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am Jongheon (曼庵宗憲, 1876-1957) is a high priest who holds a very important position in the history of Buddhism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and the history of the purification movement of Korean Buddhism. He greatly rebuilt Baekyangsa Temple, which was in a devastated state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and made a significant contribution to the development of Baekyangsa Temple and Buddhism in Honam. During this period, he was also active in the central Buddhist Sangh. However, compared to the achievements and historical status he left behind, research related to Manam is extremely rare. I have already published a paper on Manam's life until 1927, and this paper was written with the purpose of examining Manam's life after 1928. For this purpose, the text attempted to detail the contents related to the reconstruction of Baekyangsa Temple, the formation of the Gobul Monastic Complex (古佛叢林), his activities as the Gyojeong (敎正) and the Jongjeong (宗正). The conclusion of this paper is to present Manam’s image of Sramana (Buddhist monk), divided into five major categories. First, Manam was a Sramana with a clear awareness of the order’s history. Second, Manam was a Sramana who left a distinct mark in the field of education. Third, Manam was a Sramana, who was like an incarnation as a guardian of Baekyangsa Temple. Fourth, Manam was a Sramana, who practiced production Buddhism, semi-farmer and semi-Zen Buddhism. Fifth, Manam was a Sramana, who personally practiced the teachings of equality and harm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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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 불교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만암 종헌(曼庵 宗憲, 1876-1957) 의 위상은 너무도 뚜렷하다. 그는 백양사 중창과 호남불교 발전에 큰 공을 세웠으며, 이 시기 불교교육 분야와 중앙 교단에서도 많은 활동을 하였다. 하지만 그가 남긴 업적과 역사적 위상에 비해 만암 관련 연구는 지극히 부진한 상태다. 필자는 이미 1927년까지의 만암 생애와 관련한 논문을 발표한 바 있으 며, 이 논문은 1928년 이후의 만암 생애를 살펴보고자 하는 목적을 지니 고 작성되었다. 이를 위해 본문에서는 백양사 중창, 고불총림(古佛叢林) 결 성, 교정(敎正) 및 종정(宗正)으로서의 활동 등에 관계된 내용을 상술하고 자 하였다. 이 논문의 결론은 만암의 사문상(沙門像)을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누어 제시하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첫째, 만암은 종사(宗史) 인식이 뚜렷한 사문 이었다. 둘째, 만암은 교육분야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사문이었다. 셋째, 만암은 가람수호의 화신과도 같은 사문이었다. 넷째, 만암은 생산불교, 반 농반선(半農半禪) 불교를 실천한 사문이었다. 다섯째, 만암은 평등과 화합 원융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한 사문이었다.
고타마 싯다르타가 해결하고자 노력하였던 것은 현세에 살아가는 인간의 고뇌와 고통이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의 인식이 그의 깨달음이었으며, 그 깨달음을 사회화하려는 노력이 그의 가르침이요 실천행이었다고 우리는 믿는다.
따라서 불교인에게 있어서의 궁극 목표인 열반은 탈(脫)사회의 경지가 아니며, 자주(自主), 자율(自律), 자유(自由)의 인격을 사회 속에서 실현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아울러 개인적 완성인 열반을 사회화하려는 노력이 부처님의 실천행이었고, 그 결실이 승가 사회였다.
이러한 우리의 인식은 이미 역사상 정토(淨土)사상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이는 그 행태에 있어서 기복적 신앙으로 치우침으로써 그 본의가 침체된 면이 없지 않다. 이에 우리는 자주, 자율, 자유라는 인류의 이상적 인격을 완성해 가듯이 자유, 평등의 사회를 구현해 가는 것이 정토를 이루는 길임을 재인식하고,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 연구와 능동적 실천을 위해 "한국정토학회"를 결성하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 개개인의 불교적 인격완성이 저절로 정토를 이루게 할 것이라는 안이함을 경계하며, 부처님의 이타적 노력을 교훈 삼아, 사회의 제반 문제를 불교적 입지에서 해결하는데 일익을 도모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따라서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윤리, 예술, 사회 등의 제반 분야도 당연히 우리의 관심 영역이 된다.
결국 우리의 취지는 불교 교학의 이론적 토대 위에서 정토 실현의 현실적 실천방도를 모색하자는 것이며, 당시대에 요구되는 불교의 실천성을 회복함으로써 불교가 정신적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할 대안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즉 우리는 모든 학문의 활동을 정토에로 승화시켜서 인류 이상(理想)의 구현에 이바지 하고자 함이니, 이것이 우리의 염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