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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문

1860~70년대 선교사제 재입국 과정에서 조선인 신자들의 활동과 순교 - 최지혁과 이병교를 중심으로 -
Activities and martyrdom of Korean Catholics in the Re-entry Process of Missionaries in the 1870s - Focusing on Choi Ji-hyeok John and Lee Byeong-gyo Le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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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수원교회사연구소 바로가기
  • 간행물
    교회사학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25호 (2024.09)바로가기
  • 페이지
    pp.151-229
  • 저자
    이석원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456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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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This article focuses on Choi Ji-hyeok(John) and Lee Byeong-gyo(Leo) and comprehensively describes the role played by Joseon believers in the re-entry of the missionary order in the 1866-1870s and the process of their arrest and martyrdom while assisting the missionary order's pastoral activities. The purpose is to examine it and reveal its significance in church history. The activities and martyrdom of Joseon believers who participated in the missionary re-entry and pastoral process from 1866 to 1879 can be divided into three periods. The first is the period from the escape of the missionaries in 1866 to before the Chaku Synodus at the end of 1868. During this period, believers mainly in Shanghai and Chefu performed missionary work and participated in the Byeonginyangyo and Deoksan Cave Incidents. The second period is from 1869 to 1875, and after Sinodus, believers came and went around the Chaku Liaison Center, delivering news from within Joseon and preparing for the reentry of the missionaries. The third is the period from 1878 to 1879 after the missionaries re-entered the country in 1876. During this period, missionary priests and believers were arrested. Although the missionary priests were released, the believers who were imprisoned were martyred. Choi Ji-hyeok took an active role in the re-entry and pastoral care of the missionaries during all three periods. He was involved from the time priest Ridel left Joseon for China in 1866, and was instrumental in the successful re-entry of the missionaries in 1876 and the re-entry of Mgr. Ridel in 1877. He also served as Mgr. Ridel's landlord and played a key role in the Joseon Church until his arrest and death in prison in 1878. Choi Ji-hyeok was also directly or indirectly connected to other believers who were involved in the re-entry of missionaries and the resumption of missionary pastoral activities(local pastoral visits). Lee Byung-gyo participated in missionary recruitment activities, albeit unsuccessfully, during the first and second periods, and accompanied and assisted missionaries with his family during the third period. He was priest Deguette's landlord at the time of his arrest in 1879 and was martyred in prison. Kim Francis, Kwon Chi-moon(Tadaeo), Kim Seong-heum(John) who participated in the re-entry of the missionary priests by traveling to and from the Korean liaison center in Chaku, and Lim Seong-sil(Peter) who participated in the voyage of the missionary priests Kim Dae-gun and served as captain during their re-entry, Kim Ki-ho(Kim Hyeong-ok, John), who served as Mgr. Blanc's chaplain and general secretary, assisted in pastoral activities, wrote and translated Catholic books, educated the faithful, and contributed to evangelization efforts, were among those who worked with Choi Ji-hyeok or participated at his urging[direction].
한국어
이 글은 최지혁(요한)과 이병교(레오)를 중심으로 하여 1866~1870년 대 선교사제의 재입국 과정에서 조선 신자들이 수행한 역할과 선교사제의 사목활동을 보좌하다가 체포되어 순교에 이르는 과정을 종합적으로 검토 하여 그 교회사적 의의를 밝히는데 목적이 있다. 1866년부터 1879년까지 선교사제의 재입국과 사목 과정에 참여한 조 선 신자들의 활동과 순교를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1866년 선 교사제의 탈출부터 1868년 말 차쿠 시노두스 이전까지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상하이와 체푸를 중심으로 신자들이 선교사제들을 수행하면서 병인 양요와 덕산굴총사건에 참여했다. 둘째는 1869년부터 1875년까지 시기 이며, 시노두스 이후 차쿠 연락소를 중심으로 신자들이 왕래하면서 조선 내 소식을 전하고 선교사제 재입국을 준비하였다. 셋째는 1876년 선교사 제들이 재입국한 이후 1878~1879년에 이르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선 교사제와 신자들이 체포되었는데, 선교사제들은 석방되었지만 옥에 갇혔 던 신자들은 순교했다. 최지혁은 세 시기 모두에 걸쳐 주도적으로 선교사제의 재입국과 사목 활동 보좌에 참여했다. 그는 1866년 당시 리델 신부가 조선을 떠나 중국으 로 갈 때부터 참여했고, 1876년 선교사제의 재입국 성공과 1877년 리델 주교의 재입국 과정에서도 큰 역할을 했다. 또한, 리델 주교의 집주인으로 주교를 보좌하다가 1878년 체포되어 감옥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조선교 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최지혁은 선교사제 재입국과 선교사제의 사목활동 재개(지역 사목 방 문)에 간여했던 다른 신자들과도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병교 는 첫째~둘째 시기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선교사제 영입 활동에 참여했 고, 셋째 시기에는 가족들과 함께 선교사제를 수행·보좌했다. 1879년 드 게트 신부 체포 당시 신부의 집주인이었으며 옥중에서 순교했다. 차쿠의 조선대목구 연락소를 왕래하면서 선교사제의 재입국에 참여한 김 프란치 스코와 권치문(타대오), 김성흠(요한), 김대건 신부의 항해에 참여했고 선 교사제의 재입국 당시 선장으로 활동했던 임성실(베드로), 블랑 주교의 복 사이자 총회장으로서 사목 활동을 보좌하고 천주교서적 저술[번역]과 신 자 교육, 전교 활동에 공헌을 한 김기호(김형옥, 요한) 등은 최지혁과 함께 활동하거나 그의 권유[지시]에 따라 참여했던 신자들이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1866~1868년, 선교사제의 수행원이자 길잡이- 천주교 공인에 대한 희망
Ⅲ. 1868~1875년, 차쿠-조선의 연락망 확보와 정보전달 - 선교사제의 재입국 준비
Ⅳ. 1876~1879년, 선교사제의 입국과 천주교회 재건- 교회조직의 구축과 순교
Ⅴ. 맺음말
[부록] 선교사제의 조선 재입국 과정과 최지혁 연보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선교사제 재입국 최지혁 이병교 차쿠 연락소 리델 주교 블랑 주교 드게트 신부 김 프란치스코 권치문 김성흠 임성실 김기호(김형옥) the Re-entry of Missionaries Choi Ji-hyeok(John). Lee Byeong-gyo(Leo) Chaku Liaison Center Mgr. Ridel Mgr. Blanc priest Deguette Kim Francis Kwon Chimoon( Tadaeo) Kim Seong-heum(John) Lim Seongsil( Peter) Kim Ki-ho(Kim Hyeong-ok John)

