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鲜朝文人卢以渐与清蒙古族学者博明交流初探
The first exploration of the exchange between No YiJeom, the literati of the Korean Dynasty, and Bo Ming, the Mongolian literati of the Qing Dynasty 조선조문인로이점여청몽고족학자박명교유초탐
In 1780, No YiJeom, a literati of the Korean dynasty, met and communicated with Bo Ming, a Mongolian literati of Qing dynasty literati . In No YiJeom's “Su Sa Rok”, Bo Ming's resume, lineage and appearance were all involved, which could complement the shortage of academic circles. Through the exchange of Neo-Confucianist ideas between the two people, One can gather that Bo Ming respected Cheng Zhu's Neo-Confucianism. His ideological tendency reflected the history of the confrontation between Neo-Confucianism and the heart-mind theory in the early Qing dynasty. And his Neo-Confucianist view coincided with No YiJeom; The concept of Bo Ming’s literature theory is closely related to the literature theory of the eight masters of the Tang and Song dynasties, at the same time, Bo Ming accepted the influence of the Tongcheng faction. He and No YiJeom held the Spring and Autumn Annals as the view of the classics, which reflected the rising academic trend of literature and classics during the Qianlong period. No YiJeom praised Han Yu and Liu Zongyuan, which not only circuitously reflected the debate about the creation methods in the Korean literary world, but also reflected his idea of focusing on Tang in the field of literary creation. His view on the Book of Rites reflected the adherence of Korean Neo-Confucianism to "etique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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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0년 조선조의 문인 노이점(盧以漸)은 청나라 몽고족 학자인 박명(博明)을 만나 벗으로 삼고 교유하게 되었다. 노이점의 『수사록(隨槎録)』에는 박명의 이력과 세계(世系) 및 그의 외 모에 대해 두루 언급하였는데 학계에서 진행된 박명에 대한 연구를 온전히 매울 수 있게 되었다. 두 사람은 이학사상(理學思想)에 관해 광범위한 교류를 진행하였는데 이로써 박명 또한 정주이학을 매우 존숭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고, 그의 사상적 경향에는 청나라 초기의 이학인 심학(心學)을 둘러싼 격렬한 논쟁이 투영되어 있음을 가늠할 수 있다. 박명의 문학창작에 관 한 이념은 당.송 8대가의 문학이론과 밀접히 연계되어 있으며, 동시에 동성파(桐城派)의 영향 을 크게 받았다. 그는 노이점과 마찬가지로 『춘추(春秋)』를 경학으로 인정하였는데, 이를 통 해 건륭(乾隆)시기에 흥기된 금문경학(今文經學)의 학술적 경향을 엿볼 수가 있었다. 노이점 은 또 한유(韓愈)와 유종원(柳宗元)에 대해서도 절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는 창작방법에 관해 서 진행된 조선조 문단의 논쟁이 간접적으로 반영되었을 뿐만 아니라, 문학창작에서 당나라 를 종주(宗主)로 삼는 노이점의 이념도 잘 표출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예기(禮記)』에 대 한 인식은“예(禮)”에 대한 조선 이학의 확고한 수호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한중인문학회 [The Society of Korean & Chinese Humanities]
설립연도
1996
분야
인문학>중국어와문학
소개
한중인문학회는 대우재단과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지원으로 중국 대학의 한국연구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학 연구를 활성화시킬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한국에서는 서울대, 고려대, 아주대, 성균관대, 동국대, 연세대, 방송대, 과기대, 정문연, 순천향대, 남서울대, 울산대, 전남대, 충남대, 숭실대, 한남대, 경북대, 부산대, 영남대 등을 중심으로 전국의 각 대학의 인문학 전공 교수들이, 중국에서는 북경대, 남경대, 복단대, 절강대, 산동대, 요녕대, 화동사대, 중앙민족대, 북경어언문화대, 중국사회과학원, 남개대, 중앙민족대, 낙양외국어대, 서북대 등을 중심으로 중국의 각 대학의 인문학 전공 교수들이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여기에 중국과 한국의 언어문화 및 관계사에 관심이 많은 일본, 대만, 미국, 러시아의 학자들이 참여하여 동아시아의 정체성을 밝히는 작업에도 전념하고 있다.
1) 한국, 중국에서 매년 한 차례씩 한국, 중국, 대만, 일본, 미국, 러시아의 학자들이 학술 세미나를 열어서 양국의 인문과학에 편재되어 있는 보편성을 탐색한다.
2) 학술 세미나에서 논의된 내용을 중심으로 논문집을 발간하여 양국 학자들의 관심 사항을 널리 알리고, 그러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협조한다.
3) 양국의 문화 유산을 답사하는 작업이다. 중국의 항주 일대와 고려 시대의 유적과 유물, 중국의 동북 지방과 고구려의 유적과 유물, 상해와 독립 운동 등에 대한 답사를 통하여 중국과 한국의 문화의 뿌리를 직접 확인한다.
4) 양국 문화에 뿌리 내리고 있는 보편성을 추출하여 세계 문화의 한 축인 동아시아 문화의 정체성을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