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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암 이계맹의 정체성 형성 과정에서 본 사림과의 관계
Relationship with Sarim as seen in the process of forming the identity of Mukam Lee Gye-ma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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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전북사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전북사학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69호 (2023.11)바로가기
  • 페이지
    pp.95-123
  • 저자
    김선희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438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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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Lee Gye-maeng (1458-1523) was a Group of Kim's students and a representative person of the early Joseon Dynasty who was passed down as Kimmyo Sarim, the spiritual leader of Confucian scholars in the late Joseon Dynasty. Until now, research on Lee Kye-maeng has been insufficient, but there has been a difference of opinion on whether Lee Kye-maeng can be assumed as a Group of Kim's students or a subject of strange paintings. Nevertheless, it is judged that there is enough room for Lee Gye-maeng to be viewed as a private citizen, as he has been evaluated and recognized as "a Group of Kim's students and a member of Kimmyo Sarim." In this study, we reviewed the points of contention from a consequential standpoint on how Lee Gye-maeng forms its identity as Sarim and looked at the relationship and role with Sarim. Lee Kye-maeng constantly communicated with Kim Jong-jik and Group of Kim's students and shared political positions with them. In addition, he continued his political activities after the reign of King Jungjong with the common point of being a subject of Muo and Gapjasa paintings. Young bureaucrats who appeared in the Jungjong era, when Group of Kim's students began to disband and reorganize, gave different perceptions and evaluations of Lee Gye-maeng's political moves by period. In the early days of the reign of King Jungjong, they assumed Lee Gye-maeng as a reformist figure different from other storied bureaucrats through the media reform and will. After the death of Samgongsin, Lee Gye-maeng repeatedly confronted and conflicted with new government officials until Kimmyo-sa-hwa, but in the 12th year of King Jungjong's reign, Jonggye Byun-mura established a turning point, awakening Sarim's "loyalty" and instilling Sarim's identity. Lee Gye-maeng, who returned to politics after the strange painting, tried to prevent the expansion of the private painting, and through these efforts, Lee Sa-kyun, Seong Se-chang, and Kim Jung-guk evaluated and recognized him as private.
한국어
이계맹(李繼孟, 1458~1523)은 김종직의 문인이자 조선 후기 유학자들의 정신적 지주인 기묘사림으로 전승된 전주ㆍ김제 지역의 대표적인 조선 전기 인물이다. 지금까지 이계맹에 관한 연구는 미진한 편이기는 하나 이계맹을 김종직의 문인이나 기묘사화의 피화자로 상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견해차가 존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 후기 유학자들에게 이계맹은 ‘김종직의 문인으로 기묘사림의 일원’으로 평가되고 인식되어 온 만큼 그를 사림으로서 볼 여지는 충분하다고 판단된다. 이 연구에서는 이계맹이 어떻게 사림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지에 대해 결과론적 입장에서 논쟁점을 검토하고 사림과의 관계, 역할을 조망하였다. 이계맹은 김종직과 그 문인들과의 관계에서 꾸준히 소통하였으며 그들과 정치적 입장을 공유하였다. 또한 당대에도 무오ㆍ갑자사화의 피화자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중종반정 이후 정계 활동을 이어 갔다. 김종직 문인집단이 해체하며 재구성되기 시작한 중종 대에 등장한 젊은 관료들은 이계맹의 정치적 행보에 시기별로 다른 인식과 평가를 내렸다. 그들은 중종 대 초기에는 이계맹의 언론 개혁과 의지 등을 통해 다른 노성한 관료들과는 다른 개혁적 인물로 상정하였다. 삼공신이 죽고 난 후 기묘사화 이전까지는 이계맹이 신진관료들과 대립과 갈등을 반복하였지만 중종 12년 종계변무라는 전환점을 마련하며 사림의 ‘의리’를 각성하게 해 사림의 정체성을 심어 주는 반전에 성공한다. 기묘사화 이후 정계에 복귀한 이계맹은 사화의 확대를 저지하려고 노력했고, 이러한 노력을 통해 이사균, 성세창, 김정국 등은 그를 사림으로 평가하고 인정하였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이계맹의 인적네트워크 분석
Ⅲ. 중종 대 이계맹에 대한 젊은 관료들의 평가와 인식
Ⅳ. 맺음말
<국문초록>

<참고문헌>

키워드

이계맹 김종직 기묘사화 기묘사림 Lee Gye-maeng Kim JongJik Kimyo Sahwa GiMyoSaRim

저자

  • 김선희 [ Kim, Sun-Hee | 전북대학교 사학과 강사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전북사학회 [The Jeonbuk Historical Society]
  • 설립연도
    1977
  • 분야
    인문학>역사학
  • 소개
    본 학회는 "역사학의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이바지한다"는 목표하에 도내의 역사학자들을 주축으로 1976년에 창립된 이래 30년 이상의 연륜을 이어온 정통 역사학회이다. 수차례의 학술대회를 개최하였을 뿐 아니라, 학술지 '전북사학'을 30호까지 발간하면서 지역 사학 발전의 토대를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 학회는 현재 약 240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으며, 격월로 임원회의와 월례발표회를 개최하고 있다. 매 발표회에 실제로 참여하는 인원이 항상 30명이 넘는다. 대부분의 역사관련 학회가 주로 대학교수나 강사들로 구성되어 있는 데 비해 전북사학회는 대학교수, 강사는 물론 학예사, 연구원, 중등학교 역사담당교사 등 역사와 관련된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대학에서 연구한 역사학에 관한 이론을 중등학교 교육 현장에 올바로 적용하여 이론과 실제를 하나로 만들려는 것이 향후 전북사학회의 지향점이다.

간행물

  • 간행물명
    전북사학 [JEONBUK SAHAK ; The Jeonbuk Historical Journal]
  • 간기
    연3회
  • pISSN
    1229-2001
  • 수록기간
    1977~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911 DDC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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