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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전쟁 이전 일본 민간의 조선인식 ― 신문기사를 중심으로 ―
Japanese Civilian Perception of Korea before the Sino-Japanese War : A Study Pursued by Focusing on Newspaper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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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한국일본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일본학보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142권 (2025.02)바로가기
  • 페이지
    pp.269-291
  • 저자
    방광석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463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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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This paper examined the perception of Korea among the Japanese people from the 1880s to the Sino-Japanese War in 1894, focusing on newspaper articles. The Mainichi Shimbun, affiliated with the Constitutional Reform Party, was concerned about the expansion of Russian power in the 1880s and emphasized the “independence” of Korea. However, after the Im-o(壬午) Incident and the Gap-sin(甲申) Coup, it started seeking “self-reliance” for Korea through cooperation with the Western powers, as well as with China and Japan, such as neutralization of Korea. The Liberal Party's organ, the Jiyu Shinbun, was conservative in its stance, unlike the Jiji Shinpo which aimed to expand into Korea. However, after the Sino-French War, Jiyu Shinbun's views on foreign affairs changed into a Sino-Japanese confrontational stance. Even in the 1890s, it did not make a drastic shift to Oriental hegemony theory like the Mainichi Shimbun. The Kinki(近畿) region's Civil Rights newspaper, the Nihonrikkenseito Shinmun, viewed the relationship between Japan and Korea unjustified by comparing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Western powers and Japan over the enforcement of unequal treaties with the relationship between Japan and Korea. Its characteristic feature was that it presented a multilayered structure of the situation surrounding Korea from an international perspective and pursued a cool-headed response.
한국어
본고에서는 1880년대 이후 청일전쟁 시기까지 일본 민간의 조선인식을 신문 언론기사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중에서도 자유민권운동 계열의 신문을 대상으로 각 매체의 기사 내용과 성향을 분석함으로써 일본정부의 정책과 대비해 청일전쟁 이전 민간 측의 조선인식이 어떠했는지 검토하였다. 자유민권운동 세력은 당시 일본정부나 친정부계 언론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스스로의 주장을 전개했다. 입헌개진당 계열의 《마이니치신문》은 1880년대에 들어 러시아의 세력 확대를 우려하여 조선의 ‘독립’을 중시했으나 이후 임오군란, 갑신정변을 거치며 서양 열강과의 협조, 청일 협조를 통해 조선중립화 등 조선의 ‘자립’을 꾀하려는 입장을 취했다. 1890년대에 들어 조선을 둘러싼 국제정세가 바뀌게 되자 조선인식이 크게 바뀌어 ‘맹주’의식을 드러내게 되었다. 자유당의 기관지 《자유신문》의 논조는 조선으로 팽창을 목표로 한 《시사신보》와 달리 현상유지론적이었다. 그러나 청불전쟁을 경계로 《자유신문》의 대외론도 청일 대결론으로 바뀌었다. 1890년대에 들어서도 《마이니치신문》처럼 급격히 동양맹주론으로 전환하지는 않았다. 일본의 국력 신장에 대한 소극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대외정책에서 현실주의적 신중론을 취했다고 할 수 있다. 오사카 지역 민권파가 결성한 입헌정당의 기관지인 《일본입헌정당신문》은 1880년대 초 일본과 조선 사이의 관계를 불평등조약을 강제한 서양 열강과 일본의 관계에 비정하여 상대화함으로써 조선에 대한 강경론에는 정당성이 없다고 보았다. 유럽의 정세를 포함한 국제적인 시야에서 전쟁반대론, 조선포기론, 내정불간섭론을 제시하고 냉정한 대응을 모색한 것이 특징이다.

목차

<요지>
1. 머리말
2. 입헌개진당 계열 신문의 조선인식
3. 자유당 계열 신문의 조선인식
4. 입헌정당 기관지의 조선인식
5. 맺음말
참고문헌(Reference)

키워드

조선인식 신문기사 《自由新聞》 《日本立憲政黨新聞》 《每日新聞》 Perception of Korea Jiyu Shinbun(自由新聞) Nihonrikkenseito Shinbun(日本立憲政黨新聞) Mainichi Shinbun(每日新聞)

저자

  • 방광석 [ Bang, Kwang Suk | 홍익대학교 교양과 부교수, 일본근현대사 전공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한국일본학회 [Korea Association Of Japanology]
  • 설립연도
    1973
  • 분야
    인문학>일본어와문학
  • 소개
    본 한국일본학회는 일본관련 학회로는 1973년에 한국 최초로 성립되어 2015년 3월 현재 가입회원수 기준 1000여명에 달하는 방대한 학회로 발전하였다. 본 학회는 일본어학 및 일본학은 물론,일본의교육,사상,역사,민속 등 일본학 전반에 걸친 연구와 한일간의 일본학 전반에 걸친 비교 연구를 대상으로 하는 학회로서 회원들의 연구기회 제공과 정보의 교류를 주된 목표로 하고 있다. 분회 발표를 포함하여 매년 20회 가까운 학술발표회와 국제학술대회를 개최 함으로서 발표 기회의 제공과 함께 회원 상호간의 친목 도모의 장으로도 활용하며 건전한 학회발전을 지향하고 있다.

간행물

  • 간행물명
    일본학보 [The Korean Journal of Japanology]
  • 간기
    계간
  • pISSN
    1225-1453
  • 수록기간
    1973~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913 DDC 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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