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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교변과 대종교
ImoKyobyun : The Persecution of Japanese imperialism against Daejonggyo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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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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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행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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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
    제26집 (2022.12)바로가기
  • 페이지
    pp.222-268
  • 저자
    정영훈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424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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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ImoKyobyun refers to the incident committed by Japanese imperialism to exterminate Daejonggyo in 1942. During the accident twenty-five Daejonggyo leaders including Chief Executive YoonSebok were arrested and tortured, and among them ten were dead through harsh abuse. The church was closed and all religious activities were banned. All of the historical materials of the church were confiscated. Daejonggyo was founded in 1909 claiming the Korean’s national religion which was started by Dangun the founding father of Gojoseon. It has continued to inspire Koreans with national identity and pride. Many National leaders joined Daejonggyo and cultivated their national consciousness and independent will. Japanese imperialism regarded Daejonggyo as a dangerous organization obstructing Japanese domination of Korea. So they started the repressive measures to wipe out Daejonggyo. That was the ImoKyobyun of 1942 December. This persecution case was the biggest one among the suppression incidents committed by Japanese imperialism. The surviving 6 leaders of Daejonggyo were released from prison at 1945 August after the fall of Japanese imperialism. But Daejonggyo lost its significant human resources through ImoKyobyun, so it walked the path of stagnation after that incident.
한국어
임오교변은 1942년에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대종교단이 탄압받은 사건을 가리킨다. 이 사건으로 교주 윤세복 이하 교단 지도자 25명이 체포되어 일제 당국으로부터 혹독한 고문을 받았으며, 그중 10명이 일제의 박해로 인하여 옥사하는 피해를 입었다. 교단의 모든 역사자료가 이때 탈취되 었고 종교활동은 중단되었다. 대종교는 망국 전야인 1909년 1월에 단군이 개창한 민족고유종교를 자처하면서 창립되었다. 대종교는 비록 독 립을 위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지는 않았지만 한민족 성원들에게 민 족정체성과 자긍심을 지속적으로 고취시켜 왔다. 수많은 민족운동 지도 자들이 대종교에 가입하였고, 대종교를 통하여 민족의식과 독립의지를 가다듬었다. 일본제국주의로서는 대종교단을 한민족에 대한 식민지배를 방해하는 위험한 단체라 판단하였고, 드디어 대종교를 말살하기 위한 대 대적인 탄압행동에 나섰으니, 그것이 1942년 12월에 발생한 임오교변이 다. 이 사건은 일본제국주의로부터 한국 종교가 받은 탄압 중 그 피해 규모가 가장 큰 것이었다. 1945년 8월 일제가 연합군에 의해 패망함으 로써 다행히 윤세복 교주 등 6명의 지도자들이 살아서 출옥하였지만, 임오교변을 통하여 중요한 인적 자원을 상실한 대종교단은 이후 침체의 길을 걷게 된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대종교의 중광
3. 대종교 수난의 역사
4. 임오교변 직전의 대종교
5. 임오교변의 경과와 반인도적 박해
6. 임오교변과 대종교
7. 일제의 민족말살 기획과 임오교변
8.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임오교변 대종교 윤세복 종교민족주의 단군민족주의 항일민족운동. Im-o-Kyo-byun Daejonggyo Yun se-bok Religious-nationalism Dangun-nationalism Anti-Japan Korean national movement.

저자

  • 정영훈 [ Jeong, Young-Hun |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국학연구소 [The Institute of Koreanology]
  • 설립연도
    1987
  • 분야
    인문학>역사학
  • 소개
    본 법인은 민법 제32조와 교육인적자원부 소관 비영리법인의 설립 및 감독에 관한 규칙에 따라, 국학(國學)의 체계적인 연구를 통하여 민족 학문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간행물

  • 간행물명
    국학연구 [國學硏究]
  • 간기
    연간
  • pISSN
    1598-4524
  • 수록기간
    1988~2025
  • 십진분류
    KDC 911 DDC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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