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Seunghyu’s Jewang-Ungi included Later-Goguryeo as the subject of narrative. This is a big difference from the fact Ilyeon’s Samguk-Yusa turned a blind eye to history of Later-Goguryeo. Ilyeon revealed one of the negative perceptions of Later-Goguryeo and Gungye ‘by not describing them’. Therefore, this article began with the question of whether Jewang-Ungi tried to express something ‘by describing them’. Looking at the related records of Jewang-Ungi, it was basically confirmed that Lee Seunghyu was greatly influenced by Samguk-Sagi. In particular, Jewang-Ungi was following Samguk-Sagi’s information about history of Later-Goguryeo and its perception. Except for the fact that Lee Seunghyu introduced information to the local people while touring the former territory of Later-Goguryeo, most of history of Gungye and Later-Goguryeo is not meaningfully separated from the contents of Gungye’s Biography in Samguk-Sagi. On top of that, their historical significance was no different from perception of Samguk-Sagi. In other words, Lee Seunghyu also negatively recognized Later-Goguryeo and Gungye. In fact, as long as the Goryeo Dynasty continues, it is almost impossible to expect a friendly gaze on Later-Goguryeo and Gungye. However, there is a primary point in that the formation or expression of the negative perception is not the same. As a result, it was confirmed that Lee Seunghyu ‘accepted’ Later-Goguryeo in order to show unwavering loyalty to his country by emphasizing the uniqueness of Goryeo achieved by King Taejo above. Therefore, this article suggested paying attention to the ‘double-sidedness’ in a way that expresses such hostility or negative perception of Later-Goguryeo at almost the same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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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휴의 『제왕운기』는 고려 전대의 역사를 일원적으로 정돈한 동국군왕개국연대에서 후고구려를 서술 대상으로 포함시켰다. 이는 같은 시대의 산물인 일연의 『삼국유사』가 기이편에서 후고구려사의 기술을 끝내 외면한 것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삼국유사』의 찬자 일연은 후고구려와 궁예를 ‘서술하지 않음으로써’ 이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의 일단을 드러내었다. 그러므로 『제왕운기』가 이들을 ‘서술함으로써’ 무엇인가를 표출하고자 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에서 이 글은 시작되었다. 『제왕운기』의 해당 기록들을 살펴보니, 기본적으로 이승휴는 『삼국사기』의 영향을 크게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나 『제왕운기』는 『삼국사기』가 전하는 후고구려사와 그에 대한 인식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었다. 이승휴가 옛 후고구려의 영역을 유람하면서 지역민에게 전해들은 정보를 소개한 점 정도를 제외하면, 궁예와 후고구려의 자취 대부분이 『삼국사기 궁예전의 내용으로부터 의미 있게 벗어나있지 않다. 여기에 이들의 역사적 의의를, 신생 왕조의 창업을 위해 백성들을 잘 갈무리하여 태조에게 온전히 바친 것으로 귀결한 점은 『삼국사기의 인식과 다를 바가 없었다. 즉, 이승휴 역시 후고구려와 궁예를 부정적으로 인식했던 것이다. 사실 고려 왕조가 지속되는 한 고려의 토대이지만 동시에 극복의 대상이기도 했던 후고구려와 궁예에 대한 우호적 시선의 출현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그 부정적 인식의 형성 혹은 표출 계기마저 같은 것은 아니라는 점에 일차적인 논점이 있다. 이러한 점을 생각해보기 위해, 이승휴의 생애를 짚어보았으며 특히 몽골[원] 사행을 앞뒤로 한 인식 변화에 주목해보았다. 그 결과 일연이 몽골[원]의 침략에 당해 그 적대감을 후고구려의 과거 행적에 투영해 민족사의 전체 줄기에서 후고구려를 ‘배제’했다면, 이승휴는 몽골[원]의 힘을 인정한 위에서 태조가 이룩한 고려만의 독자성을 강조하여 조국을 향한 흔들리지 않는 충절을 내보이기 위해 후고구려를 ‘수용’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음을 확인하였다. 따라서 이 글은 거의 같은 시기, 후고구려에 대해 그와 같은 적대감이나 부정적 인식을 표출하는 방식의 ‘양면성(이중성)’에 주목할 것을 제안한 것이다.
본 학회는 "역사학의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이바지한다"는 목표하에 도내의 역사학자들을 주축으로 1976년에 창립된 이래 30년 이상의 연륜을 이어온 정통 역사학회이다. 수차례의 학술대회를 개최하였을 뿐 아니라, 학술지 '전북사학'을 30호까지 발간하면서 지역 사학 발전의 토대를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 학회는 현재 약 240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으며, 격월로 임원회의와 월례발표회를 개최하고 있다. 매 발표회에 실제로 참여하는 인원이 항상 30명이 넘는다. 대부분의 역사관련 학회가 주로 대학교수나 강사들로 구성되어 있는 데 비해 전북사학회는 대학교수, 강사는 물론 학예사, 연구원, 중등학교 역사담당교사 등 역사와 관련된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대학에서 연구한 역사학에 관한 이론을 중등학교 교육 현장에 올바로 적용하여 이론과 실제를 하나로 만들려는 것이 향후 전북사학회의 지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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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사학 [JEONBUK SAHAK ; The Jeonbuk Historical Journ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