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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익군(翼軍)의 설치와 운영
Establishment and operation of Ikgun in the late Goryeo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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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전북사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전북사학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70호 (2024.03)바로가기
  • 페이지
    pp.35-58
  • 저자
    오대영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445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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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This study attempted to determine the founding period of the Ikgun, which was established at the end of the Goryeo Dynasty, reveal its purpose, analyze its structure and operation method, and identify its characteristics. The Ikgun was used not only in the Yuan Dynasty but also in the Goryeo period during the Yuan intervention period as a temporary unit to assist the Chinese army. However, the Ikgun, established at the end of Goryeo, can trace its origins from Kublai Khan's garrison army, and its characteristics are similar in that it serves the purpose of defending regional strategic points as a standing army. However, King Gongmin managed the Ikgun in the form of unity between the military and the people in accordance with the circumstances of Goryeo. Ik-gun was operated under a total mobilization system of military and civilian unity in which all rank below Bongikdaebu, the second rank of servant, and farmers, hwacheok, common people, slaves, privateers, and local villagers were mobilized. Due to the nature of the area called Seobuk-myeon, military service was exempted, so Goryeo did not have any major problems. Uwang's nationwide expansion, which was operated until it failed, but was implemented without proper consideration, resulted in failure, giving rise to several backlashes.
한국어
본 연구는 고려 말에 설치된 익군의 설립 시기를 비정하여 설립 목적에 대해 밝히고, 익군의 구조 및 운영 방식을 분석하여 그 특징을 규명하고자 했다. 익군은 원뿐만 아니라 원 간섭기 고려에서도 중군을 보조하는 임시부대의 의미로 활용되었다. 고려 말에 설치된 익군은 쿠빌라이 칸의 주둔군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으며, 상비군으로서 지방의 요충지를 방어한다는 목적에서 그 성격이 비슷하다. 하지만 공민왕은 고려의 실정에 맞추어 익군을 군민일치 형태로 운영하였다. 익군의 설치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본 연구에서는 공민왕 12년 덕흥군의 난 때 서북면의 각 지역에 병력을 조직하였을 때부터 익군이 설치되었다고 본다. 공민왕 11년 군민만호부가 붕괴되고 홍건적의 3차 침입이 예고되었을 때부터 서북면 군사체제의 정비는 필수불가결했고 덕흥군의 반란은 군사를 동원하고 체제를 조직하기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익군은 이 시기부터 서경·안주·의주·이성·강계 다섯 지역에 배치되었고 우왕 3년에 32개 부대가 확정되었다. 익군은 종 2품인 봉익대부 이하의 품계 및 농민·화척·재인·노예·사인·향리가 모두 동원된 군민일치의 총 동원 체제로 운영되었으며 서북면이라는 지역의 특성상 부역이 면제되었기 때문에 큰 문제 없이 고려가 망할 때까지 운영되었으나 이를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채 실시되었던 우왕의 전국적 확대는 여러 반발을 낳은 채 실패로 돌아갔다.

목차

Ⅰ. 머리말
Ⅱ. 공민왕 이전의 익군
III. 공민왕 대 익군의 설치
IV. 익군의 설치 지역 및 운영
V. 우왕 이후 익군의 전국적 확대와 폐지
VI. 맺음말
<국문초록>

<참고문헌>

키워드

고려 군사제도 만호 익군 공민왕 Ikgun Goryeo Manho King Gongmin Military System

저자

  • 오대영 [ Oh, Dae-Yeong | 전북대학교 사학과 박사과정 수료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전북사학회 [The Jeonbuk Historical Society]
  • 설립연도
    1977
  • 분야
    인문학>역사학
  • 소개
    본 학회는 "역사학의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이바지한다"는 목표하에 도내의 역사학자들을 주축으로 1976년에 창립된 이래 30년 이상의 연륜을 이어온 정통 역사학회이다. 수차례의 학술대회를 개최하였을 뿐 아니라, 학술지 '전북사학'을 30호까지 발간하면서 지역 사학 발전의 토대를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 학회는 현재 약 240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으며, 격월로 임원회의와 월례발표회를 개최하고 있다. 매 발표회에 실제로 참여하는 인원이 항상 30명이 넘는다. 대부분의 역사관련 학회가 주로 대학교수나 강사들로 구성되어 있는 데 비해 전북사학회는 대학교수, 강사는 물론 학예사, 연구원, 중등학교 역사담당교사 등 역사와 관련된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대학에서 연구한 역사학에 관한 이론을 중등학교 교육 현장에 올바로 적용하여 이론과 실제를 하나로 만들려는 것이 향후 전북사학회의 지향점이다.

간행물

  • 간행물명
    전북사학 [JEONBUK SAHAK ; The Jeonbuk Historical Journal]
  • 간기
    연3회
  • pISSN
    1229-2001
  • 수록기간
    1977~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911 DDC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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