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a hobby for research in history to find out the introdustion and the transition process of Manho System in the late Goryeo(高麗). Manhoboo introduce to the defence against Japanese invaders. However, Yuan mean to domination of military power in Goryeo. It is dominated by the military to Manhoboo System. So naturally the royal power was weakened, and the power of the influential families was strengthened. By the late 14th century, Goryeo was in the reign of King Kongmin. At first, he tried to abolish the Manho system under the policy of anti-mongolism, but It failed due to opposition from the influential families and invaded by a foreign force. As King Kongmin was murdered suddenly of September, 1374, King Woo (禑王) rised to the throne with the support of Lee In-Im, and this developed the situation of Lee In-Im’s dominating political power. Then, Military system were also changes accordingly. However after Wihwado Retreat, Yi Seong-gye come into power. He wanted to dominate the military power. For that reason, Wonsuboo system was evanesced, and Manhoboo system also disappear toge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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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차 일본원정이 끝난 뒤, 3차 일본원정 준비와 일본의 반격을 방어하기 위하여 개경을 포함한 다섯 지역에 만호부가 설치되었다. 하지만 일본원정이 무산된 뒤에도 만호부는 여전히 남아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였다. 만호부의 장인 만호는 정동행성의 승상인 고려국왕이 적합한 인물을 원에 추천하여 승 인을 받으면 임명하는 방식으로 선출되었다. 하지만 고려국왕의 추천 없이 원의 황제가 원하는 인물을 만호로 임명하는 일이 잦았고, 거듭되는 원의 견 제로 인하여 고려국왕의 보거권도 힘을 잃었다. 만호는 대부분 재추 중에서 선출되었고, 친원성향을 가진 인물이었다. 이들 은 강력한 군사권을 바탕으로 백성을 부역에 동원하거나 토지를 침탈해 농장 을 늘렸고, 왕의 허가 없이 군대를 동원하는 등 그 폐단이 컸다. 이 때문에 군의 허소화는 더욱 심각해졌다. 이를 타개하고자 공민왕은 즉위 5년, 정동행성이문소를 폐지하고 인사권을 손에 넣은 뒤 군사제도를 개혁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기득권의 반발과 홍건 적・왜구의 침입 때문에 뜻대로 개혁을 행할 수 없었고, 이에 대한 여러 타개 책을 내놓는데 그 중 하나가 익군이며 무사히 정착하여 고려 말 서북면 방어 의 중심이 된다. 우왕대에는 공민왕대 임시직이었던 원수(元帥)가 상설직으로 바뀌면서 고 려 군제도 크게 변화한다. 원수는 지휘권과 군관을 임명할 수 있는 인사권, 병사를 징발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고 이를 이용해 정권을 장악한다. 하지만 위화도 회군 이후 이성계가 팔도의 통수권을 완벽히 장악하자 원수제도 급격 히 약화되고, 만호도 폐지되었다.
목차
Ⅰ. 머리말 II. 원 간섭기 고려 만호제 III. 공민왕 이후의 군사제도와 만호 IV. 맺음말 <국문초록> <참고 문헌>
키워드
군사 제도만호익군공민왕원수GoryeoManhomilitary powerKing Kongmin
본 학회는 "역사학의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이바지한다"는 목표하에 도내의 역사학자들을 주축으로 1976년에 창립된 이래 30년 이상의 연륜을 이어온 정통 역사학회이다. 수차례의 학술대회를 개최하였을 뿐 아니라, 학술지 '전북사학'을 30호까지 발간하면서 지역 사학 발전의 토대를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 학회는 현재 약 240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으며, 격월로 임원회의와 월례발표회를 개최하고 있다. 매 발표회에 실제로 참여하는 인원이 항상 30명이 넘는다. 대부분의 역사관련 학회가 주로 대학교수나 강사들로 구성되어 있는 데 비해 전북사학회는 대학교수, 강사는 물론 학예사, 연구원, 중등학교 역사담당교사 등 역사와 관련된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대학에서 연구한 역사학에 관한 이론을 중등학교 교육 현장에 올바로 적용하여 이론과 실제를 하나로 만들려는 것이 향후 전북사학회의 지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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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사학 [JEONBUK SAHAK ; The Jeonbuk Historical Journ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