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ul Shields Crane was one of the utmost second generation missionaries in the Presbyterian Church in the United States. After graduating from Davidson College and Johns Hopkins School of Medicine, he came to Korea in October, 1947 and served ministry as the director of Jesus Hospital in Jeonju. He highlighted a need for modern Christian medicine in the Honam region and believed that it was urgent to cultivate Korean doctors with a Christian viewpoint. This was why the Jesus Hospital of Jeonju functioned as an education-centric medical center. The hospital introduced the resident doctor system in 1949 first in the nation. In the 1950s, his medical activities as the director of Jesus Hospital were literally omnidirectional. He had to focus on the treatment of patients as a surgeon while devoting himself to the institutional settlement of intern and resident processes. During the Korean War, he kept the hospital open to treat the war wounded and educate army doctors. In addition, he formed a nationwide organization to eradicate parasites. In the 1960s, his activities were concentrated on the project of building and moving a new hospital building. The Presbyterian Church in the United States donated 600,000 dollars in various forms for the project in 1965. Another round of donation amounting to 70,000 dollars followed in 1968. Crane made four visits to Bonn, West Germany in 1965~1969 to persuade the Christian Development and Aid Foundation, which eventually donated 1.50 million dollars for the project of building a new hospital and moving the Jesus Hospital to it in the autumn of 1969. The dedication of the new building whose construction costs amounted to 2.80 million dollars took place in the fall of 1971. Crane returned to the U.S. in June, 1969 before it happened.
한국어
폴 크레인은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순천과 평양에서 보낸 남장로교의 대 표적인 2세 선교사이다. 데이비슨대학과 존스홉킨스의대를 거쳐 군의관 복 무 중이던 그는 한국 선교 현장의 부름을 받고 1947년 10월 내한했다. 폴 크 레인은 먼저 호남지역에서의 현대적인 기독교의료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 러기 위해서는 기독교적인 관점을 갖고 있는 한국인 의사들을 양성하는 것 이 급선무라고 보았다. 그가 1948년부터 병원장으로 있던 전주예수병원이 교육 중심의 의료센터로 기능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예수병원은 1949년 우리나라 최초로 수련의 제도를 도입하였다. 1950년대 예수병원장 폴 크레인의 의료 활동은 그야말로 전방위적이었다.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의 제도적 정착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는 한편 외과의사로서 거듭 수술 환자 들을 맞아 처치에 집중해야만 했다. 한국전쟁 기간 중에도 전상자 치료와 군 의관 교육을 위해 병원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또 그는 기생충 박멸을 위한 전국적인 조직을 만들었다. 폴 크레인의 1960년대 활동은 자연스레 병원 건 물의 신축 이전 사업에 집중되었다. 1965년 미국 남장로교 여전도회가 그 해의 생일감사헌금을 모아 40만 불을 예수병원 신축 자금으로 보내 왔다. 거기에 남장로교의 의료 선교 지원 단체인 의료자선재단이 두 차례에 걸쳐 20만 불을 지원하였다. 1965년부터 1969년까지 그는 네 차례 서독의 본을 방문하여 기독교개발원조단을 설득하였다. 그 재단은 1969년 가을 모두 150 만 불의 자금을 예수병원 신축이전비로 후원하였다. 공사비 280만 불이 소 요된 새로운 병원의 봉헌식은 1971년 가을에 있었다. 폴 크레인 원장은 그 전인 1969년 6월 전주를 떠나 미국으로 돌아갔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폴 크레인의 배경과 일제강점기 남장로교의 의료선교 1. 폴 크레인의 배경 2. 한말・일제강점기 남장로교의 의료선교 Ⅲ. 폴 크레인과 전주예수병원 1. 전주예수병원에서-1950년대 2. 전주예수병원에서-1960년대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폴 크레인(구바울)남장로교전주예수병원현대기독교의료호남지역Paul Shields CranePresbyterian Church in the United StatesThe Jesus Hospital o f JeonjuM odern Christian m edicineT he H onam region
한남대학교 기독교문화연구소 [Institute for Christian and Cultural Studies]
설립연도
1985
분야
인문학>기독교신학
소개
현대에서 기독교 대학의 창학이념을 효과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기독교 문화를 창조해야 한다. 이런 중요한 요청 앞에서 기독교문화연구소는 한남대학교의 창학이념에 따라 기독교 원리하에 심오한 진리를 탐구하여 학문 발전에 기여하고, 또한 이에 머물지 않고 지역 사회에 기여하며 사회의 문화 발전을 선도할 수 있는 기독교 문화 형성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그 목표로 삼는다.
진리탐구를 통한 학문 발전: 기독교 정신으로 현대의 문화 속에 살아가는 것은 이질적이고 다양한 문화의 흐름들과의 조화를 필요로 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기독교의 정신으로 현대 문명의 부정적인 면을 견제하고 비판할 수 있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배타적이고 대립적인 문화적 충돌을 해결하면서도, 또한 그 문제점을 비판하는 보다 창조적인 조화의 방향에 대한 제시가 필요하게 된다. 기독교 문화연구소는 이런 방향제시를 위해서 기독교의 진리와 타학문간의 조화와 긴장을 이룰 이론적 기초에 대해 연구한다. 세부 연구 분야는 환경문제연구, 종교문제연구, 문화사회연구, 정치경제연구, 문학예술연구로 나누어 진행한다.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와 기독교 문화 형성: 이런한 목적을 위해서 기독교문화연구소는 다양한 학술연구와 학제간 연구를 정기적으로 진행한다. 또한 이런 연구들이 탁상공론에서 그치지 않도록 타학문을 전공하는 교수들과 학문적 연구를 공조하고, 또 지역교회, 단체들과 함께 연구하여 그 결과를 함께 나눈다. 그리고 그들과의 연대 속에서 실천적 방안들을 연구 및 발표한다. 나아가 캠퍼스 내의 기독교 문화 확산 운동과 환경보호 실천운동을 전개 및 지원하는 기능을 한다.