저자

  • 이석원 [ Lee, Seok-won | 수원교회사연구소 연구실장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수원교회사연구소 [Suwon Research Institute of Catholic History Ha-nam, Korea]
  • 설립연도
    2003
  • 분야
    인문학>기독교신학
  • 소개
    ◎ 설립취지 "수원교회사연구소"는 천주교 수원교구 설정 40주년을 맞이하여 수원교구와 한국교회의 역사를 연구하고, 신앙 선조들의 삶과 순교영성을 발굴하여, 이를 널리 알리고 후대에 전함으로써 한국 가톨릭 교회의 신앙과 문화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2003년 1월 1일 교구장 최덕기 바오로 주교님이 설립하셨습니다. ◎ 연구소 현황 초대 연구소장은 구산성지 주임신부인 정종득 바오로 신부가 맡게 되었으며, 연구소의 위치는 구산성지 내에 있습니다. 원활한 연구소 운영을 위해 2006년 2월 현재 7명의 연구위원과 6명의 운영위원으로 구성되어 소장의 업무를 보좌하고 있으며, 3명의 연구원이 교회사연구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 향후 연구소의 운영방침 교구 내 순교성지 및 순교자의 생애, 각 성지의 신앙적 유산을 발굴하고 이를 정리하며, 아직 개발되지 않은 교회사적지 및 순교자를 발굴하여 순교영성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아울러 신임 연구원들과 동호회원을 대상으로 매월 둘째주 토요일 한국천주교회사 월례 강좌를 실시한 후 신앙적 나눔을 가지고, 년 1~2회 학술심포지엄과 성지순례, 특별강연 등을 실시하여 순교신심을 고취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교구 내 각 본당이나 공소, 성지의 역사를 편찬하도록 연구소에 위탁하여 오는 작업도 수행할 것입니다.

간행물

  • 간행물명
    교회사학 [Research Journal of Catholic Church History]
  • 간기
    반년간
  • pISSN
    1738-5377
  • eISSN
    2713-6027
  • 수록기간
    2004~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236 DDC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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