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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학의 형성에 미친 三足堂 金大有의 영향
The Impact of Kim Dae-yu on the Formarion of Nammyeong Study
남명학의 형성에 미친 삼족당 김대유의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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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우계문화재단 바로가기
  • 간행물
    우계학보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47호 (2024.12)바로가기
  • 페이지
    pp.55-88
  • 저자
    김경수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463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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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In 1561, Toegye evaluated Nammyung as the only noble scholar in the southern region. However, this evaluation does not mean to praise Nam-myeong, but rather to criticize him as a scholar who does not go to a post and keeps only his tenacity. Prior to that, some scholars like this had a unique academic tradition in the middle and lower reaches of the Nakdong River, because they all passed away and only Nammyung was alive. Nammyung had not originally lived here.He has been heavily influenced by them since the age of 30, studying in this province where his wife's home resides.Among them, Kim Dae-yu was a representative figure. Nammyung and Samjokdang were friends even though there was a 21-year age gap. Nammyung praised Samjokdang as ‘the best scholar in the world’, ‘a person without a single fault’, and ‘a hero who can cover the world’. And he regretted that he was ‘a person who could help ideal politics’ but ‘a person who could not meet the times and a king who recognized him’. However, he was evaluated as a person with excellent insight, who did not resent other people, looked for signs, gave up his post, and lived a leisurely life. In this respect, Nam Myung was deeply influenced by him and came to establish his own ideology. We can see that Nammyung's evaluation of the Three Jokdang in the stele and Daegok's evaluation of Nammyung in the inscription are almost identical.
한국어
1561년에 퇴계는 남명을 남쪽지방에서 유일한 고상한 선비라고 평가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남명을 칭찬하는 뜻이 아니라 벼슬에 나가지 않고 재야에서 자신의 지조만 지키는 선비라고 비판하는 말이다. 그 이전에 낙동강 중하류 연안에는 몇몇의 이와 같은 선비들이 독특한 학풍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모두 세상을 떠나고 오직 남명만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남명은 원래 이곳이 삶의 터전이 아니었지만 30세 이후 처가가 있는 이곳에서 강학을 하면서 그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삼족당(三足堂) 김대유(金大有)였다. 남명과 삼족당은 21년의 나이 차이가 있었지만 벗으로 지냈다. 남명은 삼족당을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선비’, ‘하나의 허물도 없는 인물’, ‘세상을 뒤덮을만한 영웅’이라고 칭찬하였다. 그리고 그를 ‘왕도정치를 도울 수 있는 인재’이지만 ‘시대와 그를 알아주는 임금을 만나지 못한 사람’이라고 안타까워하였다. 그렇지만 삼족당은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기미를 살펴서 벼슬을 포기하고 유유자적하면서 살아간 식견이 탁월한 인물이라고 평가하였다. 바로 이러한 면에서 남명은 깊은 영향을 받았고, 이로부터 그 자신의 사상을 정립하게 되었던 것이다. 남명이 삼족당의 묘갈에서 그를 평가한 내용은 나중에 남명이 죽은 후에 대곡 성운이 남명의 묘갈에서 남명을 평가한 내용과 거의 일치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목차

논문초록
1. 퇴계의 남명 비판
2. 삼족당과 남명의 인연
3. 현량과와 삼족당 그리고 남명의 영웅론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저자

  • 김경수 [ Kim, Kyeong-soo | 경상국립대학교 철학과 강사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우계문화재단
  • 설립연도
    1987
  • 분야
    인문학>유교학
  • 소개
    * 우계의 성리․교학․경세사상을국내외에 연구소개․보급 * 논문집 간행, 세미나 개최 및 한국학 원류로서의 전통문화 발전에 기여 * 사우(祠宇)와 묘역 관리 * 문화전승보유를 위한 연구비 및 장학금을 지급하는 일 * 문집의 번역, 간행

간행물

  • 간행물명
    우계학보
  • 간기
    반년간
  • pISSN
    2713-7880
  • 수록기간
    1987~2025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151 DDC 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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