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西浦漫筆』 上5를 통해서 본 金萬重의 范增論 고찰 -蘇軾 <范增論>에 대한 반론 시각을 중심으로-
A Study on the ‘Fan Zeng Theory(范增論)’ of Kim Man-joong through the Subsection 5. to Volume 1. of 『Seopomanpil(西浦漫筆)』 -Focusing on the Critical View of SuShi(蘇軾)'s <FanZengLun(范增論)>- 『서포만필』 上5를 통해서 본 김만중의 범증론 고찰 -소식 <범증론>에 대한 반론 시각을 중심으로-
In examining Kim Man-joong's interpretation of FanZeng in the Subsection 5. to Volume 1. of 『Seopomanpil(西浦漫筆)』, this paper noted that the theory of ‘Fan Zeng Theory(范增論)’ was a major topic of historical essays in the late Joseon Dynasty. Therefore, we compared the perspectives of SimaQian and SuShi to examine where Kim Man-joong's fundamental interpretation was. I confirmed that Kim Man-joong accepted SimaQian's narrative perspective centered on FanZeng's ‘haoqiji好奇計’ in ‘XiangYubenji(項羽本紀)’ and conducted a ‘Fan Zeng Theory(范增論)’ with his own perspective on the perception of the history of the a period of contention for supremacy in the Subsection 5. to Volume 1. of 『Seopomanpil(西浦漫筆)』. When it comes to the fact that FanZeng is in an important position of Mohsin, which is directly connected to the rise and fall of XiangYu, SimaQian, SuShi, and Kim Man-joong identified the distinction between them, and it was discovered that there was a subtle difference between them as to whether FanZeng should have left XiangYu or should not have left and stood by XiangYu to prevent the collapse of the Cho Dynasty. Considering the four ‘qiji奇計’ in ‘XiangYubenji(項羽本紀)’ that can grasp FanZeng's ‘haoqiji好奇計’ aspect, Kim Man-joong can confirm the developing aspect through the trend of historical events, and extracted SimaQian's narrative perspective according to the circumstantial perspective and used it to accept and transform SuShi's . Kim Man-joong revealed that FanZeng was the god of Xiang(項), not Yu(芋), from the beginning, and used the opinion of the news, but proved it through the record of ‘XiangYubenji(項羽本紀)’ as FanZeng campaigned for Xiangliang. In addition, he addressed the issue of military relations between FanZeng and Xiangliang, Xiang Yu, and Yidi from various angles, maintaining a critical view and skepticism over Yidi's evaluation of ‘tianxiazhixianzhu天下之賢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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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西浦漫筆』上5에서 金萬重의 ‘范增’에 대한 해석을 검토함에 있어 蘇軾의 <范增論>에 대한 반론 시각을 고찰하는 데 목적을 둔다. 필자는 김만중이 소식의 <범증론>을 논박 함에 있어 『史記』<項羽本紀>에서 범증의 ‘好奇計’ 기사를 논거로 제시하며 楚漢爭霸期 역사 를 형세적 관점에서 추론한 점을 확인했다. 기본적으로 범증이 초나라 項羽의 흥망과 직결된 중요한 謀臣의 위치에 있다는 점에 있어서 소식과 김만중 사이에는 미묘한 시각차가 존재한 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김만중은 범증이 항량에게 유세한 까닭에 대해 범증이 당초부터 芋氏가 아닌 項氏의 모신 이었다는 점을 거론하여 <항우본기>의 기록을 통해 입증했다. 또한, 범증의 ‘떠남[去]’ 문제 대한 소식 견해의 문제를 제기하고, 항우가 宋義를 죽이고 義帝를 시해한 일에는 범증이 모 의의 주동자로서 가담했을 가능성이 농후함을 추단했다. 따라서 범증을 항우의 ‘謀首’로 단언 하고, 당시 범증이 떠나야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이로써 김만중은 ‘天下之賢主’라는 의제의 평가 문제를 두고 비판적인 시각과 회의적 입장 을 견지하여 논지를 피력하였는데, 이는 의제가 군주로서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시각이었고, 이에 따른 함의는 형세가 항우에게 기울었다는 시각에 기인한 것이다. 요컨대, 김만중은 역사 해석에 있어 기존의 명분론에 매몰되지 않고 고증을 바탕으로 한 형세적 관점을 취하고 있음을 본고를 통해 필자는 확인하였다.
목차
국문요약 1. 서론 2. 김만중의 범증론 인식에 대한 예비적 고찰 1) 조선 후기 蘇軾 <范增論>의 비평 양상 2) 蘇軾 <范增論> 반론으로서의 『史記』<項羽本紀>의 ‘好奇計’ 논거 제시 3. 蘇軾 <范增論> 반론으로서의 형세론적 관점 분석 1) ‘項氏謀臣’으로서의 范增 ‘유세[說]’ 서술 시각 2) 范增의 ‘떠남[去]’에 대한 김만중과 蘇軾의 관점 비교 3) 蘇軾의 “天下之賢主”句에 대한 김만중의 비판 시각 4.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西浦漫筆』上5金萬重范增蘇軾 <范增論>‘떠남[去]’司馬遷<項羽本紀>‘好奇計’形勢朝鮮 後期『Seopomanpil(西浦漫筆)』Kim Man-joong(金萬重)FanZeng(范增)SuShi (蘇軾)FanZengLun(范增論)‘leave(去)’SimaQian(司馬遷)XiangYubenji(項羽 本紀)‘haoqiji(好奇計)’CircumstanceThe Late Joseon Period
한중인문학회 [The Society of Korean & Chinese Humanities]
설립연도
1996
분야
인문학>중국어와문학
소개
한중인문학회는 대우재단과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지원으로 중국 대학의 한국연구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학 연구를 활성화시킬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한국에서는 서울대, 고려대, 아주대, 성균관대, 동국대, 연세대, 방송대, 과기대, 정문연, 순천향대, 남서울대, 울산대, 전남대, 충남대, 숭실대, 한남대, 경북대, 부산대, 영남대 등을 중심으로 전국의 각 대학의 인문학 전공 교수들이, 중국에서는 북경대, 남경대, 복단대, 절강대, 산동대, 요녕대, 화동사대, 중앙민족대, 북경어언문화대, 중국사회과학원, 남개대, 중앙민족대, 낙양외국어대, 서북대 등을 중심으로 중국의 각 대학의 인문학 전공 교수들이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여기에 중국과 한국의 언어문화 및 관계사에 관심이 많은 일본, 대만, 미국, 러시아의 학자들이 참여하여 동아시아의 정체성을 밝히는 작업에도 전념하고 있다.
1) 한국, 중국에서 매년 한 차례씩 한국, 중국, 대만, 일본, 미국, 러시아의 학자들이 학술 세미나를 열어서 양국의 인문과학에 편재되어 있는 보편성을 탐색한다.
2) 학술 세미나에서 논의된 내용을 중심으로 논문집을 발간하여 양국 학자들의 관심 사항을 널리 알리고, 그러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협조한다.
3) 양국의 문화 유산을 답사하는 작업이다. 중국의 항주 일대와 고려 시대의 유적과 유물, 중국의 동북 지방과 고구려의 유적과 유물, 상해와 독립 운동 등에 대한 답사를 통하여 중국과 한국의 문화의 뿌리를 직접 확인한다.
4) 양국 문화에 뿌리 내리고 있는 보편성을 추출하여 세계 문화의 한 축인 동아시아 문화의 정체성을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