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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란 후 궁중연향의 설행과 『악학궤범홀기(樂學軌範笏記)』
Hosting of Palace Banquet after the Both Invasions and Akhakgwobeomhol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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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한국국악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한국음악연구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76집 (2024.12)바로가기
  • 페이지
    pp.405-428
  • 저자
    이정희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460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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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0원

원문정보

초록

영어
Akhakgwobeomholgi 樂學軌範笏記 is the oldest Jeongjaemudoholgi 呈才舞蹈笏記 that is handed down to the present time. Up to this time, the predominant focus has been the piecemeal interpretation that it was the date of 1705 and has the similarity with Akhakgwobeom 樂學軌範 for the contents. However, through the readings of letters with the neglected part, it is shown that Akhakgwobeomholgi is a different copy that is reproduced for other bibliographies. There are separate copies existing. Furthermore, those 11 types of Jeongjae 呈才 listed on this book has closely related to the internal performance in early part of the 17th century and the time of genuine copy is related to the establishment of the external performance system as well as it is traced with the connection to the banquet for envoys. Therefore, throughout the palace banquet in general, it is considered as facilitated throughout. Lastly, through the comparison of contents for Akhakgwobeom and Akhakgwobeomholgi, it is repeatedly confirmed as the core dance note that demonstrated the changed Jeongjae dance performance through wars and insurrections. Akhakgwobeomholgi is the Jeongjaemudoholgi before its specialization and has the complication in the aspect in performance art data generally facilitated from the early 17th century to the mid-18th century.
한국어
『악학궤범홀기』는 현재까지 전하는 가장 오래된 정재무도홀기이다. 그동안 1705년 자료이며, 『악학궤범』과 내용상 유사하다는 단편적인 해석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연대를 추정하는 ‘康熙四十四年歲在’ 아래에 희미하게 쓰여진 ‘謄’이라는 한자를 드러냄으로써, 저본이 별도로 있었고 이를 필사한 자료가 『악학궤범홀기』임을 밝혔다. 이듬해인 1706년에 외연과 내연이 거행되었으므로, 『악학궤범홀기』는 이 잔치에서 연행 할 정재를 연습하기 위해 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706년 연회는 숙종의 즉위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였고, 내연과 외연이 설행되었는데 특히 외연의 경우 임란 이후 100여 년 만에 설행한 것이어서 그 의미가 가중되었다. 낙점 제도를 통해 이 책에 수록된 정재 11종이 1611년, 1624년, 1630년 풍정의 공연과 밀착성을 지님을 도출해 내기도 하였다. 아울러 명청교체기라는 17세기 외교의 특성상 사신연 준비에도 활용되었을 가능성 을 제안해 보았다. 즉, 내연, 외연, 사신연 등 궁중 연향 전반에 걸쳐 범용했으리라고 확장해 보았다. 전란의 후유증으로 인해 각 연향에 쓸 정재무도홀기를 매번 제작하기는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악학궤범』과 『악학궤범홀기』의 내용 비교를 통해, 장면 분할, 악곡명 생략, 무도(舞圖)의 부분 생략, 한글 창사 생략 등의 변화가 있음을 논하였다. 이를 통해 전쟁과 내란을 거치며 변화된 정재 연행의 추이를 보여주는 핵심 무보(舞譜)임을 확인하였다.

목차

<국문요약>
Ⅰ. 머리말
Ⅱ. 전란과 『악학궤범홀기』의 저본
Ⅲ. 전란 후의 내연과 『악학궤범홀기』의 밀착성
Ⅳ. 『악학궤범홀기』 활용의 보편성
Ⅴ. 정재 연행의 변화와 『악학궤범홀기』의 상관성
Ⅵ.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악학궤범 악학궤범홀기 정재무도홀기 정재 궁중연향 Akhakgwobeomholgi Jongjaemudoholgi Akhakgwobeom Jeongjae banquet

저자

  • 이정희 [ Lee, Jung-Hee |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한국국악학회 [Korean Musicological Society]
  • 설립연도
    1948
  • 분야
    예술체육>음악학
  • 소개
    한국국악학회는 국악을 연구하여 음악학 및 민족음악의 향상에 기여할 목적으로 1948년 4월 봄에 이혜구, 장사훈, 성경린, 이주환 외 15명의 발기로 발족하여 1963년 12월 14일 사단법인체로 인가취득한 이래 1) 국악의 연구발표 2) 국악 관계자료서 수집 3) 국악에 관한 전시회 및 강연회 개최 4) 국악에 관한 출판사업 5) 국내의 학계간 교류 등의 사업을 진행해 오고 있다. 본 학회는 국악의 연구발표를 4000여회에 가까운 월례발표회를 가졌으며, 20회에 걸친 국악기 및 국악서적 전시회를 열고 3회의 신국악작곡 발표회를 가진 바 있다. 특히 학회에서는 1971년 한국음악연구 제1집을 발간한 이래 현재 제45집 출판에 이르렀으며, 30여종의 고악보 간행, 이혜구 박사 송수기념 음악학 논총, 장사훈 회갑기념 동양음악논총 등 30여권의 단행본을 출판하였다. 또한 1989년 제1회 국악학 전국대회를 열어 한국음악의 쟁점이 되는 주제를 선정하여 전국규모의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1975년 한·일간의 고려악 연구회를 발족시켜 일본의 음악학자들과의 공동연구로 심포지움을 개최하였으며, 1981년에는 국제전통음악학회(ICTM) 서울대회를 치뤄내고, 1994년에는 제1회 아시아 태평양 민족음악학회(APSE)를 서울에서, 1999년에는 제6회 아시아 태평양 민족음악학회(APSE)를 수원에서 성황리에 치뤄내는 등 외국학회와 교류에 힘써왔다.

간행물

  • 간행물명
    한국음악연구 [STUDIES IN KOREAN MUSIC]
  • 간기
    반년간
  • pISSN
    1975-4604
  • 수록기간
    1975~2025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679 DDC 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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