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중ㆍ일 천수다라니의 송주신행에 관한 연구
A research on the Recitation and Religious practice by the Cheonsudharani which mantra of Guan Yin Bodhisattva in KoreaㆍChinaㆍJapan
This study was conducted from 2005 to the present through field research on Korean, Chinese, and Japanese ritual tunes. Looking at the mantras of Korea, China, and Japan, it could be seen that China has two versions of the Siddham, in Sanskrit and Chinese. However, Korea and Japan have three versions in addition to their own languages In Korea, “a mantra is to be recited without knowing its meaning.” The principle of the original Sanskrit sentence is sung in a form that has been destroyed. The names Dàbēi zhòu(大悲呪) in China, and Daihisin tarani(大悲心呪) in Japan compress the contents of the Cheonsu-dharani. But in Korea only the modifier, ‘Shinmyojanggu(神妙章句)’, is referred to. In Korea, the Cheonsudharani was mainly worshiped during the Cheonsu-sutra, so I will refer to it as the Cheonsu, which means the bodhisattva with a thousand hands-dharani. A survey of the Religious Practices of Korea, China, and Japan revealed that China and Taiwan preached by distributing various scriptures and various dharani evenly throughout the year without bias toward particular sects. On the other hand, in Korea the proportion of Hwaeomgyeong(華嚴經) was a little larger, whilst the practice and faith of Cheonsu-dharani was dominant. Japan differs according to sect. A notable phenomenon was that the Cheonsudharani was introduced into Buddhism by the Esoteric Buddhist monks, but Cheonsu-dharani was not used very much in Japanese Esoteric Buddhism. I think this is due to the fact that Cheonsudharani was more connected with the popular piety of the private sector than with the methods of Esoteric ritual. On the other hand, among the various sects in Japan, the Rinzaishū(臨 濟宗) and Sōdōshū(曹洞宗), which belong to the Zen sect, used the Cheonsu-dharani in like fashion to Korea. I believe the reason that Cheonsu dharani was used as the main dharani Mantra in Zen Buddhism was that breaking through the Esoteric method caused negative phenomena such as Shamanistic magic. Following this, it changed to the Zen sect, which focuses on practicing and studying the scriptures. Just the Cheonsu-dharani remained for people as an expression of Esoteric practice or popular piety.
한국어
2005년-2019년까지 한․중․일 불교의례와 주․진언․다라니 암송율조를 조사 해 보니 중국은 범문과 국어(한문)의 두 가지 버전이지만 한국과 일본은 범문, 한문 그리고 자국 언어까지 세 가지 버전이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일본은 어디서 어떤 시기에 배웠는가에 따라 미세한 발음의 차이가 있지 만 범문과 音寫 한문을 병기하고 있어 원문에 대한 추정이 가능하다. 이 에 비해 한국에서는 “진언은 뜻을 모른 체 암송하는 것”으로 하여 범문의 원리와 내용에 대한 이해가 희박하였다. 중국의 대비주, 일본의 대비심주 라는 명칭은 다라니의 내용을 압축하고 있으나 한국은 ‘신묘장구’라는 수 식어만 지칭되고 있어 본고에서는 이를 ‘천수다라니’라 하였다. 이는 천 수경이라는 틀을 갖추어 송주하는 한국 신행의 특징을 살리면서 다라니 내용을 나타낼 수 있다. 한ㆍ중ㆍ일 삼국의 經學과 다라니신행을 조사해 보니, 중국과 대만은 특정 신행에 치우침 없이 여러 경전과 다양한 다라니를 연중 일정에 고르게 분 배하여 설행하고 있었다. 이에 비해 한국에는 화엄경에 대한 비중이 좀 더 큰 가운데 범문 신행은 천수다라니가 압도적이다. 일본은 종파불교의 성격 으로 각기 중점을 두는 신행의 차이가 있으나 주류 종파인 천태종과 진언 종의 밀교적 신행이 강한 가운데 법화경 신앙이 좀더 확산되어 있었다. 이 러한 가운데 주목되는 현상은 천수다라니가 密僧에 의해 불교로 유입되었 으나 정작 일본의 密宗에서는 천수다라니가 그다지 송주되지 않고 있었다. 이는 천수다라니가 密義작법 보다 민간의 대중적 기복신행과 연결되기 때 문이다. 반면 일본의 여러 종파 중 禪宗에 속하는 임제종과 조동종에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천수다라니 신행이 왕성하였다. 천수다라니가 선종에서 주된 신행으로 송주되는 것은 禪과 敎를 추구하며 주밀행법을 타파한 후 밀교적 성격이 그다지 없는 천수다라니 하나만을 남겨 呪密신행을 포용해 온 결과로 보인다.
목차
한글요약 Ⅰ. 머리말 Ⅱ. 천수다라니의 전승 배경 1. 천수다라니의 명칭 2. 천수다라니의 發源과 정착 3. 다라니의 한문 음사와 송주 Ⅲ. 천수다라니의 표기와 송주 율조 1. 한ㆍ중ㆍ일 천수다라니의 표기 2. 천수다라니의 송주 율조 Ⅳ. 한ㆍ중ㆍ일 천수다라니의 신행 실태 1. 한국 2. 중국 3. 일본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고타마 싯다르타가 해결하고자 노력하였던 것은 현세에 살아가는 인간의 고뇌와 고통이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의 인식이 그의 깨달음이었으며, 그 깨달음을 사회화하려는 노력이 그의 가르침이요 실천행이었다고 우리는 믿는다.
따라서 불교인에게 있어서의 궁극 목표인 열반은 탈(脫)사회의 경지가 아니며, 자주(自主), 자율(自律), 자유(自由)의 인격을 사회 속에서 실현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아울러 개인적 완성인 열반을 사회화하려는 노력이 부처님의 실천행이었고, 그 결실이 승가 사회였다.
이러한 우리의 인식은 이미 역사상 정토(淨土)사상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이는 그 행태에 있어서 기복적 신앙으로 치우침으로써 그 본의가 침체된 면이 없지 않다. 이에 우리는 자주, 자율, 자유라는 인류의 이상적 인격을 완성해 가듯이 자유, 평등의 사회를 구현해 가는 것이 정토를 이루는 길임을 재인식하고,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 연구와 능동적 실천을 위해 "한국정토학회"를 결성하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 개개인의 불교적 인격완성이 저절로 정토를 이루게 할 것이라는 안이함을 경계하며, 부처님의 이타적 노력을 교훈 삼아, 사회의 제반 문제를 불교적 입지에서 해결하는데 일익을 도모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따라서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윤리, 예술, 사회 등의 제반 분야도 당연히 우리의 관심 영역이 된다.
결국 우리의 취지는 불교 교학의 이론적 토대 위에서 정토 실현의 현실적 실천방도를 모색하자는 것이며, 당시대에 요구되는 불교의 실천성을 회복함으로써 불교가 정신적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할 대안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즉 우리는 모든 학문의 활동을 정토에로 승화시켜서 인류 이상(理想)의 구현에 이바지 하고자 함이니, 이것이 우리의 염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