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ous researchers have often summarized the early Chan school’s view of the Pure Land as the doctrine of the “Mind-Only Pure Land” (唯心淨土), but this characterization is not entirely accurate. The early Chan patriarchs generally adopted a critical stance toward the notion of rebirth in the Western Pure Land. Masters such as Daoxin (道信) practiced Pure Land recitation based on the principles of “calming the mind” (安心) and “observing the mind” (觀心), interpreting Amitābha recitation through the lens of emptiness (空) and offering new interpretations of both Pure Land thought and related practices. Furthermore, the Chan masters’ reflections on the concept of “purity of the land depending on the purity of the mind” (心淨土淨) and their use of metaphors such as “the mind itself is the Pure Land” revealed distinct characteristics of early Chan Pure Land thought, which significantly influenced later developments. While no single monk can be said to fully represent early Chan's position on the increasingly popular Amitābha Pure Land belief, the sources confirm that prominent Chan figures of the time consistently held clear views on the matter. This is evident in texts such as the Record of the Masters and Disciples of the Laṅkāvatāra (楞伽師資記) and the Platform Sūtra (壇經). Taken together, Chan patriarchs from Daoxin to Huineng (慧能) maintained a critical attitude toward the idea of seeking rebirth in the Western Pure Land. They believed that only when the mind is pure can one truly perceive a pure Buddha-land. In the process of critiquing Pure Land faith, they transformed the concept of “Pure Land” into a metaphorical framework, reinterpreting it from the perspective of Chan’s mind-centered approach to practice. As a result, the question of rebirth in the Pure Land was effectively replaced by the question of “how to cultivate and purify the mind,” forming a unique understanding of the Pure Land among early Chan practition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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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연구자들은 초기 선종의 정토관을 “유심정토(唯心淨土)”로 요약해 왔으나, 이러한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초기 선종의 지도자들은 서방정토 왕생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도신(道信) 등의 선사는 “안심(安心)” 과 “관심(觀心)”의 종지를 바탕으로 공(空)의 관념에 입각한 염불법문을 실 천하였으며, 정토 사상과 염불 수행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였다. 또 한 선사들은 “심정토정(心淨土淨)” 문제에 대한 사유와 “마음이 곧 정토” 라는 비유의 사용을 통해 초기 선종 정토관의 뚜렷한 특색을 드러내었고, 이는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점차 유행하게 된 아미타불 정토 왕생 사상에 대하여, 특정 승려가 초기 선종의 입장을 대표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사료에 기록된 선종의 지 도자들은 모두 이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취하고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은 『능가사자기(楞伽師資記)』, 『단경』등의 문헌에서도 확인 된다.종합적으로 볼 때, 도신부터 혜능에 이르기까지의 선사들은 서방 극 락세계에 왕생하고자 하는 수행 관념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였다. 그들은 오직 자심(自心)이 청정해야만 청정한 불국토를 볼 수 있다고 보았고, 정토 왕생 신앙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정토(淨土)”를 비유의 장 치로 활용하여, 선종 특유의 심(心)을 중심으로 한 수행관념을 해석하고 설 파하였다. 이로 인해 정토 왕생이라는 문제는 “어떻게 마음을 닦고 정화할 것인 가”라는 문제로 대체되었으며, 이는 초기 선종 수행자들이 형성한 독자적 인 정토관을 이룬다.
목차
한글요약 Ⅰ. 머리말 Ⅱ. 초기 선종의 정토 왕생에 대한 태도 Ⅲ. 선종 조사들이 말하는 염불법문(念佛法門) Ⅳ. 초기 선종의 “심정토정(心淨土淨)” 입장과“심즉정토(心即淨土)”의 비유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고타마 싯다르타가 해결하고자 노력하였던 것은 현세에 살아가는 인간의 고뇌와 고통이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의 인식이 그의 깨달음이었으며, 그 깨달음을 사회화하려는 노력이 그의 가르침이요 실천행이었다고 우리는 믿는다.
따라서 불교인에게 있어서의 궁극 목표인 열반은 탈(脫)사회의 경지가 아니며, 자주(自主), 자율(自律), 자유(自由)의 인격을 사회 속에서 실현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아울러 개인적 완성인 열반을 사회화하려는 노력이 부처님의 실천행이었고, 그 결실이 승가 사회였다.
이러한 우리의 인식은 이미 역사상 정토(淨土)사상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이는 그 행태에 있어서 기복적 신앙으로 치우침으로써 그 본의가 침체된 면이 없지 않다. 이에 우리는 자주, 자율, 자유라는 인류의 이상적 인격을 완성해 가듯이 자유, 평등의 사회를 구현해 가는 것이 정토를 이루는 길임을 재인식하고,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 연구와 능동적 실천을 위해 "한국정토학회"를 결성하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 개개인의 불교적 인격완성이 저절로 정토를 이루게 할 것이라는 안이함을 경계하며, 부처님의 이타적 노력을 교훈 삼아, 사회의 제반 문제를 불교적 입지에서 해결하는데 일익을 도모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따라서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윤리, 예술, 사회 등의 제반 분야도 당연히 우리의 관심 영역이 된다.
결국 우리의 취지는 불교 교학의 이론적 토대 위에서 정토 실현의 현실적 실천방도를 모색하자는 것이며, 당시대에 요구되는 불교의 실천성을 회복함으로써 불교가 정신적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할 대안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즉 우리는 모든 학문의 활동을 정토에로 승화시켜서 인류 이상(理想)의 구현에 이바지 하고자 함이니, 이것이 우리의 염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