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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조제암의 역사 복원 시고
A Study on the Historical Restoration of Goseong Jojeam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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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한국정토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정토학연구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36권 (2021.12)바로가기
  • 페이지
    pp.9-40
  • 저자
    황인규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406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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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This paper is a study to restore the history of Goseong Jojeam Temple Hermitage, which was located within the Civilian Control Line. Jojeam Temple Hermitage was located in the civilian control line area after the division of Geonbongsa Temple, the headquarters, and the north-south division, so it was not very knowing. Geonbongsa Temple, the headquarters, is a large temple at the headquarters of Japanese colonial era 31, and was restored in modern times along with the enshrinement of Jinsinsari Temple in Monk Samyeong-Yujeong, but Jojeam Temple Hermitage did not receive much attention. As for the history of Jojeam Temple Hermitage, it can be said that Japanese colonial era Manhae Han Yong-woon and Daeryeon-Deokmun compiled Geonbongsaji and organized a brief history. It is difficult to trust at this time because the history of crude cancer organized by it is very later data. Therefore, this paper attempted to prove the history of Jojeam Temple's modern history through records of Geumgangsan Mountain and Gwandong area related to Monk Jinpyo, Monk Naong, and King Sejo. After the late Joseon Dynasty, the history of Jojeam Temple Hermitage can be seen briefly by the Eupji(Geography), Buddhist geography, and the reconstruction period of Honwonjip(collection of literary works), and in particular, it can be seen that Monk Geukam-Saseong and disciples of Monk Cheong-Heo were present at Jojeam Temple Hermitage. There are only a few other cases, but the records related to the literature and collection of citron provide a glimpse of Jojoam Temple's situation at the time. Modern Japanese occupation, the Governor-General in the official gazette Jojeam Temple not of the relevant records to a note of the Jojeam Temple a prelate who can know their information. According to the temple decree, the chief monk of the headquarters served as the chief monk.
한국어
본고는 민통선 내에 위치하였던 고성 조제암의 역사를 복원하고자 한 연구이다. 조제암은 본사인 건봉사와 남북 분단 이후 민통선 지대에 위치 하여 관심을 별로 갖지 못하였다. 본사인 건봉사는 일제강점기 31본산의 큰 사찰로 사명 유정의 진신사리 봉안과 더불어 현대에 들어와 주목을 받 아 복원되었으나 조제암은 그리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조제암의 역사는 일제강점기 만해 한용운과 건봉사 주지 대련 덕문이 『건봉사지』를 편찬하면서 간략한 연혁이 정리되었다. 그 가운데 진표와 나 옹, 세조 관련 금강산과 관동 일대의 제기록을 통해 조제암의 근세이전의 역사를 입증하고자 하였지만 사실로 인정될 개연성이 높다. 조선후기 이후 조제암의 역사는 제 읍지류와 불교 지리지류, 그리고 『혼원집』의 중건기에 의해 간략하나마 대략적인 역사를 조망할 수 있으며, 특히 청허 휴정의 문 손인 극암 사성과 문도(문손)들이 조제암에 주석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 다. 그 외에 몇 건에 지나지 않지만 유자들의 문집류에 단편적인 관련 기 록들로 조제암의 당시 일면 사세를 엿볼 수 있다. 근대인 일제 강점기 사 찰령하에 총독부 관보에 조제암의 주지 인가 관련 기록으로 조제암의 주 지를 맡은 고승들의 정보를 알 수 있다. 사찰령에 의하면 본사의 주지가 조제암의 주지를 겸무하였으며, 건봉사 주지로 인가 받은 후 조제암 주지 가 선정되었던 듯하다. 총독부 관보에 조제암의 전각 규모와 토지 및 임야 의 정보가 기록되어 있어서 당시 조제암의 간략한 사세를 엿볼 수 있다. 조제암은 해방 후 건재하다가 6.25전쟁으로 폐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제암의 역사가 복원되고 금강산 길이 열리어 강원남북도와 남북한이 하 나가 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목차

한글요약
Ⅰ. 들어가는 말
Ⅱ. 근세이전 조제암의 전승 기록 검토
1. 진표의 觀音庵 창건과 금강산 鉢淵藪
2. 나옹의 금강산 불교와 海日庵 중수
3. 세조의 오대산 불교와 금강산 조제암
Ⅲ. 조선후기 조제암 관련 기록과 고승
1. 조선후기 읍지와 문집에 보이는 조제암
2. 조선말기 克庵 師誠의 문도와 大信의 중수
Ⅳ. 근·현대 건봉사 주지와 말사 조제암
1. 일제강점기 건봉사 주지와 조제암
2. 해방후 6.25전쟁과 조제암 폐사
V. 나가는 말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조제암 건봉사 진표 나옹 세조 혼원 Jojeam Temple Keonbongsa Temple Monk Jinpyo Monk Naong King Sejo Monk Honwon

저자

  • 황인규 [ Hwang, In-gyu | 동국대학교(서울캠퍼스) 역사교육과 교수.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한국정토학회 [The Korean Society of Pure Land Buddhism]
  • 설립연도
    1988
  • 분야
    인문학>불교학
  • 소개
    고타마 싯다르타가 해결하고자 노력하였던 것은 현세에 살아가는 인간의 고뇌와 고통이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의 인식이 그의 깨달음이었으며, 그 깨달음을 사회화하려는 노력이 그의 가르침이요 실천행이었다고 우리는 믿는다. 따라서 불교인에게 있어서의 궁극 목표인 열반은 탈(脫)사회의 경지가 아니며, 자주(自主), 자율(自律), 자유(自由)의 인격을 사회 속에서 실현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아울러 개인적 완성인 열반을 사회화하려는 노력이 부처님의 실천행이었고, 그 결실이 승가 사회였다. 이러한 우리의 인식은 이미 역사상 정토(淨土)사상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이는 그 행태에 있어서 기복적 신앙으로 치우침으로써 그 본의가 침체된 면이 없지 않다. 이에 우리는 자주, 자율, 자유라는 인류의 이상적 인격을 완성해 가듯이 자유, 평등의 사회를 구현해 가는 것이 정토를 이루는 길임을 재인식하고,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 연구와 능동적 실천을 위해 "한국정토학회"를 결성하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 개개인의 불교적 인격완성이 저절로 정토를 이루게 할 것이라는 안이함을 경계하며, 부처님의 이타적 노력을 교훈 삼아, 사회의 제반 문제를 불교적 입지에서 해결하는데 일익을 도모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따라서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윤리, 예술, 사회 등의 제반 분야도 당연히 우리의 관심 영역이 된다. 결국 우리의 취지는 불교 교학의 이론적 토대 위에서 정토 실현의 현실적 실천방도를 모색하자는 것이며, 당시대에 요구되는 불교의 실천성을 회복함으로써 불교가 정신적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할 대안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즉 우리는 모든 학문의 활동을 정토에로 승화시켜서 인류 이상(理想)의 구현에 이바지 하고자 함이니, 이것이 우리의 염원이다.

간행물

  • 간행물명
    정토학연구 [Journal of the Pure Land Buddhism]
  • 간기
    반년간
  • pISSN
    1229-1846
  • 수록기간
    1998~2025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220 DDC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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