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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남평양(南平壤)’ 위치와 변천에 대한 검토
A Review of the Location and Changes of Goguryeo’s ‘South pyeong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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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전북사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전북사학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66호 (2022.11)바로가기
  • 페이지
    pp.5-32
  • 저자
    김훈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420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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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In the process of Goguryeo’s policy of Southward Advance, we will examine the establishment of Goguryeo’s ‘South pyeongyang’ and its location change and transition. Due to the southward Advance policy of the Goguryeo Dynasty during the King Gogukwon, the front line was lengthened in the process of southward advance to Daebang Goji, making it difficult to secure military supplies and troops from the domestic fortress to Hwanghae-do. Goguryeo needed to build a stronghold fortress, an outpost for southward advance in Hwanghae-do. Goguryeo ‘South pyeongyang’ is a product of Goguryeo’s southern advance, and it is reasonable to view the ruins of Jangsu mountain Fortress and its surroundings as Goguryeo’s ‘South pyeongyang’. However, there is a problem of ignoring the record that ‘South pyeongyang’ of Goguryeo in documents such as The Heritage of the Three States and History of Goryeo is now Seoul. King Jangsu of Goguryeo continued to pursue the policy of Southward Advance. In 475, King Jangsu of Goguryeo attacked Hanseong of Baekje, and Goguryeo occupied the Han River basin. Then, at the end of the 5th century, Goguryeo established ‘South pyeongyang’, the subsidiary capital, in Bukhansan County on the north bank of the Han River. 551 Allied forces of Baekje and Silla attacked Goguryeo in the Han River basin. Baekje restored the old lands in the Han River basin, including Hanseong, and invaded Goguryeo’s Pyeongyang. Pyongyang is not the capital city of Goguryeo, which was moved in 427. ‘South pyeongyang’ (Bukhansan County), the subsidiary capital city, was built in the late 5th century in the Jongro-gu and Jung-gu areas. In 551, along with the loss of the Han River basin, the subsidiary capital, ‘South pyeongyang’, was also lost. Goguryeo moved the lost “South pyeongyang” to Jangsu mountain Fortress in Shinwon County, Hwanghae Province, and continued to operate it as an auxiliary capital. In 551, ‘South pyeongyang’, which was relocated from the Han River basin toJangsu mountain Fortress in Sinwon County, Hwanghae Province, was called the Three capitalss of Goguryeo, along with Pyongyang Fortress and Kuknaeseong Fortress, until the fall of Goguryeo.
한국어
고구려의 남진정책 속에서 고구려 ‘남평양’의 설치와 그 위치 변화 및 변 천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고구려 고국원왕시기 남방진출로 대방 고지로 의 남진과정에서 전선이 길어져, 국내성에서 황해도로의 군수물자와 병력의 보장이 쉽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고구려는 황해도를 남진의 전초기 지인 거점으로 삼아 남쪽에서 북상하는 백제를 견제하기 위한 거점성의 건립 이 필요하였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고구려는 이 지역에 대한 지배력이 공 고화된 4세기 후반에 황해도 신원군에 장수산성 및 그 주변의 유적을 창설하 였다고 생각한다. ‘남평양’은 고구려 남방진출의 산물로서, 고구려 남방진출의 전초기지인 장수산성과 그 주변의 유적을 ‘남평양’으로 보는 것이 일리가 있 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삼국유사』· 『고려사』 등 문헌 자료의 ‘남평양’이 지금의 서울이라는 기록을 간과하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고구려 장수왕은 남진정책을 추진하였다. 475년에 장수왕이 백제 한성 및 한강 유역을 점령한 후, 고구려가 5세기 말에 한강 북안의 북한산군 즉 고려 시대 양주(남경으로 승격된 양주: 종로구·중구 일대)에 부수도인 거점성 ‘남 평양’을 설치하였다고 추정한다. 551년에 백제와 신라의 연합군이 한강 유역의 고구려에 대한 반격작전을 펼쳤다. 그 결과 백제가 한성을 비롯한 한강 유역의 옛 땅을 수복하고 고구 려의 평양을 공파(攻破)하였다. 551년에 백제가 공파한 평양은 고구려가 427 년에 천도한 수도 평양이 아니라, 5세기 말 종로구·중구 일대에 건립한 부 수도인 ‘남평양’(북한산군)이라고 생각한다. 551년에 고구려가 한강 유역에서 상실한 ‘남평양’을 황해도 신원의 장수산 성으로 옮겨 계속 부수도로 운영하였다고 추정한다. 551년에 한강 유역에서 황해도 신원군 장수산성으로 이전한 ‘남평양’은 고구려가 멸망할 때까지 평양 성·국내성과 함께 고구려 3경으로 불리었다고 추정한다.

목차

Ⅰ. 머리말
Ⅱ. 고구려 고국원왕과 ‘남평양’설치
Ⅲ. 고구려 한강 유역 점령과 ‘남평양’ 설치
Ⅳ. 고구려의 한강 유역 상실과 ‘남평양’ 이전
V. 맺음말
<국문초록>

<참고 문헌>

키워드

고구려 백제 고구려 남진정책 남평양 장수산성 한강 Goguryeo Baekje the Southward Advance Policy of Goguryeo South Pyeongyang Jangsu mountain fortress Han River

저자

  • 김훈 [ Kim, Hun | 전북대학교 사학과 박사과정 수료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전북사학회 [The Jeonbuk Historical Society]
  • 설립연도
    1977
  • 분야
    인문학>역사학
  • 소개
    본 학회는 "역사학의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이바지한다"는 목표하에 도내의 역사학자들을 주축으로 1976년에 창립된 이래 30년 이상의 연륜을 이어온 정통 역사학회이다. 수차례의 학술대회를 개최하였을 뿐 아니라, 학술지 '전북사학'을 30호까지 발간하면서 지역 사학 발전의 토대를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 학회는 현재 약 240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으며, 격월로 임원회의와 월례발표회를 개최하고 있다. 매 발표회에 실제로 참여하는 인원이 항상 30명이 넘는다. 대부분의 역사관련 학회가 주로 대학교수나 강사들로 구성되어 있는 데 비해 전북사학회는 대학교수, 강사는 물론 학예사, 연구원, 중등학교 역사담당교사 등 역사와 관련된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대학에서 연구한 역사학에 관한 이론을 중등학교 교육 현장에 올바로 적용하여 이론과 실제를 하나로 만들려는 것이 향후 전북사학회의 지향점이다.

간행물

  • 간행물명
    전북사학 [JEONBUK SAHAK ; The Jeonbuk Historical Journal]
  • 간기
    연3회
  • pISSN
    1229-2001
  • 수록기간
    1977~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911 DDC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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