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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대의 교육적 기초와 지방 교육의 흔적
The basics of education and traces of local education in the ancient period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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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전북사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전북사학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61호 (2021.03)바로가기
  • 페이지
    pp.5-31
  • 저자
    김병남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392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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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Seodang(書堂), a traditional and popular basic educational institution, is the origin of Korean education. However, the expression seodang first appeared in the early Joseon Dynasty. Therefore, it is still questionable whether Seodang appeared before the Joseon Dynasty, but records showing the possibility in terms of local education appear in ancient period. First of all, the 『Nono(論語)』 Wooden tablets discovered during the Nakrang period proved that the Confucian scriptures were spread to the ancient Korean peninsula, so that the function of a school can be assumed. Later, in the Three Kingdoms period, Taehak(太學) was established in the period of King Sosurim in Goguryeo, and the existence of Gyeongdang indicates that local educational institutions are also at a considerable level. In the early 5th century, Baekje sent 『Nono』 and 『Cheonjamun(千字 文)』 to Japan. From this, it is presumed that Baekje used 『Cheonjamun』 as materials for children's education. In addition, it is presumed that a certain level of education was carried out in Baekje provinces through the 『Nono』 Wooden tablets and other written materials excavated from the site of Ssangbuk-ri in Buyeo. Meanwhile, five brushes were excavated in Dahori, Changwon, the Gaya area. This means that the use of letters in the southern part of the Korean Peninsula was expanded in the first century BC. Silla also gradually spread the use of Texts. A 『Nono』 Wooden tablets was found in Bonghwang-dong, Gimhae and Gyeyangsanseong Fortress in Incheon. This is evidence that educational learning materials are represented by 『Nono』 have spread widely even in Local areas. In addition, it can be inferred that local education continued until the end of Silla through the expression Hakwon(學院) in Yongdusacheoldanggi in Cheongju.
한국어
전통적이고 대중적인 기초 교육 기관인 서당은 한국 교육의 발원지이다. 그러나 기록상 서당이라는 표현은 조선 초기에 처음 등장한다. 따라서 조선 시대 이전에 서당이 출현하는 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지방 교육이라는 관점 에서 가능성을 보여주는 기록들이 고대에도 나타난다. 우선 낙랑 시기에 발견된 『논어』 죽간은 고대 한반도 지역에도 유가 경전이 전파되었음을 입증하여 학교 기능을 상정할 수 있게 한다. 이후 삼국시대에 들어서 고구려는 소수림왕 때에 太學이 설립되었고, 또 경당이란 존재로 미루어 보아 지방 교육 기관도 상당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백제도 5세기 초에 『논어』와 『천자문』을 일본에 보냈다. 이로 보아 백제는 『천자문』을 아동교육용 자료로 활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부여 쌍북리 유적에서 출토된 『논어』 목간과 기타 문자 자료를 통해 백제는 지방에서도 일정 수준의 교육이 수행되었다고 추정된다. 한편, 가야 지역이었던 창원 다호리 제1호분에서는 5자루의 붓이 발굴되었다. 이는 서기전 1세기 때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 문자 사용이 확대되었음을 뜻한다. 신라 또한 문자 사용이 점차 확산되었고, 김해 봉황동 유적과 인천의 계양 산성에서 『논어』 목간이 발견되었다. 이것은 지방에서도 『논어』로 대변되는 교육용 학습 교재가 광범위하게 퍼졌다는 증거이다. 아울러 청주 용두사의 ‘용두사철당기’에서 나오는 ‘학원’이라는 표현을 통해 신라 말기까지 지방 교 육이 지속되었을 가능성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고대의 문자 생활과 교육적 기초
Ⅲ. 고구려의 중앙과 지방 교육
Ⅳ. 백제의 대외 교류와 지방 교육
Ⅴ. 신라⋅가야의 문자 생활과 교육 상황
Ⅵ. 맺음말
<국문초록>

<참고 문헌>

키워드

서당 태학 경당 목간 논어 천자문 Seodang Taehak Gyeongdang Wooden tablets Nono Cheonjamun

저자

  • 김병남 [ Kim, Byung-Nam | 전북대학교 사학과 조교수, 문화융복합아카이빙연구소 연구원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전북사학회 [The Jeonbuk Historical Society]
  • 설립연도
    1977
  • 분야
    인문학>역사학
  • 소개
    본 학회는 "역사학의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이바지한다"는 목표하에 도내의 역사학자들을 주축으로 1976년에 창립된 이래 30년 이상의 연륜을 이어온 정통 역사학회이다. 수차례의 학술대회를 개최하였을 뿐 아니라, 학술지 '전북사학'을 30호까지 발간하면서 지역 사학 발전의 토대를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 학회는 현재 약 240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으며, 격월로 임원회의와 월례발표회를 개최하고 있다. 매 발표회에 실제로 참여하는 인원이 항상 30명이 넘는다. 대부분의 역사관련 학회가 주로 대학교수나 강사들로 구성되어 있는 데 비해 전북사학회는 대학교수, 강사는 물론 학예사, 연구원, 중등학교 역사담당교사 등 역사와 관련된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대학에서 연구한 역사학에 관한 이론을 중등학교 교육 현장에 올바로 적용하여 이론과 실제를 하나로 만들려는 것이 향후 전북사학회의 지향점이다.

간행물

  • 간행물명
    전북사학 [JEONBUK SAHAK ; The Jeonbuk Historical Journal]
  • 간기
    연3회
  • pISSN
    1229-2001
  • 수록기간
    1977~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911 DDC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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