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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논문

월남 이상재와 경재 김인전
Wolnam Lee Sang-Jae and Gyeongjae Kim In-J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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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한남대학교 기독교문화연구소 바로가기
  • 간행물
    기독교문화연구 바로가기
  • 통권
    제26집 (2023.01)바로가기
  • 페이지
    pp.51-78
  • 저자
    송현강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423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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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Wolnam Lee Sang-jae was able to grow into a nationalist activist, assisting Park Jeong-yang in the Enlightenment Group. After about two years in prison for his activities in the Independence Association, he converted to Christianity. His conversion had impacts on people in his hometown. Following his discharge from prison in 1904, he met Kim Gyu-bae from his hometown and spread the stories about Jesus's duties to him, who immediately accepted Christianity. Kim Gyu-bae spread the stories to his family members. His son Gyeongjae Kim In-jeon got to believe in Jesus. Soon his family grew into the greatest Christian family in the Seocheon area. Gyeongjae set up and managed Hanyeong School offering primary and secondary courses in his hometown Wacho-ri in 1906. After teaching at Yeongmyeong School, he studied at a theological school in Pyeongyang and became a minister at Seomun Church in Jeonju in 1914. He was the spiritual power of the March 1 Movement in Gunsan and practically led the March 1 Movement in Jeonju. The Manse Demonstrations were able to reach a zenith in Jeonju thanks to the Christian believers and youths fascinated by his sermons, character, and national spirit. After seeking asylum in Shanghai, he fought hard for the nation as a key figure of the provisional government and died for the country bravely at the site of its independence.
한국어
월남은 개화파 박정양을 도우며 민족운동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독립협회 활동과 관련된 2년 여의 옥중 생활 가운데 그의 기독교 개종이 이 루어졌다. 그런데 월남의 개종은 고향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먼저 월 남은 월남은 1904년 봄 출옥 후 고향에서 올라온 김규배를 만나 예수의 도 리를 전했고, 김규배는 즉시 기독교를 수용하였다. 또한 김규배는 자신의 집안에도 예수의 도리를 전했다. 그리하여 아들인 경재가 예수를 믿게 되었고, 그의 가문은 곧 서천 지역 최고의 기독교 가문 으로 성장했다. 경재는 1906년 자신의 향리인 와초리에 초-중등과정의 한영 학교를 세워 운영하였다. 그후 경재는 영명학교 교사와 평양신학교를 거쳐 1914년 전주서문교회 목사가 되었다. 군산3.1운동의 정신적 배후였던 그는, 다시 전주3.1운동의 실질적인 주도자였다. 그의 설교와 인품과 민족정신에 매료된 교인들과 청년들에 의해 전주에서의 만세시위가 절정에 이를 수 있 었다.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 요인으로서 겨레를 위해 고군분투했던 그 는 바로 그 독립의 현장에서 장렬히 순국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I. 서론
Ⅱ. 월남 이상재
1. 월남의 초기 관료 생활
2. 월남과 독립협회
3. 월남의 기독교 개종
4. YMCA와 월남
5. 1920년대의 월남
Ⅲ. 경재 김인전
1. 부친 김규배의 생애
2. 한영학교 설립 및 운영
3. 영명학교 교사와 평양신학교 재학
4. 전주서문교회 목사 시무와 전주 3.1운동
5. 상해 망명-임시의정원 의장
Ⅳ.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월남 이상재 김규배 경재 김인전 기독교 서천 Wolnam Lee Sang-jae Kim Gyu-bae Gyeongjae Kim In-jeon Christianity Seocheon

저자

  • 송현강 [ Song, Hyeon Kang | 한남대학교 인돈학술원 연구위원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한남대학교 기독교문화연구소 [Institute for Christian and Cultural Studies]
  • 설립연도
    1985
  • 분야
    인문학>기독교신학
  • 소개
    현대에서 기독교 대학의 창학이념을 효과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기독교 문화를 창조해야 한다. 이런 중요한 요청 앞에서 기독교문화연구소는 한남대학교의 창학이념에 따라 기독교 원리하에 심오한 진리를 탐구하여 학문 발전에 기여하고, 또한 이에 머물지 않고 지역 사회에 기여하며 사회의 문화 발전을 선도할 수 있는 기독교 문화 형성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그 목표로 삼는다. 진리탐구를 통한 학문 발전: 기독교 정신으로 현대의 문화 속에 살아가는 것은 이질적이고 다양한 문화의 흐름들과의 조화를 필요로 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기독교의 정신으로 현대 문명의 부정적인 면을 견제하고 비판할 수 있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배타적이고 대립적인 문화적 충돌을 해결하면서도, 또한 그 문제점을 비판하는 보다 창조적인 조화의 방향에 대한 제시가 필요하게 된다. 기독교 문화연구소는 이런 방향제시를 위해서 기독교의 진리와 타학문간의 조화와 긴장을 이룰 이론적 기초에 대해 연구한다. 세부 연구 분야는 환경문제연구, 종교문제연구, 문화사회연구, 정치경제연구, 문학예술연구로 나누어 진행한다.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와 기독교 문화 형성: 이런한 목적을 위해서 기독교문화연구소는 다양한 학술연구와 학제간 연구를 정기적으로 진행한다. 또한 이런 연구들이 탁상공론에서 그치지 않도록 타학문을 전공하는 교수들과 학문적 연구를 공조하고, 또 지역교회, 단체들과 함께 연구하여 그 결과를 함께 나눈다. 그리고 그들과의 연대 속에서 실천적 방안들을 연구 및 발표한다. 나아가 캠퍼스 내의 기독교 문화 확산 운동과 환경보호 실천운동을 전개 및 지원하는 기능을 한다.

간행물

  • 간행물명
    기독교문화연구 [Christian and Cultural Studies]
  • 간기
    반년간
  • pISSN
    2288-0488
  • 수록기간
    1994~2025
  • 십진분류
    KDC 235 DDC 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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