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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예종대 道生僧統 王竀의 ‘모반’과 법상종 세력의 변동
The ‘Rebellion’ of Seungtong Dosaeng(道生僧統), Wang Taeng(王竀) and the Change of the Beopsang Buddhism(法相宗) during King Yejong(睿宗)’s Reign in the Goryeo(高麗) Dynasty
고려 예종대 도생승통 왕탱의 ‘모반’과 법상종 세력의 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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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전북사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전북사학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65호 (2022.06)바로가기
  • 페이지
    pp.33-66
  • 저자
    채민석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415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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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Seungtong Dosaeng, Wang Taeng was a Buddhist monk from the royal family of Goryeo. Charged for conspiring a ‘rebellion’ in the 7th year(1112) of King Yejong’s reign, he eventually died a tragic death. Based on more investigations, however, Dosaeng’s ‘rebellion’ may be deemed as a manipulated charge that reflected King Yejong’s certain intention rather than a rebel. Dosaeng was taught by Wangsa Hyedeok(慧德王師), Sohyeon(韶顯) who belonged to Beopsang Buddhism of the Taehyeon line(太賢系). He was granted the authority to supervise both Songnisa Temple(俗離寺) and Geumsansa Temple(金山寺), both of which represented significance to Beopsang Buddhism of the Jinpyo line(眞表系). With this authority, he tried to absorb the Jinpyo line and promoted union within the Beopsang Buddhism. However, King Yejong judged that the existing Buddhist policy of merging various religious bodies into one would be difficult to realize in the reality. Therefore, he preferred a policy to keep in check with each other, while ensuring their coexistence as a religious body. Accordingly, in Beopsang Buddhism, by supporting the Jinpyo line, he tried to check the Taehyeon line. In response, Dosaeng led a grand project to commemorate his teacher Sohyeon, thereby irritating King Yejong by revealing his intention to prioritize the Taehyeon line in Beopsang Buddhism. In this period, King Yejong abrogated the policies of King Sukjong(肅宗), his father, such as the policy to conquer the north, weakened his supporting powers, and tried to seek a political operation that deviated from King Sukjong’s by appointing the Lee clan of Inju(仁州李氏) and new intellectual groups, represented by Lee Ja-gyeom(李資謙) and Han Ahn-in(韓安仁). In this process, King Yejong, feeling burdened with the existence of groups that adhered to his father’s political operation policy, chose to remove them along with Dosaeng, who, as he felt, was an obstacle to his own Buddhist policy with the charge of ‘rebellion’. Dosaeng’s ‘rebellion’ can be evaluated as the start of the long-term stream in which the Jinpyo line, which had been on the defensive, seized the hegemony within Beopsang Buddhism by beating out the Taehyeon line.
한국어
道生僧統 王竀은 高麗 왕족 출신의 승려로, 睿宗 7년(1112)에 ‘모반’을 했다 는 죄목으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다. 하지만 도생의 ‘모반’은 여러 조건들 을 점검하였을 때, 실제 있었다고 하기보다는 예종의 어떠한 의도가 반영되 면서 조작된 사건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도생은 太賢系 法相宗에 소속된 慧德王師 韶顯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眞表 系 법상종에게 의미가 있었던 俗離寺와 金山寺를 모두 관리할 권한을 인정받 아, 그들을 흡수해 법상종을 통일하려는 작업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예종은 여러 교단들을 하나로 융합해 나가려는 기존의 불교 정책 방침이 현실에서 구현되기 어렵다고 판단해, 각 교단들의 병립을 보장하며 상호 견제하는 방 향을 선호하였다. 이에 따라 예종은 진표계 법상종을 지원해 태현계 법상종 을 견제하도록 하였다. 여기에 대해 도생은 스승 소현의 현창 사업을 크게 전개해, 태현계 법상종의 우위를 지키겠다는 태도를 드러냄으로써 예종을 자 극하였다. 이 시기 예종은 북벌 사업 등 부왕인 肅宗의 정책들을 폐기하고 그의 지지 세력들을 약화시켰으며, 李資謙과 韓安仁으로 대표되는 仁州李氏와 새로운 지식인 집단들을 기용해 숙종과는 다른 국정 운영을 모색하였다. 이 과정에 서 숙종의 국가 경영 방침을 고수하려는 집단들의 존재가 부담스러웠던 예종 은, 자신의 불교 정책에서 장애물로 인식되었던 도생과 그들을 ‘모반’ 죄로 묶어 함께 제거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도생의 ‘모반’ 사건은 법상종 내부에 서 수세에 몰렸던 진표계가 태현계를 제치고 교단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장기 적인 흐름의 첫 단추를 끼우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되겠다.

목차

Ⅰ. 머리말
Ⅱ. 道生의 행적과 ‘모반’ 사건의 의문점
Ⅲ. 道生의 ‘모반’ 사건 배경과 그 출현 과정
1. 법상종 내외 문제와 예종대 불교 정책 변화
2. 예종대 정국 변동과 불교 정책의 결합
Ⅳ. 道生의 ‘모반’ 사건 이후 법상종의 동향 
Ⅴ. 맺음말
<국문초록>

<참고 문헌>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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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채민석 [ Chae, Min-suk | 서강대학교 사학과 박사과정수료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전북사학회 [The Jeonbuk Historical Society]
  • 설립연도
    1977
  • 분야
    인문학>역사학
  • 소개
    본 학회는 "역사학의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이바지한다"는 목표하에 도내의 역사학자들을 주축으로 1976년에 창립된 이래 30년 이상의 연륜을 이어온 정통 역사학회이다. 수차례의 학술대회를 개최하였을 뿐 아니라, 학술지 '전북사학'을 30호까지 발간하면서 지역 사학 발전의 토대를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 학회는 현재 약 240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으며, 격월로 임원회의와 월례발표회를 개최하고 있다. 매 발표회에 실제로 참여하는 인원이 항상 30명이 넘는다. 대부분의 역사관련 학회가 주로 대학교수나 강사들로 구성되어 있는 데 비해 전북사학회는 대학교수, 강사는 물론 학예사, 연구원, 중등학교 역사담당교사 등 역사와 관련된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대학에서 연구한 역사학에 관한 이론을 중등학교 교육 현장에 올바로 적용하여 이론과 실제를 하나로 만들려는 것이 향후 전북사학회의 지향점이다.

간행물

  • 간행물명
    전북사학 [JEONBUK SAHAK ; The Jeonbuk Historical Journal]
  • 간기
    연3회
  • pISSN
    1229-2001
  • 수록기간
    1977~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911 DDC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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