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paper explored how the general public supported outgoing soldiers, fallen soldiers and their bereaved families on the home front during the all-out war period, based on the “Diary of Chihei Terakado.” It was aimed at looking into the actual situation of public mobilization by focusing on the three types of ceremonies-praying for good luck, seeing-off outgoing soldiers, and picking up remains and village funerals–comparing the changes in the home front support during the Sino-Japanese War and the Pacific War. In Nukata Village, public mobilization took two forms: praying for good luck and worshiping at a shrine. The former was primarily led by the family and the village itself while the latter was joined by neighbors of the outgoing soldiers. This suggests that public mobilization was more active for worshiping at a shrine, according to the diary. The ceremony to see soldiers off was held in such a grand way that their family members and villagers gathered at the town hall to give them three cheers, and then villagers escorted soldiers to the final departure point to see them leave. According to the diary, the remains of fallen soldiers were picked up at Nukata Station, where villagers saw off soldiers, and it was typical that villagers participated in a home funeral in the morning and a village funeral in the afternoon. It was also found that as the number of casualties increased more than during the Sino-Japanese War, elementary schools served as an important venue for the home front support during the Pacific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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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총력전체제기에 민중이 출정 병사와 전사자, 그 유가족에게 어떠한 총후 후원을 했는지 “데라카도 치헤이 일기(寺門治平日記)”를 통해 분석하였다. 무운장구 기원, 출정과 배 웅, 유골 마중과 촌장(村葬) 이 세 가지 의식에 초점을 맞추어 민중 동원의 실태 파악 및 총 후 후원이 중일전쟁기와 태평양전쟁기에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 비교하는 데에 연구의 목적 을 두었다. 누카타무라(額田村)의 무운장구 기원은 천사참배(千社參拜)와 무운장구 기원제라는 두 가지 형태로 동원이 이루어졌는데. 천사참배는 출정 병사의 이웃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졌던 반면 에 무운장구 기원제는 가족 및 마을 주체로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 누카타무라의 무운장구 기원은 천사참배의 민중 동원이 더 활발히 행했졌음을 논했다. 출정과 배웅은 출정 병사의 가족과 마을 사람들이 출정 병사를 앞에 두고 만세삼창을 하는 등 성대한 의식 속에 이루어 졌으며, 이웃 사람들은 출정 병사의 최종 출발지까지 배웅하였다. 전사자의 유골 마중은 출정 을 배웅했던 누카타역(額田駅)에서 이루어졌으며, 마을 사람들은 촌장이 진행되는 날 오전에 는 자택장(自宅葬)에 참여하고 오후에는 촌장에 참석하는 것이 정형화된 사실이었음을 언급 했다. 그리고 태평양전쟁기의 총후 후원은 중일전쟁 무렵과 비교해 전사자의 증가로 인하여 국 민학교가 총후 후원의 중요한 무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한양대학교 일본학국제비교연구소 [Global Center for Japanese Studies]
설립연도
2008
분야
인문학>일본어와문학
소개
본 연구소는 일본학 관련의 학문의 한 분야를 발굴·개척하여 문화의 상호작용에 의한 교섭에 대해 연구를 진행함으로써 일본학의 다양한 면모를 현재화하는 것을 취지로 한다.
일본학 국제비교란 국가나 민족이라는 분석 단위를 넘어 동아시아라고 하는 문화복합체를 상정하고 그 내부에서 문화생성, 전파, 접촉, 변용에 주목하여 종합적인 문화교섭의 모습을 복안적이고 종합적인 견지에서 해명하려고 하는 새로운 일본학 연구의 하나인 문화교섭학을 소재로 하여, 이미 한일교류사를 중심으로 한 문화교류사의 연구축적을 바탕으로 이를 더욱 확대하여 글로벌한 시점에서 문화교섭학을 중심으로 일본의 문화교류연구를 학문체계로서 구축하고자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본 연구소는 첫째, 다대다 관계의 문화적 복합체로서 인식하는 복안적 시좌를 공유하고 국제적 발진력을 가진 자립한 신진연구자를 육성하고, 둘째, 종래의 2개국간 혹은 학문 문화별 문화연구를 넘어 새로운 학문 분야로서의 일본 문화교섭학을 창출하고 그 이론과 방법, 구체적 사례를 연구하며, 셋째, 각국에서 개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문화교류연구, 대외관계사 연구 등을 국제적으로 네트워크로 연결하고 동아시아 각 지역의 연구를 리드하고 고유의 국제학회를 가지는 연구허브를 구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