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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기 강증산(姜甑山)전승에 나타난 예(禮)문화의 변혁과 그 실천 양상 - 조선말기 사회개혁의 한 방법론과 관련하여 -
The recognition of courtesy culture and aspects of its practice in the Kang Jeung-san story during the enlightenment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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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동아시아고대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동아시아고대학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72집 (2023.12)바로가기
  • 페이지
    pp.443-473
  • 저자
    고남식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439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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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In 1901, Kang Jeung-san, aged 31 years at the end of the Joseon dynasty, performed a 9-year ritual (1901–1909) to save the world due to a series of reasons and circumstances related to the three systems of heaven and Earth. Specifically, the ritual was a formality arising from the foundation stone and the basis of the Ritual Law, which Kang Jeung-san newly established in 1900, following an order from JinByubJu(眞法呪). Kang Jeung-san created a ceremonial framework derived from the newly opened Cheonji-dae-doh, and it has become an order governing human affairs, per the ritual(禮) performed under the law. This paper discusses examples and identifies two aspects. First, Kang Jeung-san differed from Mencius‘ “Mind of Sayang(辭 讓)” regarding the definition of ritual(禮). It is thousands of years old and has a moderate meaning rather than a coercive one that would control individuals and society or yield a framework for convenience alone. Second, he insisted on the importance of courtesy, clearly indicating the need for social reform. Joseon society emphasized the new order of gender equality based on the Haewon ideology as a solution to the accumulation of resentment among members due to 500 years of Confucian examples. For instance, in funeral rites(喪禮) for completeness, consider indicating where the dead are being sent, e.g., the afterlife, he emphasized the nature of death along with mourners’ sadness before the formality, in keeping with the example, and showed that the dead should be prepared accordingly. Additionally, he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the mental attitude of and essential preparations performed by the person preparing the ritual.
한국어
강증산의 천지공사는 강증산이 직접 진법주(眞法呪)를 통해 정립한 신도(神道) 라는 질서 하에 이루어지며 이는 철저히 예(禮)에 따라 격식을 갖춰 이루어진 의식 (儀式)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이는 우주적 질서를 선천(先天)이라는 세계를 벗어 나 후천(後天)이라는 신(新)구조체계로 바꾸는 공동체적 예(禮)문화의 변환이며 일련의 의례와 의식을 통해 진행되고 확정된 것이다. 한 사례로 17세기 중엽에 예송 (禮訟)논쟁을 일으키기도 하며 조선 사회 오백년을 이끌어 온 하나의 지표인 예도 서구문화의 유입과 개화의 물결을 타고 조선말기 사회에 와서 새로운 양상으로 변 화하게 되었다. 개화기인 20세기 초 강증산 사상에서 예에 대한 정의는 수천 년간 지속되어온 맹자의 ‘사양지심(辭讓之心)’과는 다르게 ‘불수전강전편왈예(不受專强 專便曰禮)’라고 정의하였는데 이는 개인과 사회를 통제하는 강압적 의미이거나 편리함만을 위한 틀이 아닌 중용적 의미를 갖는 인간의 안심(安心)․안신(安身)적 행 동양식이다. 조선사회는 국가적으로나 사회생활의 측면상 여러 가지 체제에서 오백년 간의 유교적 예로 인해 구성원간의 원한의 문제가 축적되었고 이에 대한 해 결책으로 해원사상에 입각한 남녀평등의 신질서를 강증산은 강조하였다. 한 예로 망자(亡者)를 보내는 상례(喪禮)에 있어서 예에 따른 의식(儀式) 이전의 면으로 애 도하는 이의 슬픔과 함께 사자(死者)의 죽음의 본질을 말하였으며 이에 따라 예를 갖춰야함을 보였다. 특히 천지공사를 처결하며 강증산은 신명에 대한 예법을 토대 로 각종의 개혁을 예에 기반한 의식을 통해 수행하였으며, 모든 규범과 질서를 예 법을 토대로 하는 새로운 후천(後天)의 예문화를 구축해나갔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강증산의 예(禮)에 대한 인식
Ⅲ. 개화기 강증산의 예(禮)문화의 변혁(變革)과천지공사에서의 예(禮)ㆍ악(樂)문화
Ⅳ. 맺음말
【참고문헌】

저자

  • 고남식 [ Ko, Namsik | 대진대학교 대순종학과 교수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동아시아고대학회 [The Association Of East Asian Ancient Studies]
  • 설립연도
    1999
  • 분야
    인문학>기타인문학
  • 소개
    본 학회는 동아시아권역의 고대의 역사와 문화, 언어와 문학, 종교와 철학, 민속과 사회, 고고학 등에 관한 고대학 관련분야의 학문을 학제적 국제적인 협력과 유대를 통해 연구의 가능성을 확대하고, 연구의 질을 향상시키며, 동아시아에 있어서의 학문발전과 문화교류 및 학자, 연구자, 회원 상호간의 유대와 국제적 친선을 도모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이를 위하여 본 학회는 동아시아고대학에 관한 연구발표회, 학술강연회, 강독회, 학술답사, 도서출판, 학회지 발행 등의 사업을 기획하여 집행한다.

간행물

  • 간행물명
    동아시아고대학 [DONG ASIA KODAEHAK ; The East Asian Ancient Studies]
  • 간기
    계간
  • pISSN
    1229-8298
  • 수록기간
    2000~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910 DDC 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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