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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임실ㆍ남원의 세거 공동체와 현주서원 건립 및 복설의 의의
The clan communities in Imsil and Namwon and Meaning of Construction and Rebuilding of Hyeonju Seowon in Jeoll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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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전북사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전북사학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74호 (2025.07)바로가기
  • 페이지
    pp.91-130
  • 저자
    이선아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47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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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After King Gojong ascended to the throne in 1863, Daewongun took control of the government and implemented a policy to abolish more than 600 seowon, leaving only 47 seowon and sau. Many of the destroyed seowon were later restored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and after Korea's liberation. This paper examines Hyeonju Seowon, which was established in 1704 to honor Jeong Yeom. Following the consensus of local Confucian families, the memorial tablet of Goryeo's Prime Minister Lee Neung-gan was also enshrined there. Later, memorial services were held for Byun Yu, Jeong Gyeon, and Kim Bok-heung, and the seowon transformed into a center that attracted not only the Changwon Jeong clan but also other local Confucian families around Namwon, including the Suncheon Kim, Jangyeon Byun, Saknyeong Choi, and Jeonju Lee clans. Hyeonju Seowon, which came to represent Namwon, was abolished in 1868 but was restored in 1967. Following the reorganization of administrative districts, the restored seowon was incorporated into Imsil-gun. In 1953, discussions for its restoration began, led by the long-settled clan communities of Imsil-gun, and in 1955, the local Confucian family group, Yugye(儒契), was organized to support the restoration. Through these collective efforts, Hyeonju Seowon - abolished in 1869 - was finally restored in 1967, more than 100 years later. The restoration of Hyeonju Seowon is viewed as the result of efforts by the communities of Imsil and Namwon to preserve their the identity of the family clans and to recreate a historical site that reflects and commemorates the local narratives in which their identity is embedded.
한국어
고종이 1863년 즉위한 후, 정권을 장악한 대원군은 47개의 서원과 사우를 남기고 600여 개의 서원을 훼철하는 정책을 밀어붙였다. 이렇게 훼철된 서원의 상당수가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에 복설되었다. 본고에서는 살펴본 현주서원은 1704년에 정염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는데, 사족의 공론에 의해 고려 문하시중 이능간이 합향되었다. 이어서 변유와 정견, 김복흥이 추향되면서 창원정씨뿐만 아니라 순천김씨, 장연변씨, 삭녕최씨, 전주이씨 등 남원 인근의 사족을 결속시키는 서원으로 변모하였다. 남원을 대표하던 현주서원은 1868년에 훼철되었다가 1967년에 복설되었다. 복설된 현주서원은 행정구역 개편으로 임실군에 편입되었는데, 임실군의 세거 공동체를 중심으로 1953년 서원 복설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였고, 1955년에 복설을 위한 ‘유계(儒契)’를 조직하였다. 계원을 성씨별로 정리하면, 영천이씨[41명], 순천김씨[33명], 장연변씨[16명], 진주강씨[12명], 전주최씨와 전주이씨[10명], 창원정씨[9명]가 전체 68.94%를 차지한다. 광주이씨[5명], 풍천노씨[4명], 청주한씨[4명], 금산김씨[4명]을 포함하면 77.89%에 이른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1869년에 훼철된 현주서원은 100여 년이 지난 1967년에 복설되었다. 현주서원 복설은 간재문인을 비롯하여 임실과 남원의 세거 공동체의 사족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자신들의 정체성이 투영된 지역의 서사를 기억하기 위한 역사적 공간을 재현하기 위한 노력의 결실이라고 생각한다.

목차

Ⅰ. 머리말
Ⅱ. 玄洲書院 건립과 門下侍中 李淩幹 合享
Ⅲ. ‘三先生’ 追享과 현주서원 復設 논의
Ⅳ. 맺음말
[부록]
<국문초록>

<참고문헌>

저자

  • 이선아 [ Lee, Sun-Ah | 전북대학교 이재연구소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전북사학회 [The Jeonbuk Historical Society]
  • 설립연도
    1977
  • 분야
    인문학>역사학
  • 소개
    본 학회는 "역사학의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이바지한다"는 목표하에 도내의 역사학자들을 주축으로 1976년에 창립된 이래 30년 이상의 연륜을 이어온 정통 역사학회이다. 수차례의 학술대회를 개최하였을 뿐 아니라, 학술지 '전북사학'을 30호까지 발간하면서 지역 사학 발전의 토대를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 학회는 현재 약 240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으며, 격월로 임원회의와 월례발표회를 개최하고 있다. 매 발표회에 실제로 참여하는 인원이 항상 30명이 넘는다. 대부분의 역사관련 학회가 주로 대학교수나 강사들로 구성되어 있는 데 비해 전북사학회는 대학교수, 강사는 물론 학예사, 연구원, 중등학교 역사담당교사 등 역사와 관련된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대학에서 연구한 역사학에 관한 이론을 중등학교 교육 현장에 올바로 적용하여 이론과 실제를 하나로 만들려는 것이 향후 전북사학회의 지향점이다.

간행물

  • 간행물명
    전북사학 [JEONBUK SAHAK ; The Jeonbuk Historical Journal]
  • 간기
    연3회
  • pISSN
    1229-2001
  • 수록기간
    1977~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911 DDC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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