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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회암사지 출토 여말선초(麗末鮮初) 소조상 연구
A Study on the Buddha Clay‐statues in the Late‐Goryeo‐Early‐Joseon Period Excavated from Hoeamsa Temple Site in Yang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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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한국정토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정토학연구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36권 (2021.12)바로가기
  • 페이지
    pp.353-389
  • 저자
    이분희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406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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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The study of Korean clay‐statues in the Joseon era tends to focus on the names and stylistic aspects of the Buddha clay‐statues that were created on a large scale after the Imjin Year War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In addition, there are few examples of Buddha claystatues in the Late‐Goryeo‐Early‐Joseon period, so there is a large research gap on the Buddha clay‐statues in this period. However, clay‐statues in the late‐Goryeo‐Early‐Joseon period were excavated at the Hoeamsa temple site, which has been excavated and maintained since 1997, providing important data for analyzing the changes and aspects of Buddha clay‐statues during this period. In addition, they provide a clue to understand the temple operation and reality of Hoeamsa temple, which flourished the most during the Late‐ Goryeo‐Early‐Joseon period. The Buddha clay‐statues excavated from the Hoeamsa temple site are small and mostly presumed to be Arhat statues. Theses clay‐statues were created during the Hoeamsa temple rebuilding period, which was most prosperous in the Late‐Goryeo‐Early‐Joseon period, and it is possible to take a look at the form and production technique of claystatues during this period. Hoeamsa temple clay‐statue holds the basic shape of the statue with rough clay on the back of the neck, and is made by applying fine clay on top of it, molding it in detail, and then coloring it and baking it. Clay‐statues made with this terracotta technique are rarely made after the production of Hoeamsa temple claystatues. Looking at the Seogiryoji site, where most of the Hoeamsa temple clay‐statues were excavated, there is a high possibility that it was converted into a Buddhist altar that enshrines 500 Arhats by placing a wide Buddhist altar during the 3rd rebuilding. In particular, in the background of creating 500 Arhats statues in Hoeamsa temple, it seems to be deeply related to the three great masters leading to Jijong, Naong, and Muhak along with the fashion of 500 Arhats belief. Like the Eungjinjeon at Seokwangsa temple, clay‐statues at Hoeamsa temple might have had Buddhist altars on three sides, and several altars would have been prepared and enshrined. These statues are believed to be 500 Arhats statues created with considerable efforts on a courtsponsored basis, particularly those statues associated with Muhak.
한국어
한국의 조선시대 소조상의 연구는 임란 이후에 대형으로 조성되는 소조 불상의 존명과 양식적 측면에 집중된 경향이 있다. 또한 여말선초에 이르 는 시기에는 소조 불상의 예들이 적어, 이 시기 소조 불상에 대한 연구 공백이 크다. 그런데 1997년 이후 발굴 및 정비가 이루어진 회암사지에서 여말선초의 소조상이 발굴되어, 이 시기 소조 불상의 변화와 양상을 분석하는데 중요 한 자료가 된다. 뿐만 아니라 여말선초에 가장 융성했던 회암사의 사찰운 영과 실체를 파악하는데 단서를 제공한다. 회암사지 출토 소조 불상들은 크기가 작으며, 대부분 나한상으로 추정 되는 편들이다. 이 소조상은 여말선초 회암사 중창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이 시기 소조상의 양식 및 제작기법을 살펴볼 수 있다. 회암사 소조상은 목심 등에 거친 점토로 상의 기본형태를 잡고, 고운 점토를 위에 발라 정 교하게 성형한 후에 채색하여 구운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이러한 테라코타 기법으로 만든 소조상은 회암사 소조상의 제작시기 이후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회암사 소조상의 대부분이 출토된 서기료지를 살펴본 바, 중창시에 크 게 확장되고 내부에 넓은 불단을 두는 등 큰 변화가 있었으므로, 이때 오 백나한을 봉안하는 불전으로 바뀌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회암사에 오백 나한상을 조성한 배경에는 오백나한 신앙의 유행과 함께 지공, 나옹, 무학 으로 이어지는 삼화상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보인다. 회암사 소조상은 석왕사 응진전처럼 삼면에 불단을 두고 몇 개의 단을 마련하여 봉안하였을 것이다. 이 상들은 왕실 발원으로 상당한 공력으로 만든 오백나한상으로, 특히 무학과 연관되는 상들로 추정된다.

목차

한글요약
Ⅰ. 머리말
Ⅱ. 회암사지 소조상의 도상과 제작기법
1. 소조상의 도상
2. 제작기법
Ⅲ. 회암사지 소조상의 출토지와 봉안형태
1. 출토지 분석
2. 봉안형태
Ⅳ. 회암사지 소조상의 조성배경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회암사 소조상 오백나한 테라코타기법 서기료지 삼화상 무학대사 Hoeamsa Temple Clay‐Statue 500 Arhats Terracotta Technique Seogiryoji Site Three Great Masters Reverend Muhak

저자

  • 이분희 [ YI, Boon-hee | 불교중앙박물관 팀장.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한국정토학회 [The Korean Society of Pure Land Buddhism]
  • 설립연도
    1988
  • 분야
    인문학>불교학
  • 소개
    고타마 싯다르타가 해결하고자 노력하였던 것은 현세에 살아가는 인간의 고뇌와 고통이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의 인식이 그의 깨달음이었으며, 그 깨달음을 사회화하려는 노력이 그의 가르침이요 실천행이었다고 우리는 믿는다. 따라서 불교인에게 있어서의 궁극 목표인 열반은 탈(脫)사회의 경지가 아니며, 자주(自主), 자율(自律), 자유(自由)의 인격을 사회 속에서 실현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아울러 개인적 완성인 열반을 사회화하려는 노력이 부처님의 실천행이었고, 그 결실이 승가 사회였다. 이러한 우리의 인식은 이미 역사상 정토(淨土)사상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이는 그 행태에 있어서 기복적 신앙으로 치우침으로써 그 본의가 침체된 면이 없지 않다. 이에 우리는 자주, 자율, 자유라는 인류의 이상적 인격을 완성해 가듯이 자유, 평등의 사회를 구현해 가는 것이 정토를 이루는 길임을 재인식하고,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 연구와 능동적 실천을 위해 "한국정토학회"를 결성하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 개개인의 불교적 인격완성이 저절로 정토를 이루게 할 것이라는 안이함을 경계하며, 부처님의 이타적 노력을 교훈 삼아, 사회의 제반 문제를 불교적 입지에서 해결하는데 일익을 도모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따라서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윤리, 예술, 사회 등의 제반 분야도 당연히 우리의 관심 영역이 된다. 결국 우리의 취지는 불교 교학의 이론적 토대 위에서 정토 실현의 현실적 실천방도를 모색하자는 것이며, 당시대에 요구되는 불교의 실천성을 회복함으로써 불교가 정신적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할 대안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즉 우리는 모든 학문의 활동을 정토에로 승화시켜서 인류 이상(理想)의 구현에 이바지 하고자 함이니, 이것이 우리의 염원이다.

간행물

  • 간행물명
    정토학연구 [Journal of the Pure Land Buddhism]
  • 간기
    반년간
  • pISSN
    1229-1846
  • 수록기간
    1998~2025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220 DDC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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