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review is an article that summarizes the history of Beomeosa Temple by Seongcheol, who is famous as a high priest of the modern era of Korea. Various studies on Seongcheol have been conducted so far, and it is imprinted that Seongcheol is from Haeinsa Temple. In other words, he was a monk at Haeinsa Temple, a head of Haein Chongrim Bangjang, Ipjeok, the construction of a monument, Mundo Headquarters(Baekryeonam temple), and a memorial service. However, in my opinion, Seongcheol's life has many connections with Beomeosa Temple. Therefore, I would like to reveal the cross-section related to Beomeosa Temple in this article. Through such a cross-section, I would like to shed new light on Seongcheol's life. He is summarized by content as follows. First, Seongcheol's gift is a movable property. Since Dongsan is a monk representing Beomeosa Temple in the modern era, Seongcheol is clearly related to Beomeosa Temple. Second, the vein of Seongcheol was the vein that led to Baekyong-Hadongsan-Seongcheol. It was noted that Seongcheol also recognized this legal vein. Third, Seongcheol's relationship with Beomeosa Temple can be mentioned, such as the suggestion of the ritual house of Beomeosa Temple in Dongsan, the review of moving into Wonhyoam Hermitage, the refusal of Hyanggokmundo Island, and the worship of the Dongsan monument just before the entry. Fourth, Seong-cheol acknowledged the spirit of purification of his benefactor, Dongsan. Therefore, Seongcheol promoted spiritual Buddhist purification, and positively evaluated the movement to purify the garden when writing the Dongsan inscription. We hope that the above will be a reference to Seongcheol's life, Dongsan Mundo, and modern Beomeosa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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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한국 현대기 고승으로 유명한 성철의 범어사 인연과 그 관련 내용을 고찰한 글이다. 지금껏 성철에 대한 연구가 다양하게 이루어졌지 만, 그 흐름에는 ‘성철은 해인사의 출신’이라는 점이 각인되어 있다. 즉 그 의 출가, 해인총림 방장 역임, 입적을 비롯해 그의 비석 건립과 문도 본부 (백련암), 추모 제사 등이 모두 해인사와 연관이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 에 성철의 삶에는 범어사에서의 연고나 인연도 많다. 그래서 이 글에서 범 어사와 관련된 단면을 들추어내고, 그 단면을 통해 성철의 삶을 새롭게 조 명하고자 한다. 이를 내용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성철의 은사는 동산이라는 점이다. 동산은 현대기 범어사를 대표 하는 승려이기에 성철은 범어사와 연고가 분명하다. 둘째, 성철의 법맥은 용성→동산→성철로 이어진 맥이다. 이 법맥을 성 철도 인정하였음을 주목했다. 셋째, 성철의 범어사 인연은 동산의 범어사 조실 제안, 원효암 입주 검 토, 향곡문도 거부, 입적 직전 동산 비석의 참배 등을 거론할 수 있다. 넷째, 성철은 그의 은사인 동산의 정화 정신을 인정하였다. 그래서 성철 은 정신적인 불교정화를 추진했고, 동산 비문을 작성할 때 동산의 정화운 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상과 같은 내용이 성철의 삶, 동산문도, 현대기 범어사 등의 역사 탐 구에 참고가 되길 기대한다.
목차
한글요약 Ⅰ. 서언 Ⅱ. 성철의 입산 출가와 은사 동산 Ⅲ. 동산의 법맥 전수 1. 동산의 후계자 지정, 법맥 인식 2. 동산 입적, 동산법맥 전수 논란 Ⅳ. 동산의 정신 계승 Ⅴ. 결어 참고문헌 Abstract
고타마 싯다르타가 해결하고자 노력하였던 것은 현세에 살아가는 인간의 고뇌와 고통이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의 인식이 그의 깨달음이었으며, 그 깨달음을 사회화하려는 노력이 그의 가르침이요 실천행이었다고 우리는 믿는다.
따라서 불교인에게 있어서의 궁극 목표인 열반은 탈(脫)사회의 경지가 아니며, 자주(自主), 자율(自律), 자유(自由)의 인격을 사회 속에서 실현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아울러 개인적 완성인 열반을 사회화하려는 노력이 부처님의 실천행이었고, 그 결실이 승가 사회였다.
이러한 우리의 인식은 이미 역사상 정토(淨土)사상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이는 그 행태에 있어서 기복적 신앙으로 치우침으로써 그 본의가 침체된 면이 없지 않다. 이에 우리는 자주, 자율, 자유라는 인류의 이상적 인격을 완성해 가듯이 자유, 평등의 사회를 구현해 가는 것이 정토를 이루는 길임을 재인식하고,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 연구와 능동적 실천을 위해 "한국정토학회"를 결성하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 개개인의 불교적 인격완성이 저절로 정토를 이루게 할 것이라는 안이함을 경계하며, 부처님의 이타적 노력을 교훈 삼아, 사회의 제반 문제를 불교적 입지에서 해결하는데 일익을 도모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따라서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윤리, 예술, 사회 등의 제반 분야도 당연히 우리의 관심 영역이 된다.
결국 우리의 취지는 불교 교학의 이론적 토대 위에서 정토 실현의 현실적 실천방도를 모색하자는 것이며, 당시대에 요구되는 불교의 실천성을 회복함으로써 불교가 정신적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할 대안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즉 우리는 모든 학문의 활동을 정토에로 승화시켜서 인류 이상(理想)의 구현에 이바지 하고자 함이니, 이것이 우리의 염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