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is paper, I revealed the origin of (Cheontae)Beopsajong, which existed in the Goryo and early Joseon Period, and the purpose of its sect. At that time, there were various sects in the Buddhist community. However, they were grouped into several sects, and the problem was revealed when the names were re-separated. The problems are 'Cheontae, Soja, and Beopsajong' recorded in the Annals of Taejongsillok(1406). I diagnosed the problem with this. And I summarize this in three ways. First, Yi Neung-hwa described in JoseonBulgyoTongSa as two denominations: the CheontaeSojajong and the Beopsajong. Accordingly, Kwon Sang-ro and Kim Young-soo, who were active in Japanese colonial era, followed the distinction of Lee. Second, Professor Huh Heung-sik criticized Lee's claim as reasoning. Huh's argument was that there were three sects, not two. Therefore, there are two arguments so far. Third, in this paper, I describe the ambiguity of the word 'soja(疏字)' and the generality contained in the meaning of 'Beopsa(法事)'. I pointed out that the names of the two words are incomplete to be established as sects. In addition, no records of trends in CheontaeSojajong or Beopsajong were found at the time, but I analyzed purpose(宗旨 embedded in the names of these two sects in this paper. Aanalyzed 'Cheontae-Beopsajong' first. They recognized the origin of this sect as the activities of Master Yose(了世) during the Goryo Dynasty. Yose was greatly influenced by Zhili(知禮), who was active in the early Song Dynasty of China. Zhili is a person who actively embraced Pureland ideas from the perspective of Tientai-sect. Next, they analyzed 'Beopsajong'. This sect was regarded as close to Pureland doctrine and practice. Therefore, the scriptural meanings and the rationale behind the term 'Beopsa' were considered. I prepared a new standard for distinguishing 'Soja' and 'Beopsa'. I presented different research results from previous scholars. I recognized the reference point as the creation of BounUitong(義通, 927-988, The 16th Great Master of the Tientai Order)'s Cheontaejeongtogyo. Prior to Uitong, ‘Observe Dharma’ and ‘Observe Mind’ were mainly the method of disciplining in the Tientai Order. However, after Uitong, an easy disciplining method called 'Observe Pureland' was actively adopted. 100 years later, the Tientai Order of the Song(宋) Dynasty developed greatly, and Uicheon(義天) Master of Goryo visited there. And I noted that Uicheon Master founded the Cheontae Order in Gor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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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조선 초기까지 존재했던 불교 종파들 가운데 ‘(천태)법사종’ 에 대한 그 종파적 성격 즉 종지(宗旨)에 대한 연구이다. 이를 논구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의 문제점들이 드러났다. 그것은 「태종실록」(1406)에 기 술한 ‘천태소자법사종(天台疏字法事宗)’의 종파 구분이다. 그 구분이란 종 파의 숫자가 2개인가 혹은 3개인가 이다. 이에 대한 선학들의 구분을 요 약한다. 이능화는 『조선불교통사』에서 천태소자종과 천태법사종의 2개 종파로 표기하였다. 이를 대부분의 후학들이 인용하고 있으나, 천태종, 소자종, 법 사종의 3개 종파로 구분하는 경우도 있어 두 갈래의 주장이 존재한다. 본 논문에서는 ‘소자’ 용어가 갖는 모호성과 ‘법사’가 갖는 일반성에서 종파를 설립하기에 불완전하다는 명칭이다. 현재까지 (천태)소자종이나 (천 태)법사종의 근거나 동향에 대한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법사종’ 은 조선 초기까지 분명히 존재했다고 보며, 이능화가 가설한 ‘천태법사종’ 도 함께 고찰하였다. 선학들은 천태법사종의 태동을 고려 원묘요세의 활동으로 보았다. 요세 는 송초 사명지례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지례는 천태정토교를 창시한 의 통의 제자이다. 지례와 준식의 법손들 역시 천태교관과 정토행도를 병행했 다. 이것이 천태법사종 혹은 법사종이 존재한 배경이다. 따라서 선학들의 연구 성과에 이어 필자는 ‘소자’와 ‘법사’에 대한 새로운 구분 기준을 제 시하였다. 이에 ‘법사’ 용어에 내재한 경증은 물론 정토교의 행도, 선종의 수증의, 천태종의 예참에 적용되거나 활용된 근거들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목차
한글요약 Ⅰ. 머리말 Ⅱ. '天台䟽字法事宗'의 종명 구분과 그 문제점 Ⅲ. '천태법사종'의 종지와 그 연원 탐구 1. 고려 중기의 원묘요세 종조설 2. 보운의통의 천태정토교 창시에 따른 종주설 제기 Ⅳ. '법사종'의 종명에 내재된 종지 1. 정의적 의미의 法事 2. 행도의 의미로서 法事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고타마 싯다르타가 해결하고자 노력하였던 것은 현세에 살아가는 인간의 고뇌와 고통이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의 인식이 그의 깨달음이었으며, 그 깨달음을 사회화하려는 노력이 그의 가르침이요 실천행이었다고 우리는 믿는다.
따라서 불교인에게 있어서의 궁극 목표인 열반은 탈(脫)사회의 경지가 아니며, 자주(自主), 자율(自律), 자유(自由)의 인격을 사회 속에서 실현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아울러 개인적 완성인 열반을 사회화하려는 노력이 부처님의 실천행이었고, 그 결실이 승가 사회였다.
이러한 우리의 인식은 이미 역사상 정토(淨土)사상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이는 그 행태에 있어서 기복적 신앙으로 치우침으로써 그 본의가 침체된 면이 없지 않다. 이에 우리는 자주, 자율, 자유라는 인류의 이상적 인격을 완성해 가듯이 자유, 평등의 사회를 구현해 가는 것이 정토를 이루는 길임을 재인식하고,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 연구와 능동적 실천을 위해 "한국정토학회"를 결성하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 개개인의 불교적 인격완성이 저절로 정토를 이루게 할 것이라는 안이함을 경계하며, 부처님의 이타적 노력을 교훈 삼아, 사회의 제반 문제를 불교적 입지에서 해결하는데 일익을 도모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따라서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윤리, 예술, 사회 등의 제반 분야도 당연히 우리의 관심 영역이 된다.
결국 우리의 취지는 불교 교학의 이론적 토대 위에서 정토 실현의 현실적 실천방도를 모색하자는 것이며, 당시대에 요구되는 불교의 실천성을 회복함으로써 불교가 정신적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할 대안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즉 우리는 모든 학문의 활동을 정토에로 승화시켜서 인류 이상(理想)의 구현에 이바지 하고자 함이니, 이것이 우리의 염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