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부터 현재까지 국립국악원에서 제작한 『한국음악학자료총서』는 기존 고악보와 새로 발굴된 고악보의 영인본에 해제를 달아 간행되고 있다. 운초 장사훈 박사는 『한국음악학자료총서』의 초기 고악보 해제를 담당하였다. 그의 고악보 해제 작성 방식은 후학들의 고악보 해제 작성에 영향을 끼쳤다. 이 글에서는 운초의 고악보 해제 작성의 특징을 세 시기로 나누어 살펴보았고, 그 결과 그의 고악보 해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형식과 내용면에서 진일보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의 음악학계에서 고악보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고 그에 따른 연구 결과의 양적 축적이 질적 변화로 전환되었으며 운초가 이러한 고악보 연구 성과를 부지런히 해제에 반영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운초의 고악보 해제는 오늘날 고악보 해제 작성의 기준이 되었다. 그의 고악보 해제는 해당 고악보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작성되었기에 해제 말미에 해당 고악보의 연구 성과를 소개하고 향후 연구 과제까지 제시하였다. 운초는 기존에 발표한 고악보 해제를 새로 작성할 경우 해당 악보의 새로운 연구 결과를 기존의 해제에 수정․보완하였다. 결국 고악보 해제는 고정된 것이 아닌 고악보 연구와 함께 움직이는 것임을 운초의 고악보 해제를 통해서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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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부터 현재까지 국립국악원에서 제작한 『한국음악학자료총서』는 기존 고악보와 새로 발굴된 고악보의 영인본에 해제를 달아 간행되고 있다. 운초 장사훈 박사는 『한국음악학자료총서』의 초기 고악보 해제를 담당하였다. 그의 고악보 해제 작성 방식은 후학들의 고악보 해제 작성에 영향을 끼쳤다. 이 글에서는 운초의 고악보 해제 작성의 특징을 세 시기로 나누어 살펴보았고, 그 결과 그의 고악보 해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형식과 내용면에서 진일보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의 음악학계에서 고악보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고 그에 따른 연구 결과의 양적 축적이 질적 변화로 전환되었으며 운초가 이러한 고악보 연구 성과를 부지런히 해제에 반영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운초의 고악보 해제는 오늘날 고악보 해제 작성의 기준이 되었다. 그의 고악보 해제는 해당 고악보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작성되었기에 해제 말미에 해당 고악보의 연구 성과를 소개하고 향후 연구 과제까지 제시하였다. 운초는 기존에 발표한 고악보 해제를 새로 작성할 경우 해당 악보의 새로운 연구 결과를 기존의 해제에 수정․보완하였다. 결국 고악보 해제는 고정된 것이 아닌 고악보 연구와 함께 움직이는 것임을 운초의 고악보 해제를 통해서 확인하게 된다.
한국국악학회는 국악을 연구하여 음악학 및 민족음악의 향상에 기여할 목적으로 1948년 4월 봄에 이혜구, 장사훈, 성경린, 이주환 외 15명의 발기로 발족하여 1963년 12월 14일 사단법인체로 인가취득한 이래 1) 국악의 연구발표 2) 국악 관계자료서 수집 3) 국악에 관한 전시회 및 강연회 개최 4) 국악에 관한 출판사업 5) 국내의 학계간 교류 등의 사업을 진행해 오고 있다. 본 학회는 국악의 연구발표를 4000여회에 가까운 월례발표회를 가졌으며, 20회에 걸친 국악기 및 국악서적 전시회를 열고 3회의 신국악작곡 발표회를 가진 바 있다. 특히 학회에서는 1971년 한국음악연구 제1집을 발간한 이래 현재 제45집 출판에 이르렀으며, 30여종의 고악보 간행, 이혜구 박사 송수기념 음악학 논총, 장사훈 회갑기념 동양음악논총 등 30여권의 단행본을 출판하였다. 또한 1989년 제1회 국악학 전국대회를 열어 한국음악의 쟁점이 되는 주제를 선정하여 전국규모의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1975년 한·일간의 고려악 연구회를 발족시켜 일본의 음악학자들과의 공동연구로 심포지움을 개최하였으며, 1981년에는 국제전통음악학회(ICTM) 서울대회를 치뤄내고, 1994년에는 제1회 아시아 태평양 민족음악학회(APSE)를 서울에서, 1999년에는 제6회 아시아 태평양 민족음악학회(APSE)를 수원에서 성황리에 치뤄내는 등 외국학회와 교류에 힘써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