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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노 세이고(中野正剛)의 조선 통치관과 제국의회 활동 -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기 ‘아시아주의’의 일면 -
Nakano Seigo and Taishō Democracy Era : A Japanese Intellectual’s Criticism Regading Colonial Policies and his Pan–asi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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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바로가기
  • 간행물
    일본학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61집 (2023.12)바로가기
  • 페이지
    pp.179-206
  • 저자
    이동훈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439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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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Nakano Seigo was born in Fukuoka prefecture and studied at Waseda University. He gained his reputation as a journalist in 1910’s and transformed to a member of the imperial diet in 1920. His views of international politics was built through the Xinhai revolution experience and the Paris Peace Conference coverage. In the early 1910s, Nakano was sent to colonial Korea as a correspondent of Tokyo Asahi Newspaper. After figuring out the colonial situation, he strongly criticized the military government of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After coming back from the Paris Peace Conference, he strongly condemned the Japanese delegation for their incompetence. His book about the Paris Peace Conference became a bestseller and he gained reputation nationwide. Nakano’s activities can be comprehended through so called ‘Taishō democracy’ trend. He has strong belief for democracy and constitutional government, but his political stance has limitations according colony Korea. Nakano’s Pan–Asianism does not include Korean peninsula and colonial Chosen was just a subject to assimilation. Nakano’s democracy concept was ambivalent and worked contradictorily.
한국어
나카노 세이고(中野正剛)는 일본 정치사에서 뛰어난 웅변가이자, 아시아·태평양 전쟁 시기 도조 히데키 수상과의 불화와 할복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잘 알려 진 인물이다. 이 글에서는 조선 특파원 파견과 제국의회 활동을 중심으로 그가 식 민지 조선 통치에 대해 인식과 제국의회에서의 활동을 살펴보았다. 나카노는 ‘다 이쇼 데모크라시’ 시기 정치부 기자에서 제국의회 의원으로 성장한 인물이었다. 그의 식민지 통치관과 국제정세 인식은 신해혁명 현지 취재와 조선 특파원 파견, 영국 유학과 파리강화회의 파견을 통해 형성되었다. 중의원 당선 후 나카노는 식 민지 문제에 관심을 지니고 활동했으며 제국의회 연설에서 조선인에게 참정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이 주장의 배경에는 특파원 시기 ‘무단통 치’ 하의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접한 경험과 영국 유학길에서 접한 아시아 지역의 식민지적 상황이 영향을 미쳤다. 서구열강의 (반)식민지가 된 아시아의 상황과 이 집트 청년의 독립운동을 접한 경험은 식민지 조선에 대한 나카노의 인식에 잔영을 남겼던 것이다. 나카노는 조선에서 차별을 철폐하고 ‘일시동인’과 동화정책을 철저히 해야 할 것을 주장했으며 이는 대일본제국헌법의 식민지 적용과 자치권 부여 주장으로 이 어졌다. 이렇듯 급진적인 주장을 서슴지 않았던 나카노였지만 ‘밖으로는 제국주의, 안으로는 입헌주의’라는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한 지식인이 었다. 나카노 역시 일본제국의 대륙 ‘진출’을 긍정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았으며 식 민지 조선에 대해서는 일본제국의 판도 내에서 동화되어야 할 존재로 보았다. 신 해혁명 취재, 영국 유학 그리고 파리강화회의 파견을 통해 나카노의 국제정세 인식은 확장되었지만 그의 ‘아시아주의’는 ‘다이쇼 데모크라시’와 마찬가지로 양면 적이고 모순적으로 작동했던 것이다.

목차

1. 머리말
2. 언론인 나카노의 성장
3. 조선특파원 시기와 ‘무단통치’ 비판
4. 파리강화회의 파견과 제국의회 활동
5. 맺음말
참고문헌
要旨
ABSTRACT

키워드

나카노 세이고 중의원 다이쇼 데모크라시 제국의회 아시아주의 Nakano Seigo Imperial Diet Taishō democracy Pan–Asianism colonial Korea

저자

  • 이동훈 [ Yee, Dong–hoon | 계명대 강사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동국대학교 일본학연구소 [The Institute for Japanese Studies Dongguk University]
  • 설립연도
    1979
  • 분야
    인문학>일본어와문학
  • 소개
    동국대학교 부설 일본학연구소는 일본의 역사, 문화, 사회를 연구하여 한일간의 상호이해증진과 문화교류에 이바지하고자 다음과 같은 사업을 실시한다. 첫째, 한일관계의 연구발표 및 강연회를 개최한다. 둘째, 정기 간행물과 연구도서 발간 및 자료를 수집한다. 셋째, 한일관련 연구비를 보조한다. 넷째, 내외 저명인사의 초빙과 임직원의 해외파견을 실시한다. 다섯째, 부속도서실을 운영한다. 여섯째, 기타 목적달성에 필요한 사업을 실시한다. 이상과 같은 사업을 통하여 한일관계의 이해의 폭을 넓힘으로써 지금까지 가깝고도 먼 양국관계에서 가까운 양국관계를 구축해 가는데 일조하고자 한다.

간행물

  • 간행물명
    일본학 [The Ilbon-Hak(Journal of Japanology)]
  • 간기
    연3회
  • pISSN
    1598-1134
  • eISSN
    2713-7309
  • 수록기간
    1981~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913 DDC 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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