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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산이씨 溫寧君派의 영남 入鄕과 松月齋 李時善의 교유 관계
Wansan Lee clan's Onryeong-gun family who settled down in Yeongnam and the academic relationship of Lee Si-Sun
완산이씨 온녕군파의 영남 입향과 송월재 이시선의 교유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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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전북사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전북사학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70호 (2024.03)바로가기
  • 페이지
    pp.59-82
  • 저자
    이선아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445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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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Wansan Lee Clan of Bonghwa is a descendant of Onnyeong-gun, the seventh son of King Taejong. It is estimated that the descendants of Onnyeong-gun maintained a close relationship with Prince Suyang and did not oppose the rebellion of 1453. However, Lee Chong, the grandson of Onryeong-gun, was involved in the literati purge of 1498(Muosahwa), and all of his brothers were killed. They were called‘the seven great men(七公子)’. They were all promoted to the Jungjong Pavilion of 1506. After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Lee Young-ki, a descendant of Usan-gun, married Andong Kwon Clan and entered Andong. Lee Young-ki's son, Lee Si-sun, grew up in a relatively stable environment and focused on studying, and after quitting the high-ranking management appointment test, interest in studying diversified. He wrote the scriptures himself, left notes on the Six Confucian Classics(六經), and compiled his writings to compile the scriptures, Summer Lotus Compilation(夏華編). The most representative of Lee Si-sun's writings was The collection of facts selected from historical books(歷代史選). The writings were excerpts from Chinese history. He became so interested in history because he was living in a time when the international order collapsed due to the Manchu Invasion. At that time, Joseon's intellectuals considered reforms to reorganize the collapsed social order, especially Namin, who expanded his academic field to scriptures such as the Six Confucian Classics, pointing out questions about Zhu Xi's interpretation of Confucian scriptures. Heo Mok was a representative Namin scholar who showed such an academic trend. This interest in Heo Mok's the Six Confucian Classics influenced the formation of the academic trend of the Namin. Heo Mok interacted directly or indirectly with Lee Hyun-il, Lee Yoo-jang, and Jeong Si-han, who were active in politics as Yeongnam Namin. By interacting with Namin in Yeongnam, Lee Si-sun laid the foundation for the Wansan Lee Clan in Bonghwa to grow into a representative royal family in Yeongnam.
한국어
경상도 봉화의 完山李氏는 태종의 7남 溫寧君의 후손이다. 온녕군의 후손들은 수양대군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며 계유정변을 부정하지 않았고 종친으로서 위세를 유지하였다. 그러다가 온녕군의 손자 李摠이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그의 형제들이 모두 사사되는 정치적 불운을 겪었다. 이들을 세칭 ‘七公子’라고 불렀다. 이들은 중종반정으로 모두 복권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온녕군의 후손 李英基는 안동에 피난하였다가 안동권씨와 혼인하여 안동에 거주하게 되었다. 이영기의 아들 이시선은 비교적 안정된 여건에서 학문에 전념하였다. 그는 경전을 직접 필사하였으며 六經에 대한 讀書記를 지었다. 그리고 자신의 글을 정리하여 夏華編을 편찬하였다. 이시선이 이렇게 학문에 전념하게 된 것은 胡亂으로 천하의 질서가 顚覆되는 시대를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은 무너진 사회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개혁에 대해서 고민하였다. 남인은 주자의 경전 해석에 대한 의문점을 지적하면서 육경으로 학문적 반경을 확대하였다. 許穆은 그러한 학문적 경향을 보인 대표적인 남인 학자이었다. 허목의 六經에 대한 관심은 남인의 학풍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허목은 영남 남인으로 출사한 李玄逸, 李惟樟, 丁時翰 등과 직간접적으로 교유하였고, 이시선은 이들 영남 남인과 교유하였다. 피란객으로 영남에 우거하게 된 완산이씨는 이시선에 이르러 이들 영남 남인 학자와의 교유를 통해 남인 사족으로 성장할 수 기반을 닦았다. 비록 종친이라는 법적 지위는 사라졌지만 태종의 아들 온녕군의 후손이라는 자의식을 지니고 영남의 종친가문으로 그 명맥을 이어 갔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온녕군파의 연원과 영남 입향
Ⅲ. 이시선의 학문 경향과 영남 남인과의 교유
Ⅳ. 맺음말
<국문초록>

<참고문헌>

키워드

完山李氏 溫寧君 茂豐正 李摠 奉化 李時善 南人 許穆 李玄逸 Wansan Lee Clan Onnyeong-gun Lee Chong Bonghwa Lee Si-sun Namin Heo Mok Lee Hyun-il 完山李氏 溫寧君 茂豐正 李摠 奉化 李時善 南人 許穆 李玄逸

저자

  • 이선아 [ Lee, Sun-Ah | 전북대학교 이재연구소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전북사학회 [The Jeonbuk Historical Society]
  • 설립연도
    1977
  • 분야
    인문학>역사학
  • 소개
    본 학회는 "역사학의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이바지한다"는 목표하에 도내의 역사학자들을 주축으로 1976년에 창립된 이래 30년 이상의 연륜을 이어온 정통 역사학회이다. 수차례의 학술대회를 개최하였을 뿐 아니라, 학술지 '전북사학'을 30호까지 발간하면서 지역 사학 발전의 토대를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 학회는 현재 약 240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으며, 격월로 임원회의와 월례발표회를 개최하고 있다. 매 발표회에 실제로 참여하는 인원이 항상 30명이 넘는다. 대부분의 역사관련 학회가 주로 대학교수나 강사들로 구성되어 있는 데 비해 전북사학회는 대학교수, 강사는 물론 학예사, 연구원, 중등학교 역사담당교사 등 역사와 관련된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대학에서 연구한 역사학에 관한 이론을 중등학교 교육 현장에 올바로 적용하여 이론과 실제를 하나로 만들려는 것이 향후 전북사학회의 지향점이다.

간행물

  • 간행물명
    전북사학 [JEONBUK SAHAK ; The Jeonbuk Historical Journal]
  • 간기
    연3회
  • pISSN
    1229-2001
  • 수록기간
    1977~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911 DDC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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