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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집 : 제2부 남한산성 순교사적지의 재발견

남한산성의 형장(刑場)과 천주교 신자들의 죽음
The execution ground of martyrs' in Namhansanseung walled fortress and the death of cathol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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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수원교회사연구소 바로가기
  • 간행물
    교회사학 바로가기
  • 통권
    창간호 (2004.12)바로가기
  • 페이지
    pp.273-297
  • 저자
    서종태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42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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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Of the martyrs at Namhansanseung walled fortress, Thomas Han Deog-oon(韓德運) was died a martyr by beheading(斬首刑), Augustinus Seo Tae-soon(徐泰淳) and Lee Jo-yeo(Jong-yeo, 李祖汝) by clubbing(杖殺刑), Paulus Jeong-eun(鄭溵) and Petrus Jeong(鄭) by choking with durable papers(白紙死刑). And Augustinus Kim Man-jip(金萬集) was died a martyr from disease in the prison, Andreas Oh(吳) and John Lee(李) from Namgwangri Joogsan(竹山) by hanging(絞首刑). And the other martyrs who died by unknown method are also seems to have been died for their catholic belief due to torturing, clubbing, hanging, choking with durable papers and disease from torturing. It seems that the executing ground where Thomas Han Deog-oon died by beheading was the even grass field located below the hill, beside the water mill, outer the east gate of Namhansanseung walled fortress. I think that the prison site where many catholics died martyrs was the spot where the stone mark is located within the present rotary parking, that the site where such catholics died during being tortured, clubbed, choked with papers was the site of Joonggun's(中軍) court of law and Pankwan's(判官). Until now in general, developing the martyrs' shrine has been accomplished mainly in ‘the site of beheading(斬首址)’ due to traditional thought that the martyrdom by beheading is the most honorable. But it has nothing to do with the method of dying mainly due to persecutor's purpose or to political circumstances. Therefore we know that the martyr's belief is not accord with the way of executing.
한국어
남한산성에서 처형된 순교자들 가운데 한덕운(토마스)은 참수형으로 순교하였고, 서태순(아우구스티노)과 이조여(종여)는 신문을 받다가 매맞아 순교하였으며, 정은(바오로)과 정 베드로는 백지사형으로 순교하였다. 또한 김만집(아우구스티노)은 옥에서 병으로 순교하였고, 오 안드레아와 죽산 남광리 사람인 이 요한은 교수형으로 순교하였다. 그리고 구체적인 순교방식을 알 수 없는 나머지 순교자들은 관장에게 신문을 받다가 매맞아 죽거나 백지사형을 받아 죽거나 고문의 후유증으로 옥에서 병사하거나 교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신유박해 때 한덕운이 순교한 참수터는 동문 밖 물레방아간 아래쪽에 있는 평평한 너른 밭으로 이해된다. 여러 신자들이 순교한 감옥터는 로터리 주차장 근처의 천일관 옆에 포도청의 위치를 알려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는 지점이고, 신문을 받다가 매맞아 죽거나 백지사형을 받아 순교한 장소는 판관이 집무하던 동헌 뜰과 중군이 집무하던 동헌 뜰, 그리고 유수가 집무하던 동헌 뜰이었다. 순교 성지의 개발은 참수형을 받아 죽는 것을 가장 영광스러운 순교로 인식한 전통에 따라 참수터와 순교자들의 무덤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으나, 참수형, 교수형, 백지사형 등의 순교 방식은 주로 당시의 정치적 상황이나 박해를 단행한 목적에 따라 결정된 것이므로 순교자들의 신심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목차

1. 머리말
 2. 남한산성 순교자들의 순교 방식
 3. 남한산성 순교자들의 순교터
 4. 순교 방식에 대한 인식과 성지 개발
 5. 맺음말
 Abstract

저자

  • 서종태 [ Seo Jong-tae | 한국교회사연구소 연구실장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수원교회사연구소 [Suwon Research Institute of Catholic History Ha-nam, Korea]
  • 설립연도
    2003
  • 분야
    인문학>기독교신학
  • 소개
    ◎ 설립취지 "수원교회사연구소"는 천주교 수원교구 설정 40주년을 맞이하여 수원교구와 한국교회의 역사를 연구하고, 신앙 선조들의 삶과 순교영성을 발굴하여, 이를 널리 알리고 후대에 전함으로써 한국 가톨릭 교회의 신앙과 문화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2003년 1월 1일 교구장 최덕기 바오로 주교님이 설립하셨습니다. ◎ 연구소 현황 초대 연구소장은 구산성지 주임신부인 정종득 바오로 신부가 맡게 되었으며, 연구소의 위치는 구산성지 내에 있습니다. 원활한 연구소 운영을 위해 2006년 2월 현재 7명의 연구위원과 6명의 운영위원으로 구성되어 소장의 업무를 보좌하고 있으며, 3명의 연구원이 교회사연구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 향후 연구소의 운영방침 교구 내 순교성지 및 순교자의 생애, 각 성지의 신앙적 유산을 발굴하고 이를 정리하며, 아직 개발되지 않은 교회사적지 및 순교자를 발굴하여 순교영성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아울러 신임 연구원들과 동호회원을 대상으로 매월 둘째주 토요일 한국천주교회사 월례 강좌를 실시한 후 신앙적 나눔을 가지고, 년 1~2회 학술심포지엄과 성지순례, 특별강연 등을 실시하여 순교신심을 고취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교구 내 각 본당이나 공소, 성지의 역사를 편찬하도록 연구소에 위탁하여 오는 작업도 수행할 것입니다.

간행물

  • 간행물명
    교회사학 [Research Journal of Catholic Church History]
  • 간기
    반년간
  • pISSN
    1738-5377
  • eISSN
    2713-6027
  • 수록기간
    2004~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236 DDC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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