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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송병선의 자정노선(自靖路線)과 무주(茂朱) 서벽정(棲碧亭) 영건(營建)
A Study on Yeonjae(淵齋) Song Byeong-seon(宋秉璿)’s Self-comfortism and Construction(營建) of Seobyeokjeong Pavilion(棲碧亭) in Mooju(茂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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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전북연구원 전북학연구센터 바로가기
  • 간행물
    전북학연구 KCI 등재후보 바로가기
  • 통권
    제9집 (2023.08)바로가기
  • 페이지
    pp.29-60
  • 저자
    김종수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434497

원문정보

초록

영어
Yeonjae Song Byeong-seon who acted in the late Joseon period was a great Confucian scholar who shared the Yeonjae school(淵齋學派) with his juniors such as Shim Seok-jae(心石齋) and Song Byeong-soon(宋秉珣). Song Byeong-seon ended his life at the age of 70 by poisoning himself resisting against Eulsa Treaty (乙巳勒約) by the Japanese Empire. As a result, researches on Song Byeong-seon are focused on his last moment, the theory of Wijung Chuksa(衛正斥邪論), and formation process the Yeonjae school. In this time’s discussion, this study attempts research with Seobyeokjeong Pavilion located in Muju(茂朱), Jeollabuk-do that represents Song Byeong-seon’s self-comfortism represented by so-called ‘Pogyeongipsan(抱經入山: Going into a mountain with scriptures to teach young students keeping traditional custom). On the other side of it, Gapsinbyeonboknyeong(甲申變服令: An executive order given in the year of Gapsin year to change national costume to western style) which was given in 1884 (at the age of 49) was a background for him to forget feelings left for the affairs of outside world and shift his ground to self-comfortism for protecting·developing ‘Confucian truth[吾道]’ through a secluded life in the mountains. Thus, Song Byeong-seon left his hometown Hoedeokhyeon(懷德縣) and moved to Wongye(遠溪), Okcheon(沃川) in 1885, and constructed Seobyeokjeong Pavilion in Muju the next year in 1886 (at 56). Although construction of Seobyeokjeong Pavilion that symbolizes deepened aspect of Song’s self-comfortism went through twists and turns such as recustruction caused by unexpected fire in 1892, self-comfortism which was a series of reading, pursuit of study·writing activities and writing a poem and playing for fun with a theme of bright moon and clear wind led to a triumphant fruition. And Song Byeong-seon also led Yeonjae School by holding spring and autumn lectures(講會) and organizing a fraternity(契) in cooperation with his younger brother Song Byeong-soon. As a result, operation of Seobyeokjeong Pavilion by Song Byeong-seon is considered that the place is a historic·cultural space that represents self-comfortism before Song performed before he devoted his life for justice and morality (殉道) in 1905 at the age of 70.
한국어
조선 최후기인 헌종·고종 연간을 활동기로 삼았던 연재 송병선은 우암 송시열의 9세손으로, 아우인 심석재 송병순과 더불어 근세 유학의 일파인 연재학파를 창시· 공유한 거유이자 애국지사다. 그런데 연재학파를 대상으로 한 연구는 주로 송병선 1인에 집중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50세 이후로 이행한 자정노선에 대해서는 미 처 연구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상태다. 이에 금번 논의에서는 이른바 ‘포경입산(抱 經入山)’으로 대변되는 송병선의 자정노선을 상징해 주는 전북 무주군에 소재한 서 벽정을 전면에 내세운 연찬을 시도하게 되었다. 만동묘 훼철령에 뒤이은 1884년에 취해진 갑신변복령은 송병선의 인생 항로에 서 중대한 사건으로 작용하게 된다. 특히 송병선의 삶에서 갑신변복령과 그에 따른 고종의 미온적인 태도란, 세상에 대한 미련을 떨치고 산속의 은둔 생활을 통해서 유학적 진리[吾道]를 위호하기 위한 자정노선으로 선회하는 결정적인 변수로 다가 섰다. 이에 송병선은 1885년에 회덕현을 떠나 옥천의 원계로 이거를 단행하였고, 이듬해인 1886년(51세)에 무주의 무이봉 아래에 강당형 건물인 서벽정을 건립하기 에 이른다. 송병선이 택한 자정노선의 심화 국면을 상징하는 서벽정 영건은 예기치 못한 화재로 인해 1892년에 중건을 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지만, 독서와 강학·저 술 활동 및 음풍영월로 점철된 자정노선은 득의한 결실로 이어지게 된다. 송병선은 서벽정에서 『근사속록』에 대한 교정 작업을 진행하였고, 주저인 『무계 만집』과 『동감강목』을 완성함과 동시에, 『무계시첩』을 남기기도 하였다. 이 같은 저술 활동에 병행하여 송병선은 아우인 송병순과 공동으로 춘추 강회를 개최하고, 계 조직을 통해서 학단을 이끌기도 하였다. 송병선이 서벽정에서 남긴 마지막 행적 은 1903년(68세)에서 『송자대전·습유』를 정서(淨書)한 기록이나, 차후 송병순 주도 하에 문인들에 의해 『연재집』의 간역(刊役)이 착수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송병선 에 의한 서벽정 경영은 70세의 나이로 1905년에 순도(殉道)를 감행하기 이전 시기 에 이행한 자정노선을 상징하는 역사적·문화적 공간임을 이해하게 된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원계(遠溪) 경영(經營)과 자정노선(自靖路線)
3. 무주(茂朱) 서벽정 영건과 노선의 심화
4. 맺음말
참고문헌

키워드

송병선 자정노선 서벽정 저술 활동 강학 활동 연재학파 Song Byeong-seon Self-comfortism Seobyeokjeong Pavilion Writing activities Educational activities The Yeonjae school

저자

  • 김종수 [ Kim Jong-su | 세명대학교 강사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전북연구원 전북학연구센터 [Jeonbuk Institute]
  • 설립연도
    2019
  • 분야
    인문학>역사학
  •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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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 간행물명
    전북학연구 [The Journal of Jeonbuk Studies]
  • 간기
    연3회
  • pISSN
    2713-5772
  • 수록기간
    2019~2025
  • 십진분류
    KDC 911 DDC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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