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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고구려비를 통한 고구려의 진출로 고찰 - 廣開土王碑, 『日本書紀』와의 비교, 검토를 중심으로 -
Goguryeo’s Entry Route through the Chungju-Goguryeo Stele - A comparative review with the King Gwanggaeto Stele and Ilbonseogi -
충주 고구려비를 통한 고구려의 진출로 고찰 - 광개토왕비, 『일본서기』와의 비교, 검토를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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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동아시아고대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동아시아고대학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77집 (2025.03)바로가기
  • 페이지
    pp.101-136
  • 저자
    홍성화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465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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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This paper compares the newly written contents of the Chungju-Goguryeo Stele with related historical sources such as the King Gwanggaeto Stele and Ilbonseogi. First, the Chungju-Goguryeo Stele was deciphered, and the phrase “Yeongrak 7 years” was found. This confirmed that the Chungju-Goguryeo Stele was the King Gwanggaeto Stele. Therefore, the content of Yeongrak 7th year (397) written on the Chungju-Goguryeo Stele is between King Gwanggaeto Stele’s Yeongrak 6th year (396) and Yeongrak 8th year (398), which can be understood in relation to Baekje’s records in the Ou-jin 8th year (397) of Ilbonseogi. In other words, Goguryeo took 58 fortresses and 700 villages of Baekje in Yeongrak 6th year, then reached Ubeolseong-Fortress from Chungju in Yeongrak 7th year, and sent troops to Baeksintogok in Yeongrak 8th year to assess the situation and obtain Gataeragok, etc. In addition, if the place name of Irimseong-Fortress, which has not been correctly interpreted, is analyzed through articles related to the land in East-Han of Ilbonseogi, Irimseong-Fortress is the eastern entry route for Goguryeo to enter Silla, and the Ibeolji Prefecture of Samguksagi is highlighted. In the case of Ubeolseong-Fortress seen in the Chungju-Goguryeo Stele, it is likely to be near Beoljae-hill as a bridgehead for Goguryeo to advance to Silla. Therefore, Ubeolseong-Fortress should be understood to be near Irimseong-Fortress, which is centered on Beoljae-hill.
한국어
본고에서는 새로이 판독된 충주 고구려비의 내용을 광개토왕비문과 『日本書紀』 등 관련 사료와의 비교, 검토를 통해 살펴보면서 당시 고구려의 동쪽 진출로에 대 해 고찰하였다. 우선 충주 고구려비의 판독을 통해 전면 상단부에서 ‘永樂七年’의 글자가 있음 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으며 이로써 충주 고구려비가 광개토왕대의 비임이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충주 고구려비에 씌어있는 永樂 7년(397년)의 내용은 광개토왕비의 永樂 6년(396년)과 永樂 8년(398년)의 사이에 해당되는 내용으로 『日本書紀』 應神 8年 (397년) 「百濟記」 기록과의 관련성 속에서 파악될 수 있다. 즉, 고구려가 永樂 6년에 백제의 58城과 700村을 공취한 후, 永樂 7년에 충주로 부터 于伐城에 이르렀으며, 永樂 8년에 군대를 帛愼土谷에 보내 동정을 살피고 莫□羅城, 加太羅谷을 획득했던 내용과의 연장선상에서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그동안 제대로 해석되지 못했던 『日本書紀』 應神紀의 東韓之地 관련 기사 를 분석하면 爾林城은 고구려군이 신라로 진입하는 동쪽 진출로에 해당되는 곳으 로 『三國史記』 地理志에 고구려의 영현으로 나오는 ‘伊伐支縣’과의 관련성이 부각 된다. 충주 고구려비에 나오는 ‘于伐城’의 경우 고구려가 신라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 보의 성격으로서 벌재(伐嶺, 伐峙) 인근이 유력하며, 따라서 于伐城은 고구려의 동쪽 진출로에 위치한 伊伐支縣, 爾林 부근으로 파악된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충주 고구려비의 ‘永樂七年’과 비문의 내용
Ⅲ. 광개토왕비를 통한 충주 고구려비의 분석
Ⅳ. 『日本書紀』를 통한 고구려의 진출로 분석
Ⅴ. 맺음말
【참고문헌】

키워드

충주 고구려비 광개토왕비 일본서기 삼국사기 永樂七年 于伐城 爾林城 벌재 伊伐支縣 東韓之地 Chungju-Goguryeo Stele King Gwanggaeto Stele Ilbonseogi Samguksagi Yeongrak 7th year Ubeolseong-Fortress Irimseong- Fortress Beoljae-hill Ibeolji Prefecture land in East-Han

저자

  • 홍성화 [ Hong, Sung-hwa | 건국대학교 글로컬캠퍼스 KU글로컬혁신대학 부교수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동아시아고대학회 [The Association Of East Asian Ancient Studies]
  • 설립연도
    1999
  • 분야
    인문학>기타인문학
  • 소개
    본 학회는 동아시아권역의 고대의 역사와 문화, 언어와 문학, 종교와 철학, 민속과 사회, 고고학 등에 관한 고대학 관련분야의 학문을 학제적 국제적인 협력과 유대를 통해 연구의 가능성을 확대하고, 연구의 질을 향상시키며, 동아시아에 있어서의 학문발전과 문화교류 및 학자, 연구자, 회원 상호간의 유대와 국제적 친선을 도모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이를 위하여 본 학회는 동아시아고대학에 관한 연구발표회, 학술강연회, 강독회, 학술답사, 도서출판, 학회지 발행 등의 사업을 기획하여 집행한다.

간행물

  • 간행물명
    동아시아고대학 [DONG ASIA KODAEHAK ; The East Asian Ancient Studies]
  • 간기
    계간
  • pISSN
    1229-8298
  • 수록기간
    2000~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910 DDC 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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