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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논문 : 전환의 시기 - 사회통합과 포용의 인문학Ⅱ

한국 언론의 후세 다쓰지(布施辰治) 인식
The Recognition of Fuse Tatsuji(布施辰治) in Korean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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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경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바로가기
  • 간행물
    시민인문학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40호 (2021.02)바로가기
  • 페이지
    pp.9-45
  • 저자
    이규수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390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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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In this paper, I investigated how Korea viewed Fuse Tatsuji centering on newspaper articles published in Korea. Mainly focusing on articles reported before and after his visit to Korea, I referred to the relationship between Fuse Tatsuji and Korea and paid attention to the recognition and evaluation of the social movement camps at that time. Fuse Tatsuji is a Japanese human rights lawyer and social activist. After practicing as a lawyer, with the belief of humanitarianism and social equality he tried to protect the rights of farmers and workers in Japan and he involved in various incidents to protect people and their rights in colonies such as Korea and Taiwan. In particular, he related with Korea in various forms. He visited Korea for the first time in 1923 with the help of the ‘Summer Circuit Lecture’ organized by the North Star(北星會) and The Dong-A Ilbo(東 亞日報), and acted as a defense lawyer for the Korea Communist Party. When the Kanto Great Earthquake occurred, he went to investigate and protest against the massacre of the Korean people, and sent letters to each media company saying that he had a huge responsibility for that massacre as a conscientious lawyer. As a lawyer, he practiced the ideology of freedom, equality, and civil rights throughout his life. As recorded in his tombstone, “While you live, with the people and if you have to die, for the people”, Huse acted not only for the Japanese but also for the people of East Asia. The Korean activists respected and valued him as the most trustworthy Japanese. In Japan, the relationship between Fuse Tatsuji and Koreans is regarded as an example of the solidarity struggle between Korea and Japan, and Fuse Tatsuji is remembered as ‘friends’ and ‘comrades’ of the colonial people. Given the humanitarian advocacy and the high interest in colonial people, it is natural that Fuse Tatsuji should be evaluated like this. According to the evaluations of the Koreans, He was the ‘Champion of the Japanese Proletariat Movement.’ The relationship between Fuse Tatsuji and Korea is the mirror of Korea and Japan’s bonding struggle. He would be eternally imprinted as ‘friends and comrades’ for colonial people. He found colonized Korean people, and Korean people found Huse.
한국어
이 논문에서는 조선에서 발행된 신문기사를 중심으로 조선인은 후세 다쓰지 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살펴보았다. 그의 조선 방문을 전후로 보도된 기사를 중 심으로 후세와 조선과의 관계를 언급하면서, 당시 그에 대한 사회운동 진영의 인 식과 평가에 주목했다. 후세 다쓰지는 일본의 인권변호사이자 사회운동가이다. 변호사 개업 후 인도 주의에 의거하여 사회는 평등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일본 내에서는 농민과 노동 자의 권리 보호를 위해 투신했고, 국외에서는 조선, 타이완 등 식민지에서의 민 족 및 민중의 권리 보호를 위한 각종 사건에 관여했다. 특히 후세는 다양한 형태 로 조선과 관계를 맺었다. 후세는 1923년 북성회(北星會)와 동아일보사가 기획한 ‘하기순회강연단’을 계기로 조선을 처음으로 방문했고, 의열단 사건의 변호를 비 롯해 조선공산당 등 치안유지법 관련 변호단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또 관동대지 진이 발생했을 때는 조선인 학살사건에 대한 조사와 항의 활동에 나섰고, 각 언 론사에 ‘학살의 책임을 통감한다’는 서한을 발송하는 등 양심적 법조인으로서 활 동했다. 후세는 일생동안 자유⋅평등⋅민권이라는 이념을 실천한 변호사였다. 그의 묘비명에도 기록되어 있듯이, “살아야 한다면 민중과 함께, 죽어야 한다면 민중 을 위하여”라는 좌우명을 실천한 후세는 일본인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민중의 마 음을 움직였다. 조선인 운동가들은 후세를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일본인으로 평가 하고 존경했다. 일본 국내에서는 후세와 조선인들과의 관계는 한일 연대투쟁의 본보기로 간 주되며, 양국에서 후세는 식민지 민중의 ‘벗’이자 ‘동지’로서 기억되고 있다. 인도 주의에 바탕을 둔 실천적인 변호활동과 식민지 민중에 대한 높은 관심을 고려하 면 후세에 대한 이런 평가는 당연하다. 조선인들의 평가대로 후세는 ‘일본무산운 동의 맹장’이었다. 후세와 조선인의 관계는 한일연대투쟁의 거울같았다. 후세는 식민지 민중의 ‘벗’으로서, 때로는 ‘동지’로서 영원히 각인되었다. 후세는 식민지 민중을 발견했고, 조선인들은 후세를 발견했다.

목차

1. 머리말
2. ‘자기혁명의 고백’과 ‘하기 순회강연회’
3. 관동대지진과 인권옹호활동
4. 궁삼면과 농촌문제
5. 조선공산당 변호사
6. 맺음말
[부표] 후세의 주요활동
<참고문헌>
<국문초록>

저자

  • 이규수 [ Yi, Gyu Soo | 일본 히토쓰바시대학 한국학연구센터, 교수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경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 설립연도
    1996
  • 분야
    인문학>기타인문학
  • 소개
    본 인문학연구소는 1996년 12월 설립 이래 인문학 전반에 걸친 폭 넓은 연구와 과제를 수행해오고 있으며, 연구소 내에 인성교육연구실, 지역문화연구실, 전통문화콘텐츠연구실, 아동문학연구실의 4개 연구실을 두어 각 연구실마다 교육부, 문화체육부 과제, 정부 및 지자체 과제, 산업기관 과제 등을 활발하게 수행하고 있다. 본 인문학연구소는 매년 2회 기관지 <시민인문학>을 출판하여 2015년 현재 통권 28호에 이르고 있다. <시민인문학>의 모토는 인문학의 대중화, 인문정신문화의 진흥, 시민 공동체 사회의 실현으로서, 일반 시민, 소외 청소년, 쉼터 노숙인, 노인 등 여러 계층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교양교육 실시와 매년 2회의 정기 학술대회와 워크숍을 수행하고 있다. 본 인문학연구소는 대학 내외의 인문사회 연구기관과의 교류, 지자체의 인문학 관련 용역과제 (수원시, 안양시, 광명시 등) 수행과 업무 협약 등을 통해 지역 연계의 시민인문학 사업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본 인문학연구소는 경기대학교의 중점연구소로서 연구소 독자적 사무실 운영비, 전임 조교 인건비, 학술대회비 지원 등을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지원받고 있으며, 한국연구재단의 연구교수와 30여명에 이르는 연구원들이 다양한 영역에서의 학제 간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본 인문학연구소는 다양한 인문학교육 프로그램 개발과 인문교육지도자 연수 시스템 운영, 그리고 자체 홈페이지를 이용한 인문학 플랫폼 개설 등을 통해 대학의 인문학 연구기관으로서의 위상을 세워나가고 있다.

간행물

  • 간행물명
    시민인문학 [Citizen and Humanities]
  • 간기
    반년간
  • pISSN
    2005-7164
  • eISSN
    2713-8526
  • 수록기간
    1990~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001 DDC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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