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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편 : 제1부 남한산성 순교자와 경기 지역의 복음화

남한산성의 역사지리적 고찰과 천주교 신앙의 전파
A study of "Nanhansanseong Walled Fortress(南漢山城) and the spread of Catholicism" in asprct of historical geography
A study of "Nanhansanseong Walled Fortress(남한산성) and the spread of Catholicism" in asprct of historical ge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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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수원교회사연구소 바로가기
  • 간행물
    교회사학 바로가기
  • 통권
    창간호 (2004.12)바로가기
  • 페이지
    pp.17-60
  • 저자
    최완기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42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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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Namhansanseong Walled Fortress was one of the four rear city of the capital Hanseong(漢城) and the safety zone during the war(戰時保障處). There are vary multitude offices for Yoosoo(留守) the local governor, Joonggun(中軍) the training commander, Pankwan(判官) the executor etc. In the book Yeojidoseo(輿地圖書), there are the tempory palace called Haenggoong(行宮) of about 231 kans(間), the royal shrine called Jwajeon(左殿) of 29 kans, the altar of the Haenggoong called Woosil(右室) of 4 kans, the various warehouses of 924 kans, the guest house called Inhwagwan(人和舘) of 36 kans, the offices called Gwana(官衙) of 123 kans, the office for advising the local governor called Hyangcheong(鄕廳) of 16 kans. As well as these, there are also the office kitchen called Joosa(廚舍) of 11 kans, the office Jagcheong(作廳) of 27 kans, the office for arms called Goonkicheong(軍器廳) of 12 kans, the office Gwancheong(官廳) of 11 kans, the belfry called Jonggak(鐘閣) of 6 kans, the prison of 21 kans. Jwaseungdang(坐勝堂) Hall is located at the left side of the wall of Haenggoong, and constructed by the local governor Shim, Sang-gyoo in 1817 due to sorry feelings for the king. The office Sooeoyeong(守禦營) for training and commanding soldiers, called Yeonmookwan(鍊武館) or Yeonbyeongkwan(鍊兵舘) is located in the center of the fortress, below the north mountain. Iah(貳衙) the office for Pankwan was the second class as compared with the first class Sanyeong(上營) for Yoosoo, and located beside the Haenggoong. Jeseungheon(制勝軒) was private residence for Pankwan. It can be assumed that the two small cabins beside the Yeonmookwan were the prisons divided by sex. And it can be assumed that the great hall located in the right of Yeonmookwan was the Goonroicheong(軍牢廳) the main center for Pankwan or for Joonggun interrogating and torturing the prisoners including the catholics. Meanwhile the parking now between the Catholic church and Yeonmookwan is seemed to have been the large market place, and sometimes used to executing ground. Beside the stream toward the southeastern from the present rotary, there was the office Podogoonkwancheong(捕盜軍官廳) for capturing catholics as well as thives.
한국어
조선시대 남한산성은 서울을 둘러싼 4배도(陪都) 중의 하나로서 유사시에는 국왕의 피난처로서 보장지의 역할을 하였다. 이곳에는 1795년 이후 광주유수부의 최고 책임자인 유수를 비롯하여 중군, 판관 등의 관리와 군관, 포교, 아전 등의 거처인 공해(公廨)가 있었는데, 《여지도서》에는 행궁(行宮 231칸), 좌전(左殿 29칸), 우실(右室 4칸), 군향창사(軍餉倉舍 924칸), 객사(客舍36칸), 관아(123칸), 향청(16칸), 주사(11칸), 작청(27칸), 군기청(12칸), 관청(11칸), 종각(6칸), 형옥(21칸)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중 행궁의 상궐 왼편 담밖에 위치한 좌승당(坐勝堂)은 1817년(순조17) 유수 심상규(沈象奎)가 행궁에서 집무하는 것이 불편하여 별도로 집무처를 건립한 곳이다. 성 한복판 북쪽 산 밑에 수어군을 훈련하고 지휘하던 본부로서 수어영(守禦營)이 있었으니, 연무당(鍊武堂), 연병관(鍊兵館)이라고도 했다. 행궁 옆에 있는 이아(二衙)는 판관의 공식 집무실이었고, 제승헌(制勝軒)은 판관의 숙소라고 여겨지며, 연병관 옆의 작은 두 채의 건물은 남녀로 구분된 형옥(刑獄)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연무관 바로 오른 편의 큰 건물이 중군이나 판관이 죄인을 다스리던 정청(正廳)으로서의 군뢰청(軍牢廳)으로 추측되는데, 여기에서 천주교 신자들이 신문을 받고, 온갖 고문을 받았다고 보여진다. 한편 연무관과 현 성당 사이의 주차장이 장터로서, 때로는 사형장으로 활용되었으며, 로타리 남동쪽 개천가에는 천주교 신자들을 체포하고 신문하던 포도군관, 포리, 포졸들이 근무하던 포도군관청이 있었다.

목차

1. 문제의 제기
 2. 남한산성의 입지
  1) 자연적 입지
  2) 인문적 입지
 3. 산성의 축성과 운영
  1) 보장처(保障處)로서 설정
  2) 성곽의 수축
  3) 수어청(守禦廳)의 설치
  4) 읍치(邑治)의 이전
  5) 부윤의 토포사(討捕使) 겸임
 4. 천주교 박해와 순교의 성지
  1) 천주교의 전래와 남한산성
  2) 박해의 물결
  3) 현장으로서의 남한산성
 5. 글을 마무리하며
 Abstract

저자

  • 최완기 [ Choi Wan-gi |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수원교회사연구소 [Suwon Research Institute of Catholic History Ha-nam, Korea]
  • 설립연도
    2003
  • 분야
    인문학>기독교신학
  • 소개
    ◎ 설립취지 "수원교회사연구소"는 천주교 수원교구 설정 40주년을 맞이하여 수원교구와 한국교회의 역사를 연구하고, 신앙 선조들의 삶과 순교영성을 발굴하여, 이를 널리 알리고 후대에 전함으로써 한국 가톨릭 교회의 신앙과 문화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2003년 1월 1일 교구장 최덕기 바오로 주교님이 설립하셨습니다. ◎ 연구소 현황 초대 연구소장은 구산성지 주임신부인 정종득 바오로 신부가 맡게 되었으며, 연구소의 위치는 구산성지 내에 있습니다. 원활한 연구소 운영을 위해 2006년 2월 현재 7명의 연구위원과 6명의 운영위원으로 구성되어 소장의 업무를 보좌하고 있으며, 3명의 연구원이 교회사연구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 향후 연구소의 운영방침 교구 내 순교성지 및 순교자의 생애, 각 성지의 신앙적 유산을 발굴하고 이를 정리하며, 아직 개발되지 않은 교회사적지 및 순교자를 발굴하여 순교영성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아울러 신임 연구원들과 동호회원을 대상으로 매월 둘째주 토요일 한국천주교회사 월례 강좌를 실시한 후 신앙적 나눔을 가지고, 년 1~2회 학술심포지엄과 성지순례, 특별강연 등을 실시하여 순교신심을 고취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교구 내 각 본당이나 공소, 성지의 역사를 편찬하도록 연구소에 위탁하여 오는 작업도 수행할 것입니다.

간행물

  • 간행물명
    교회사학 [Research Journal of Catholic Church History]
  • 간기
    반년간
  • pISSN
    1738-5377
  • eISSN
    2713-6027
  • 수록기간
    2004~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236 DDC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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