently 福安市 丁頭村), and Bishop Joachim Salvetti's house of Shanxi Province(currently 太原市 祁峴 九汲 村). In addition, Jiangnan(江南) accommodation & the village near the Shandong(山東)-Jili(直隷) border which were checked the exact location once again in this paper, and the Xiwanzi village which was the already well-known, are also included among them. Bishop Bruguière, who left the Xiwanzi on 7 October 1835, arrived in Majiazi(馬架子) village on 19 October and died the next day. Majiazi village, where the bishop's final destination, is the current Dongsan(東山) village, Songsan-gu(松山區), Chifeng Shi(赤峰市), Inner Mongolia(內蒙 古自治區). This village is marked on the Father P. Maubant’s letter and missionary map of the M.E.P.(Société des Missions Etrangères de Paris) by its alias, ‘Pielikeou’(別拉溝). Father Maubant, who was in Xiwanzi at the time, went to Majiazi as soon as he heard about Bishop Bruguière's death. Then, on November 21, a funeral mass was celebrated and the bishop's body was buried there. The bishop's remains were moved to Seoul on September 24, 1931, a century later, and was buried at the Yongsan priest's cemetery on October 15. The site of Bishop Bruguière's original tomb in Majiazi was confirmed on July 6, 2004 by the efforts of a researcher. Moreover, in January 2006, the original tombstone was accidentally discovered.
한국어
본고는 초대 조선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의 생애를 이해하는 데 필 요하고, 그의 시복 추진 과정에서 반드시 확인되어야 할 선교 여정과 선종 이후의 유해 이장 과정에 대해 연구한 것이다. 브뤼기에르 주교의 선교 여정은 셋으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말레이시 아 페낭에서 중국 산서 주교관까지의 여정(1832년 8월~1833년 10월), 두 번째는 산서 주교관에 체류하면서 사목하는 기간(1833년 10월~1834년 9월), 그리고 세 번째는 달단 여정과 하북성 서만자 교우촌(현張家口市崇 禮區 西灣子鎭) 생활이다(1834년 9월~1835년 10월). 그 동안 브뤼기에르 주교가 한 달 이상 체류한 곳은, 마카오의 포교성성 극동 대표부, 복건성에 있는 도미니코회 디아즈 주교의 주교관(현 福安市 下白石鎭 丁頭村), 산서성에 있는 프란치스코회 살베티 주교의 주교관(현太原市 晋中市 祁峴 九汲村)이었다. 아울러 본고에서 그 정확한 위치를 다시 한 번 확인해 본 강남 숙소와 산동·직예 접경의 교우촌, 그리고 일찍이 확인된 서만자 교우촌이 여기에 해당한다. 1835년 10월 7일 서만자를 출발한 브뤼기에르 주교는 10월 19일 서부 달단 지역의 마가자(馬架子)에 도착했으며, 이튿날 선종하였다. 이처럼 주교의 마지막 목적지가 된 마가자는 지금의 내몽고자치구 적봉시 송산구 동산향(內蒙古自治區 赤峰市 松山區 東山鄕)으로, 모방 신부의 서한과 파리외방전교회의 선교 지도에 나오는 ‘펠리구’(Pielikeou, 別拉溝)와 같은 곳으로 확인되었다. 서만자에서 브뤼기에르 주교의 선종 소식을 들은 모방 신부는 즉시 마가자로 가서 11월 21일에 장례 미사를 봉헌하고, 주교의 시신을 그곳에 안장하였다. 주교의 유해는 1세기가 흐른 뒤인 1931년 9월 24일 서울로 이장되었으며, 10월 15일 용산 성직자 묘지에 안장되었다. 이후 마가자에 있는 브뤼기에르 주교의 원묘지 자리는 2004년 7월 6일 한 연구자의 노력에 의해 확인되었다. 게다가 2006년 1월에는 우연히 본래의 묘비가 발견되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페낭에서 서만자까지의 선교 여정
Ⅲ. 마가자 선종과 유해 이장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브뤼기에르 모방 조선대목구 페낭 마카오 산서(산시) 서만자(시완쯔) 마가자(마자쯔) 펠리구 B. Bruguière P. Maubant Vicar Apostolic of Joseon(Korea) Penang Macao Shanxi Xiwanzi Majiazi Pielikeou

저자

  • 차기진 [ Cha Ki-jin | 양업교회사연구소 명예소장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수원교회사연구소 [Suwon Research Institute of Catholic History Ha-nam, Korea]
  • 설립연도
    2003
  • 분야
    인문학>기독교신학
  • 소개
    ◎ 설립취지 "수원교회사연구소"는 천주교 수원교구 설정 40주년을 맞이하여 수원교구와 한국교회의 역사를 연구하고, 신앙 선조들의 삶과 순교영성을 발굴하여, 이를 널리 알리고 후대에 전함으로써 한국 가톨릭 교회의 신앙과 문화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2003년 1월 1일 교구장 최덕기 바오로 주교님이 설립하셨습니다. ◎ 연구소 현황 초대 연구소장은 구산성지 주임신부인 정종득 바오로 신부가 맡게 되었으며, 연구소의 위치는 구산성지 내에 있습니다. 원활한 연구소 운영을 위해 2006년 2월 현재 7명의 연구위원과 6명의 운영위원으로 구성되어 소장의 업무를 보좌하고 있으며, 3명의 연구원이 교회사연구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 향후 연구소의 운영방침 교구 내 순교성지 및 순교자의 생애, 각 성지의 신앙적 유산을 발굴하고 이를 정리하며, 아직 개발되지 않은 교회사적지 및 순교자를 발굴하여 순교영성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아울러 신임 연구원들과 동호회원을 대상으로 매월 둘째주 토요일 한국천주교회사 월례 강좌를 실시한 후 신앙적 나눔을 가지고, 년 1~2회 학술심포지엄과 성지순례, 특별강연 등을 실시하여 순교신심을 고취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교구 내 각 본당이나 공소, 성지의 역사를 편찬하도록 연구소에 위탁하여 오는 작업도 수행할 것입니다.

간행물

  • 간행물명
    교회사학 [Research Journal of Catholic Church History]
  • 간기
    반년간
  • pISSN
    1738-5377
  • eISSN
    2713-6027
  • 수록기간
    2004~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236 DDC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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