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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도 蝟島鎭·格浦鎭 설치와 관방체제 변화
A Study on the Transformation of the Defense System through the Establishment of Widojin and Gyeokpojin in the Late Joseon Dynasty
조선 후기 전라도 위도진·격포진 설치와 관방체제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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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전북사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전북사학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69호 (2023.11)바로가기
  • 페이지
    pp.125-150
  • 저자
    김철배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438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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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During King Sukjong's reign, there were many changes in the surveillance system, including the defense of the north, Chungcheong, Gyeongsang and Jeolla provinces, especially the defense measures for the west coast, after the Imjin War and the Byeongja War. During the same period, Wibongsanseong Fortress was contracted in Jeollabuk-do from 1675 to 1681. And in 1682, Widojingwan(蝟島鎭管) was installed in the coastal area of Buan, and a third official, Cheomsa, was dispatched. And in 1692, Gyeokpojin(格浦鎭), which had the GyeokpoHaenggung(格浦行宮), was promoted to the camp where Cheomsa was dispatched and placed under the jurisdiction of Geomyeong(檢營), changing the defense system of inland and coastal areas. In this paper, as a defense policy in Jeolla-do during the Joseon Dynasty, I tried to examine the causes of the installation of Jin in which Chomsa(僉使) is dispatched to the coastal area and how the changes appear. With the establishment of Widojingwan and Geomyeong Gyeokpojin on the west coast of Jeolla-do, Buanjingwan under the Jingwan system in the 3rd year of King Sejo's reign was abolished, and various regions under Buanjingwan's jurisdiction were transferred to Jeonjujingwan. In addition, in the early Joseon Dynasty, eupseong was built to defend enemies appearing in the coastal area of the West Sea. However, on the contrary, after installing Widodojin and Gyeokpojin, where Cheomsa was appointed, the eupseong was not expanded, but rather tended to be reduced.
한국어
조선 후기 숙종 대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북방 방어 및 하삼도 지역 방어, 서해연해 방어책 등 관방체제에 많은 변화가 있었던 시기이다. 같은 시기 전라북도 지역에는 1675년(숙종 2)~1681년까지 위봉산성이 수축되었고, 1682년에는 부안 연해에 위도진관(蝟島鎭管)을 설치하고 종3품의 무관 첨사(僉事)를 파견하였으며, 1692년에는 격포행궁(格浦行宮)이 있었던 격포진(格浦鎭)을 첨사진으로 승격하여 검영(檢營) 관할에 두는 등 내륙과 연해의 방어체계에 변화가 있었던 시기이다. 이런 점에서 조선시대 전라도 관방정책으로서 연해에 첨사진(僉使鎭)의 설치에 따른 원인과 그 변화의 양상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보고자 하였다. 전라도 서해연안에 위도진관과 검영 격포진의 설치는 세조 3년 진관체제에 의해서 부안진관에 소속되었던 여러 군현은 대부분 전주진관에 이속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한 조선 전기 연해읍에 출몰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 축성하였던 읍성은 조선 전기 지속적으로 증축되거나 개축되었던 것과 달리 이 시기를 기점으로 현상 유지를 하거나 계속해서 노후화됨에 따라 규모가 축소되는 경향을 살필 수 있다.

목차

1. 머리말
2. 위도진관(蝟島鎭管) 설치와 서해 방어체제 구축
3. 검영(檢營) 격포진(格浦津)과 격포행궁(格浦行宮) 수호
4. 부안진관 혁파와 서해 연안 읍성의 변화
5. 맺음말
<국문초록>

<참고문헌>

키워드

위도진 위도진관 격포진 격포행궁 부안진관 격포진관 Widojin Widojingwan Gyeokpojin GyeokpoHengGung BuanJingwan Jeonjujingwa

저자

  • 김철배 [ Kim, Chul-Bae | 문학박사, 임실군청 학예사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전북사학회 [The Jeonbuk Historical Society]
  • 설립연도
    1977
  • 분야
    인문학>역사학
  • 소개
    본 학회는 "역사학의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이바지한다"는 목표하에 도내의 역사학자들을 주축으로 1976년에 창립된 이래 30년 이상의 연륜을 이어온 정통 역사학회이다. 수차례의 학술대회를 개최하였을 뿐 아니라, 학술지 '전북사학'을 30호까지 발간하면서 지역 사학 발전의 토대를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 학회는 현재 약 240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으며, 격월로 임원회의와 월례발표회를 개최하고 있다. 매 발표회에 실제로 참여하는 인원이 항상 30명이 넘는다. 대부분의 역사관련 학회가 주로 대학교수나 강사들로 구성되어 있는 데 비해 전북사학회는 대학교수, 강사는 물론 학예사, 연구원, 중등학교 역사담당교사 등 역사와 관련된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대학에서 연구한 역사학에 관한 이론을 중등학교 교육 현장에 올바로 적용하여 이론과 실제를 하나로 만들려는 것이 향후 전북사학회의 지향점이다.

간행물

  • 간행물명
    전북사학 [JEONBUK SAHAK ; The Jeonbuk Historical Journal]
  • 간기
    연3회
  • pISSN
    1229-2001
  • 수록기간
    1977~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911 DDC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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