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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의 동학과 개벽의 꿈 - 태인 유생 金箕範에서 동학접주 金開南으로
Honam’s Donghak and the yearning for a New Era : from Confucian scholar Kim Kibum to Donghak’s leader Kim Gaenam
호남의 동학과 개벽의 꿈 - 태인 유생 김기범에서 동학접주 김개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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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동학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동학학보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62호 (2022.06)바로가기
  • 페이지
    pp.195-238
  • 저자
    이선아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414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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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how Kim Gaenam, a native of the Taein’s noble family, grew up as a leader of Donghak and to explore his historical status as a religious leader and the meaning. The contents of this study are as follows. Kim Gaenam was from Dogang Kim clan, a representative family of Taein, and lived as a village school teacher in Imsil at the age of 21. According to 『Cheondogyo Imsil History』, Choi Sihyung, the second founder of Donghak, preached for 35 days in March 1873 when Kim Gaenam lived in Imsil. During this period, Kim Gaenam accepted the doctrine of Donghak through Choi Sihyung’s sermons and served as the leader of Donghak army in 1894. The people of Joseon who accepted Donghak experienced equality within the religious system of Donghak, and especially the slaves who entered Donghak experienced equality in their daily lives. This collective dream for equality, which longed for a New Era, justified their violence. Kim Gae-nam’s wish for the accomplishment of a new era was unfulfilled due to Japan’s military intervention. As the leadership of the Donghak-army collapsed, the religious system was reorganized to prevent the spread of negative perceptions of Kim Gaenam who used violence. Accordingly, Son Byung-hee, the third founder, reorganized the identity of Donghak and renamed it Cheondogyo. In the process, Donghak’s spirit of resistance to the existing order and system has weakened. Cheondogyo led the March 1st Movement in 1919 put the principles of popularization, unification, and nonviolence to the forefront. In this way, Kim Gaenam’s status as the leader of Donghak, who led the revolution and war, was weakened by the nonviolent and peaceful policy of Cheondogyo. In 1873 at the age of 21, Confucian scholar Kim Kibeom, at the age of 21, dreaming of a new era and world was executed the 41-year-old in 1894 as Donghak’s leader.
한국어
이 연구의 목적은 태인의 사족 출신 김개남이 동학접주로 성장하는 과정에 대해 검토하여 후천개벽(後天開闢)의 종교적 지도자로서 그의 역사적 위상을 확인하고 그 의미를 모색하는 데 있다. 이 연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김개남은 태인의 유력 사족 도강김씨 출신으로 유학(儒學)을 공부하였으며 21세에 임실에서 서당 훈장으로 거주하였다. 김개남의 손자 김환옥의 증언에 따르면 김개남은 임실에 거주하고 있었을 때 동학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런데 『천도교 임실교사(天道敎任實敎史)』에 의하면 김개남이 21세에 임실에 거주하던 1873년 3월에 최시형이 임실에서 35일간 설법과 포교를 하였다. 동학의 2대 교조 최시형이 임실에 머물던 시기에 김개남은 직, 간접적으로 최시형의 설법을 통해 접하였고, 동학에 입도(入道)하는 계기가 되었다. 최시형의 임실 설법을 계기로 동학을 수용한 김개남은 1889년 무렵 동학에 정식으로 입교(入敎)하였고, 이후 동학의 접주가 되어 동학군의 지도자로 활약하였다. 동학의 평등과 개벽사상은 조선의 민인(民人)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동학교단 내에서 ‘평등’을 일상적으로 경험하였다. 일상에서 평등을 경험한 그들은 후천개벽을 향한 집단적 열망을 이루기 위해서 무력을 동원하였고, 폭력을 정당화하였다. 이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동학농민혁명이 좌초된 이후, 동학교단은 후천개벽을 내세우면서 폭력을 행사한 김개남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동학 전체로 확산되는 것을 막아야 했다. 때문에 제3대 교조 손병희는 정부와 전면전을 불사한 동학의 정체성을 쇄신하며 천도교(天道敎)로 개칭하여 교단을 정비하였다. 그 과정에서 동학의 체제부정과 저항은 약화되었고, 1919년 3·1운동을 주도하며 대중화·일원화·비폭력의 원칙을 내세웠다. 이렇게 천도교의 비폭력·평화주의적 전향으로 혁명과 전쟁에 앞장선 동학의 ‘종교적’ 지도자로서 정위(定位)되지 못하였다. 1873년 21세의 태인 유생 김기범은 변혁의 시대에 후천개벽을 꿈꾸며 저항하다가 1894년 41세 동학 지도자로 순도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임실의 동학 傳道와 청웅 훈장 金箕範
1) 최시형의 임실 布德과 說法
2) 청웅 훈장 김기범의 동학 接道과 入道
3. 비결의 유행과 동학 접주 김개남
1) 유행하는 비결과 동학의 ‘訣·歌’
2) 남원의 동학군과 ‘開南’의 꿈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김개남 임실 동학 최시형 개벽 Kim Gaenam Taein Imsil Donghak Choi Sihyung Cheondogyo

저자

  • 이선아 [ Sunah Lee | 전북대학교 이재연구소 연구원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동학학회 [The Donghak Society]
  • 설립연도
    1998
  • 분야
    인문학>역사학
  • 소개
    1998년 설립된 동학학회는 동학사상에 대한 철학적, 사상적 연구를 통해 한국사상의 정체성을 정립하는데 기여하고, 나아가 세계 속의 한국사회 건설과 21세기 인류 문명의 대안적 세계관을 탐구하는데 이바지함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등재학술지 [동학학보]를 연4회 발간하고 있습니다. [학회 설립 목적] 동학에 대한 학제 간 학술연구 및 학술발표와 회원간의 학문적 교류를 목적으로 한다. 동학사상에 대한 철학적, 사상적 연구를 통하여 한국사상의 정체성을 정립하는데 학문적 기여를 한다. 아울러 동학사상의 현실화, 구체화 과정인 동학혁명에 대한 역사적, 사회과학적 연구를 통하여 자주적 민의 형성, 사회형성, 국가형성의 정신을 연구하여 세계속의 한국사회를 건설하는데 이바지한다. 본 학회는 동학연구를 통해 민족통일 이념의 정립에 기여하고, 나아가 2000년대 인류 문명의 대안적 세계관을 탐구, 제시하고 회원 사이의 이해 증진을 도모한다.

간행물

  • 간행물명
    동학학보 [The Korea Journal of Donghak Studies]
  • 간기
    계간
  • pISSN
    1598-7566
  • eISSN
    2713-3605
  • 수록기간
    2000~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151 DDC 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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