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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상주인의 3⋅1운동
March 1st Movement of People from Sangju, North Gyeongsang Provi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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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역사와 교육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역사와 교육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39집 (2024.11)바로가기
  • 페이지
    pp.223-245
  • 저자
    황선익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458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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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Sangju, the center of northwest Gyeongsangbuk-do, was an activity site for various secret association groups. The independence movement of Sangju, which led from the righteous army to the righteous army struggle, led to the righteous army struggle in the 1920s through March 1. The March 1st Movement of Sangju residents in Seoul in 1919 was led by students, including those from Sangdong churches such as Kim Jin-ho. Following the activities of the New People's Association, Kim Jin-ho, who had a close relationship with Pastor Jeon Deok-ki and Lee Pil-ju, was responsible for spreading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to consulates in each country through students during the March 1st Movement. Students from Sangju who were studying in Seoul played a role in spreading the March 1st and 5th Independence Movement. The independence movement of students from Sangju led to the activities of the Paris Peace Conference, which was promoted in June. The March 1st Movement of Residents in Seoul was transferred to Sangju from mid-March amid mutual sympathy. The Sangju Manse Demonstration led to the Sangju Market Demonstration on March 23, the Ian Soam-ri Embankment Demonstration on March 29, the Munjangsan Demonstration in North Hwabuk in August, and the Unheung-ri Demonstration in North Hwabuk on April 9. It was mostly young people in their 20s and 30s who led the Sangju Manse Demonstration. It can be said that the March 1st Movement of the people of Sangju, which transcended the region, informs the super-economy of the March 1st Movement as well as the Sangju Independence Movement.
한국어
경북 서북부의 중심지인 상주는 다양한 비밀결사단체의 활동지였다. 의병에서 의열투쟁으로 이어진 상주의 독립운동은 3⋅1운동을 매개로 하여 1920년대 의열투쟁으로 이어졌다. 1919년 서울에서 일어난 상주인의 3⋅1운동은 김진호 등 상동교회 인사를 비롯하여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일어났다. 신민회 활동에 이어 전덕기, 이필주 목사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김진호는 3⋅1운동 당 시 학생들을 통해 독립선언서를 각국 영사관에 전파하는 역할을 맡았 다. 서울에 유학중이던 상주 출신 학생들은 3월 1일, 5일 만세시위를 확 산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상주 출신 학생들의 독립운동은 6월에 추진된 파리강화회의 동조 활동으로 이어졌다. 서울에서 전개한 상주인의 3⋅1운동은 상호간의 교감 속에서 3월 중순부 터 상주로 전이되었다. 상주의 만세시위는 3월 23일 상주 장터시위, 3월 29 일 이안 소암리 제방시위, 4월 8월 화북 문장산 시위, 4월 9일 화북 운흥리시 위 등으로 이어졌다. 상주 만세시위를 이끈 것은 대체로 20~30대의 젊은 청 년이었다. 지역을 초월하여 일어난 상주인의 3⋅1운동은 상주 독립운동은 물론 3⋅1운동의 초경계성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것이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서울 등지에서 전개한 상주인의 3⋅1운동
Ⅲ. 상주에서 일어난 3⋅1운동의 지역별 전개 양상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Abstract

키워드

3⋅1운동 상주읍 시위 소암리 시위 문장산 시위 김진호 March 1st Movement in Seoul Independence Protests Sangju-Myun Mun Jang-san Kim Jin-ho

저자

  • 황선익 [ Hwang, Sun-ik | 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교수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역사와 교육학회 [The History Education Association]
  • 설립연도
    1989
  • 분야
    사회과학>교육학
  • 소개
    역사와 역사교육의 학술적 연구 뿐만 아니라 역사현장에서 적용을 목표로 하는 실천적인 면모도 중요하게 간주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지나간 과거의 단순한 축적만이 아니라 우리의 뿌리인 조상의 살아 숨쉬는 삶 그 자체일 것입니다. 그들의 짧은 생각으로 고통과 아픔을 던져준 것은 없었는지, 모든 것을 수용하여 보다 나은 공동체, 열리고 참된 오늘의 삶에서 다가오는 미래의 새롬찬 세계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를 바로 이해하고 나아가 실천해야 활짝 열린 미래가 올 것입니다. 당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점검하고 후세대를 교육시켜 참된 역사를 알리고 실천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올바른 역사를 연구하고 역사교육을 실천하기 위해 함께 하여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역사교육의 기본 텍스트인 역사교과서를 중심으로 연구하고 부속 학회인 역사와 교육학회에서 학술 발제와 점검을 통해 진정한 역사와 역사교육이 연구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앞장을 설 것입니다. 활기차고 열린 미래의 세계를 위해 우리 모두 올곧은 역사교과서로 진정한 역사교육이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뜻과 힘을 모아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간행물

  • 간행물명
    역사와 교육 [The History Education Review]
  • 간기
    반년간
  • pISSN
    2093-5021
  • 수록기간
    1990~2025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374 DDC 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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