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영계록》의 천주교인 동향보고서 - 남한산성 순교자를 중심으로 -
A report about the trend of ctholics in the book 《Gwangyeonggyelok(廣營啓錄)》 - Mainly in aspect of the Martyrs at Namhansanseung walled fortress - A report about the trend of ctholics in the book 《Gwangyeonggyelok(광영계록)》 - Mainly in aspect of the Martyrs at Namhansanseung walled fortress -
In the late period of Choseon dynasty, the extent of jurisdiction of the governor of the province Gwangjoo(廣州) is applicable not only to the city of Hanam(河南), Seongnam(城南), Gangdong-Gu(江東區), Gangnam-Gu(江南區), Seocho-Gu(瑞草區) in Seoul, but also to the Mt. Cheonggye(淸溪山) at the city of Euiwang(儀旺), Mt. Soorisan(修理山) of Anyang(安陽). From the former age of Byeong-in persecution, the authorities ordered to the whole country that every local governors should carry "the low of making one control group composed of five families"(五家作統法) and report about the trend of catholics within their province to the supreme central court Euijeongboo(議政府). This report continued from the year of 1861 to 1875, among them the report of Gwangyeonggyelok(廣營啓錄) meaning the collected reports from the governor in Gwangjoo-boo(廣州府) is very important. The governor of Gwangjooboo(廣州府) reported that he had captured the 23 catholics from the year of 1866 to 1867 in his provinces and examined them, and yet they all died from disease in the prison. But in fact it seems that the major causes of death were being hanged, being choked, being stroke and so on. Therefore I can claim that the deads were allmost martyrs. The martyrs at Namhansanseung are the 22 persons that have been registered their name in the book Gwangyeonggyelok and Hong Seong-guk, John Lee, Lee Chi-jae(李致在), Kim Man-jip(金萬集), Kim Cha-heui(金次熙), Kim Gyeong-heui(金敬熙), Kim yoon-heui(金允熙) and Han Deog-oon(韓德運) who were familiar to us through the record of witness. We can not find the name registered in the book Gwangyeonggyelok through the other documents, so we can not know their lives of beli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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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광주유수부의 관할 구역은 현재의 광주시, 하남시, 성남시, 서울의 강동구, 강남구, 서초구는 물론 의왕시의 청계산, 안양시의 수리산까지를 포함하였다. 병인박해 이전부터 정부에서는 천주교 신자의 색출을 위해 오가작통법을 시행하고 각 지방 관아에 천주교 신자의 동향 보고서를 의정부에 보고토록 하였다. 이 보고서는 1861년부터 1875년까지 계속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광영계록》의 보고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광주부에서는 1866년에 20명, 1867년에 3명, 모두 23명을 체포하여, 홍학주는 서울 포도청으로 압송하고 나머지 22명이 병사하였다고 보고하였다. 그러나 실상은 백지사, 교수형, 장살 등이 뒤섞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분들은 순교자로 볼 수 있다. 남한산성에서 순교한 분은 《광영계록》의 22명과 증언록 등에 그 이름이 기록된 홍성국, 이 요한, 이치재와 구산 출신 김만집, 김차희, 김경희, 김윤희와 신유박해 때의 한덕운 등이다. 《광영계록》에 기록된 순교자의 이름은 다른 문헌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그들의 신앙생활에 관하여 구체적으로는 전혀 알 길이 없다.
목차
1. 머리말 2. 남한산성과 광주부의 관할 구역 3. 교회문헌과 구전으로 알려진 남한산성 순교자들 1) 남한산성 순교자 2) 광주지방 순교자 4. <광영계록(廣營啓錄)>의 천주교인 동향 보고서 1) 1867년(丁卯)의 보고서 2) 1868년(戊辰)의 보고서 5. <광영계록>의 병사자와 남한산성 순교자의 관계 1) 정은 바오로와 그 재종손 정 베드로 2) 이화실과 정여삼 3) 서 아우구스티노와 이종여 4) 김문집과 김하상, 김성희와 김상희 5) 그 밖의 인물들 6. 남한산성 순교자의 처형 문제 1) 백지사 문제 2) 장폐, 교수형 문제 7. 맺음말 Abstract
수원교회사연구소 [Suwon Research Institute of Catholic History Ha-nam, Korea]
설립연도
2003
분야
인문학>기독교신학
소개
◎ 설립취지
"수원교회사연구소"는 천주교 수원교구 설정 40주년을 맞이하여 수원교구와 한국교회의 역사를 연구하고, 신앙 선조들의 삶과 순교영성을 발굴하여, 이를 널리 알리고 후대에 전함으로써 한국 가톨릭 교회의 신앙과 문화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2003년 1월 1일 교구장 최덕기 바오로 주교님이 설립하셨습니다.
◎ 연구소 현황
초대 연구소장은 구산성지 주임신부인 정종득 바오로 신부가 맡게 되었으며,
연구소의 위치는 구산성지 내에 있습니다. 원활한 연구소 운영을 위해 2006년 2월 현재 7명의 연구위원과 6명의 운영위원으로 구성되어 소장의 업무를 보좌하고 있으며, 3명의 연구원이 교회사연구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 향후 연구소의 운영방침
교구 내 순교성지 및 순교자의 생애, 각 성지의 신앙적 유산을 발굴하고 이를 정리하며, 아직 개발되지 않은 교회사적지 및 순교자를 발굴하여 순교영성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아울러 신임 연구원들과 동호회원을 대상으로 매월 둘째주 토요일 한국천주교회사 월례 강좌를 실시한 후 신앙적 나눔을 가지고, 년 1~2회 학술심포지엄과 성지순례, 특별강연 등을 실시하여 순교신심을 고취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교구 내 각 본당이나 공소, 성지의 역사를 편찬하도록 연구소에 위탁하여 오는 작업도 수행할 것입니다.
간행물
간행물명
교회사학 [Research Journal of Catholic Church 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