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rticle

현재 위치 Home

良志의 국적과 활동 시기 - 아시아미술사의 맥락에서 본 ‘석장사지 탑상문전’을 중심으로 -
Monk Yangji’s Nationality and Period of Activities
양지의 국적과 활동 시기 - 아시아미술사의 맥락에서 본 ‘석장사지 탑상문전’을 중심으로 -

첫 페이지 보기
  • 발행기관
    동악미술사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동악미술사학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35호 (2024.06)바로가기
  • 페이지
    pp.33-58
  • 저자
    蘇鉉淑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453695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6,400원

원문정보

초록

영어
This study examines the nationality and period of activities of Monk Yangji through research and analysis of clay bricks depicting Buddhist images and stupas excavated from Seokjangsa Temple site in Gyeongju and records related to Yeongmyosa Temple. The Buddhist-motif bricks excavated from Seokjangsa Temple were made using molds. This technique originated in India and became popular in China, Japan, and Southeast Asia in the late-7th century. The clay bricks of Seokjangsa Temple have the uniqueness of Silla, different from those of other regions in terms of form, function, composition and format of the picture, etc. Therefore, Yangji, who made such clay bricks, cannot be seen as foreigners from the West or Southeast Asia. Samguk Yusa recorded that Monk Yangji only showed traces during the reign of Queen Seondeok, but the relics excavated from Seokjangsa Temple and Sacheonwangsa Temple, which are said to be Yangji's works, indicate that his activities were in the late 7th century. This study attempted to resolve the contradictions between records and relics in relation to the reconstruction of Yeongmyo Temple. In other words, this study noted the records of the Samguk Sagi that King Munmu pardoned prisoners after the Yeongmyosa Temple fire in 666, and hosted a large banquet the following year. Based on this records, I estimated that Yangji produced a clay Buddha statue of Yeongmyosa Temple, not during the period of Queen Seondeok, but during the period of King Munmu.
한국어
본 연구는 석장사지 출토 塔像文塼과 영묘사 관련 기록에 대한 조사·분석을 통해 양지 스님 의 국적 및 활동 시기를 새롭게 고찰한 것이다. 석장사지 출토 탑상문전은 틀을 사용해 제작한 ‘模印泥像’에 속한다. 이런 제작법은 인도에서 유래했으며, 7세기 후반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크게 유행했다. 석장사지의 탑상문전은 형태, 기능, 화면의 구성과 형식 등에서 이 지역들의 모인니상과는 다른 신라만의 독창적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탑상문전을 제작한 양지는 서역이나 동남아 등지에서 온 외래인으로 보기 어 렵다. 『三國遺事』는 양지가 선덕왕대에만 자취를 드러냈다고 했지만, 양지의 작품으로 전하는 석장 사지와 사천왕사지 출토 유물은 그의 주요 활동시기가 7세기 후반임을 가리키고 있다. 본고는 기 록과 유물의 모순을 영묘사의 중건과 관련해 해결하고자 했다. 즉, 문무왕 6년(666) 영묘사 화재 로 大赦가 이루어졌고, 그 이듬해 大酺가 열렸다는 『三國史記』 기록에 주목, 양지가 영묘사 장육 상을 조성한 시기는 창건기인 선덕왕대가 아니라 중창 불사가 이루어진 문무왕대로 추정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 석장사지 塔像文塼을 통해 본 양지의 국적
Ⅲ . 양지의 활동 시기와 靈廟寺의 중건
Ⅳ. 맺음말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키워드

良志 塔像文塼 國籍 靈廟寺 模印泥像 文武王代 重建 Monk Yangji Buddhist-motif Brick Nationality Yeongmyosa Temple. Mold-made Clay Brick the Period of King Munmu Reconstruction. 良志 塔像文塼 國籍 靈廟寺 模印泥像 文武王代 重建

저자

  • 蘇鉉淑 [ 소현숙 | 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 학술연구교수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동악미술사학회 [Dongak Art History]
  • 설립연도
    1999
  • 분야
    예술체육>미술
  • 소개
    동악은 우리 민족 최상의 예술품인 토함산 석굴암이 위치하는 곳이고, 동시에 조선시대 이안눌의 동악시단이 위치한 서울의 남산이기도 하다. 이러한 종교적 예술성과 학문적 창조성을 깨닫게하며, 나아가 우리 민족미술의 정체성 확립을 위하여 미술사학계의 자양분이 되고자 함에 설립의 목적이 있다.

간행물

  • 간행물명
    동악미술사학 [Dongak Art History]
  • 간기
    반년간
  • pISSN
    1598-1851
  • 수록기간
    2000~2025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609 DDC 709

이 권호 내 다른 논문 / 동악미술사학 제35호

    피인용수 : 0(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함께 이용한 논문 이 논문을 다운로드한 분들이 이용한 다른 논문입니다.

      페이지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