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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혁명과 『개벽』지의 탄생
The March 1 Revolution and the Birth of Gaebye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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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동학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동학학보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58호 (2021.03)바로가기
  • 페이지
    pp.7-41
  • 저자
    임형진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39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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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After the defeat of the Donghak Revolution, Uiam Son Byung-hee, who was the last leader of the revolution, changed Donghak to Chondokyo and led the national movement from the 1900s. He carried out reforms to raise public awareness through media, education, and publishing movements. It was believed that only people with high citizenship could create modernization. However, during the cultural movement, national rights were lost. So Son Byeong-hee decided to achieve independence within 10 years and started preparing. This preparation had to be pursued more secretly and more carefully, With the construction of the Bonghwanggak in Ui-dong in 1912, his preparations became more concrete. From 1913, 483 Chondokyo workers from all over the country were called in order to conduct special training. The excuse was training, but the content was in the education of talented people for the independence movement. With the end of World War II in 1918, the international situation faced a new phase. Cheondogyo has become the largest religion on the Korean Peninsula. Cheondokyo had enough personnel, organizations, and funds to counter the Japanese imperialism, but they could not repeat the failure of the Donghak Revolution in which only them participated. For him, the 3.1 Revolution had to be the second Donghak Revolution. So he reached out to all parties and all political parties. He appealed to join the national movement. Finally, when Protestantism and Buddhism joined in, the demonstration for national independence as a united character of the religious world could begin. However, due to the failure of the 3.1 Revolution, a long-term movement had to be entered. That was the national cultural movement, and it was Gaebyeok magazine that was created as a part of it. The “Gaebyeok” magazine, which began to be published on June 25, 1920 at the same time as the establishment of the Gaebyeok Company, is highly regarded as the first modern comprehensive magazine that made a significant contribution in the history of the Korean newspaper movement. The history of “Gaebyeok” was the history of the Korean people in itself, and the wounds received by the Japanese imperialism by “Gaebyeok” were to represent the national tragedy. Whenever published, Gaebyeok promoted Innaecheon ideology, and published articles on humanism, liberalism, and socialist new trends, becoming a leader in the ideological world as well as the national cultural movement at that time.
한국어
동학혁명이 좌절된 후 혁명의 최후 지도자였던 의암 손병희는 동학을 천도교로 변경하고 1900년대부터의 민족운동을 주도해 나갔다. 그는 언론과 교육, 출판 운동 등으로 민도를 높이는 개혁을 전개하였다. 높은 민도를 가진 백성만이 개화와 근대화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민도를 높이는 문화운동을 하는 도중에 나라는 송두리째 일본의 손아귀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이에 손병희는 내 반드시 10년 내에 독립을 이루리라 결심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이 준비는 더욱 비밀리에 추진되어야 했고 더욱 주도면밀하여야 했다, 1912년 우이동에 봉황각을 지으면서 그의 준비는 더욱 구체화 되었다. 1913년부터는 전국의 천도교 교역자 483명을 차례로 불러 특별 연성수련을 실시했다. 구실은 수련이었지만 내용은 독립운동을 위한 인재양성에 있었다. 1918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국제정세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 천도교는 한반도에서 최대 종단이 되었다. 그들은 일제의 압제에 대항할 충분한 인원과 조직 그리고 자금을 가지고 있었지만 동학도들만이 참여했던 동학혁명의 실패를 누구보다도 절감했던 손병희는 3.1운동을 단독으로 할 수는 없었다. 그에게 3.1혁명은 제2의 동학혁명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모든 종단과 정관계 모두에게 연락을 하였다. 민족운동에 동참을 호소한 것이다. 마침내 개신교와 불교계가 동참하니 비로소 종교계의 연합적 성격으로서의 독립만세 시위는 전개될 수 있었다. 그러나 3.1혁명의 좌절로 2번째 패퇴한 동학 천도교단은 이제 장기적인 운동에 들어가야 했다. 이른바 민족문화운동이 그것이었고 그 일환으로 만들어진 것이 『개벽』지였다. 개벽사의 설립과 동시에 1920년 6월 25일부터 발행하기 시작한 『개벽』지는 우리나라 신문화운동사상 지대한 공헌을 남긴 최초의 근대적 종합잡지로 높이 평가되고 있거니와, 『개벽』지의 역정은 그 자체가 한민족의 역사였고, 『개벽』지가 일제에 의해서 받은 상처는 그대로 민족수난사를 대변해주는 것이었다. 『개벽』지는 천도교와 천도교청년당의 기관지적 성격을 가지고 매 호마다 인내천사상을 선전하는 한편, 휴머니즘과 자유주의 그리고 사회주의적 새사조를 풍기는 글을 실어 당시 민족문화운동 뿐 아니라 사상계의 선도자가 되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시작하는 글
Ⅱ. 동학 천도교의 개벽사상
Ⅲ. 천도교단과 3.1민주혁명
Ⅳ. 『개벽』지의 탄생
1. 3.1혁명과 개벽사의 설립
2. 개벽사 조직의 구축
3. 『개벽』 창간 초기의 수난과 역정
Ⅴ. 맺는 글 - 3.1혁명과 『개벽』의 미래적 가치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3.1혁명 『개벽』지 손병희 봉황각 민족문화운동 3.1 Revolution “Gaebyeok” magazine Son Byeong-hee Bonghwanggak national cultural movement

저자

  • 임형진 [ Hyungjin Rim |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동학학회 [The Donghak Society]
  • 설립연도
    1998
  • 분야
    인문학>역사학
  • 소개
    1998년 설립된 동학학회는 동학사상에 대한 철학적, 사상적 연구를 통해 한국사상의 정체성을 정립하는데 기여하고, 나아가 세계 속의 한국사회 건설과 21세기 인류 문명의 대안적 세계관을 탐구하는데 이바지함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등재학술지 [동학학보]를 연4회 발간하고 있습니다. [학회 설립 목적] 동학에 대한 학제 간 학술연구 및 학술발표와 회원간의 학문적 교류를 목적으로 한다. 동학사상에 대한 철학적, 사상적 연구를 통하여 한국사상의 정체성을 정립하는데 학문적 기여를 한다. 아울러 동학사상의 현실화, 구체화 과정인 동학혁명에 대한 역사적, 사회과학적 연구를 통하여 자주적 민의 형성, 사회형성, 국가형성의 정신을 연구하여 세계속의 한국사회를 건설하는데 이바지한다. 본 학회는 동학연구를 통해 민족통일 이념의 정립에 기여하고, 나아가 2000년대 인류 문명의 대안적 세계관을 탐구, 제시하고 회원 사이의 이해 증진을 도모한다.

간행물

  • 간행물명
    동학학보 [The Korea Journal of Donghak Studies]
  • 간기
    계간
  • pISSN
    1598-7566
  • eISSN
    2713-3605
  • 수록기간
    2000~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151 DDC 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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